한국의 3대 기타리스트 '김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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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3대 기타리스트 '김태원'


2017. 7. 9.

그룹 부활의 리더 겸 기타리스트, 프로듀서, 작사가 겸 작곡가다. 초창기에는 노래를 몇 곡씩 부른 적이 있다. 

1980년대 록밴드가 번성하던 시절 백두산의 김도균, 시나위의 신대철과 함께 한국의 3대 기타리스트로 꼽히곤 했다. 당시 발라드적 음색 탓에 시나위, 백두산에게 그건 록이 아니라고 질타를 많이 받았다고.

흔히 회자되는 '서대문파' 기타리스트로, 간단히 말하자면 골방에 틀어박혀서 자아도취하면서 밥도 안 먹고 16시간씩 치는 기타리스트. 부활 데뷔 전까지는 게리 무어나 지미 페이지 등의 블루스-하드록 기타, 특히 서스테인이 많이 필요한 미드템포 애드립에 능한 것으로 유명했다. 부활의 전신이 되는 The End 시절에는 타카사키 아키라에 빠져서 완벽한 헤비메탈을 하고 싶어했다고.


3남 2녀 중 막내. 김태원이 국민학교 입학할 무렵 가세가 기울면서 정든 동네에서 이사를 나가게 되는 등 어렸을 때 힘든 일들을 많이 겪었기에 가족들이 더욱 그를 보살피고 배려해주었다고 한다. 국민학교 4학년 때 여학생에게 기타를 쳐주고 싶어 2년 걸릴 기타를 1년 만에 쳐내며 기타가 너무 좋아서 밤새 기타를 치고 낮에 자기 위해 고등학교를 일부러 야간을 갔다고 한다. 그래서 중, 고등학교를 기타로 평정했다고 한다. 강남에는 신대철, 강북에는 김태원이 유명했다고 하는데...

데뷔 후에 김도균, 신대철이 리치 블랙모어나 타카사키 아키라 등의 영향을 적잖이 받으면서 헤비하면서도 속주 중심의 테크니션으로 변하는 가운데 단순하고 서정적인 곡조, 혹은 전주나 간주에서의 사운드를 풍부하게 하는 다양한 시도를 했는데, 이는 김태원이 그 둘에 비해서 팝음악 작곡가로 월등히 이해도가 높았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다. 이런 면모는 부활 초기의 대표곡인 '희야'와 '비와 당신의 이야기'에서 잘 드러난다.

간혹 김태원이 기타 실력이 형편 없다고 하는 글들이 있는데 그것은 터무니 없는 소리다. 부활의 곡이 상대적으로 기타의 테크닉을 덜 요구했기 때문이지 김태원의 카피능력, 특히 속주 능력은 상당했다. 단지 비교대상이 자주 되었던 김도균, 신대철이 노이즈 컨트롤이나 톤 메이킹, 애드립 레파토리가 더 화려했을 뿐이다. 보는 사람이 오해하지 않도록 미리 써두자면, 80년대의 기타 실력은 주로 속주와 화려한 손가락 움직임, 90년대에는 톤 메이킹이 한국에서는 가장 중요했다. 80년대 기준으로 볼 때 김태원은 속주에 관해서는 다른 둘에게 떨어질 게 없었다. 90년대 기준으로 볼 때 두 기타리스트에 비하면 단조로운 면이 있었으나 김태원 고유의 톤은 굉장히 매력적이다. 

화려한 테크닉 면에서는 변명의 여지가 없지만 특유의 톤 메이킹에 있어서는 폄하될 이유는 없다. 어차피 셋 다 이제는 흘러가는 기타리스트고, 기타 장인에 가까운 김도균/신대철에 비해 작곡가에 가깝고 동시에 체력적으로도 문제가 많은 김태원이 빠른 노쇠화가 왔을 뿐이다. 신대철, 김도균에 비해 상대적으로 기타리스트 김태원은 저평가를 받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단순히 저평가라 보긴 어려운 것이, 기타 연주자로서의 연주력이란 측면으로 볼 때, 신대철, 김도균에 비해 현저히 떨어지는 것은 맞다. 


물론 뮤지션이란 기준으로 볼 때 부족한 연주력을 멜로디메이킹 능력이나 작곡능력으로 보상하고 남는다는 점도 명백한 사실이긴 하다. 다만 어쨌든 기타 연주자의 측면으로 볼 때 신대철, 김도균은 물론이고 솔직히 네임드 프로 기타리스트라 보기 조금 민망한 면이 있다는 것이 팩트. 게다가 노쇠화라는 얘기가 정말 말도 안되는게 김태원의 나이는 이제 50대 중반에 막 접어든 나이로 오히려 연주력에 원숙함이 더해져 절정의 기량을 뽐낼 수도 있는 연배, 게다가 애초에 김태원의 연주 스타일 자체가 초절정 기교로 체력을 필요로 하는 연주 스타일도 아닌 점을 감안하면...

위에도 나오지만 김태원의 연주를 쉴드하는 사람들이 흔히 하는 망발이 김태원은 속주 테크니션이 아니라 상대적으로 저평가된다는 얘긴데, 애초에 기타 연주를 할 줄 모르는 사람들이 주워들은 얘기로 쉴드 치는 것이라고 밖엔 말할 수 없다. 최근 각 기타리스트들이 각종 매체에 나와 애들립 연주하는 것을 들어보면 오히려 무식하게 80년대 메탈키드 스타일로 후리는 건 김태원 쪽이다. 신대철이 가장 고급스럽고 안정적인 연주를 보여주고, 김도균은 조금 올드 스쿨이긴 하지만 꽤 빠른 연주를 특유의 정교하고 파워풀한 피킹으로 구사해 나름 우리나라 기타 레전드 중 하나의 면모를 유감 없이 보여주는 반면, 김태원은 솔직히 그냥 손에 익은 스케일을 대충 마구 후리면서 그나마도 정교하지 못한 연주 탓에 디스토션을 잔뜩 걸어 뭉개는 스타일의, 그야말로 80년대 기타 좀 친다는 동네형들이 보여주는 수준에서 그닥 발전하지 못한 모습만을 보여준다는 것이 아픈 진실.... 

물론 거듭 강조하지만 밴드 마스터로서나 종합적인 뮤지션, 송라이터로서의 기량으로 보자면 우리나라 락신의 레전드로서 전혀 부족함은 없다.

부활의 대부분의 노래를 직접 작사, 작곡한다. 다만 1집의 '희야' 같은 경우는 김태원이 쓴 게 아니라 양홍섭 작사, 작곡, 2집의 '회상3'는 '마지막 콘서트'로 더 잘 알려져 있지만 이승철이 리메이크하면서 바꾼 이름이며, 당시 여자친구였던 아내를 위해 썼다. 가사에서 나오는 소녀가 바로 아내. 여담이지만 가사에서 소녀가 울고 밖으로 나가는 이유는 당시 김태원이 약에 취해서 연주하는 모습을 차마 보지 못했기 때문이었다고 밝혔다. 참고로 이 '회상3'는 부활2집을 녹음하던 도중 녹음실에서 이승철이 보는 앞에서 한 번에 쓰여졌다고 한다. 신정환과 탁재훈이 진행하던 KBS의 예능프로그램 '불후의 원곡'에서 신정환이 '마지막콘서트'의 소녀를 안다고 말하여 이승철을 당황하게 만든 바 있었다. 당연히 당시의 신정환은 김태원도 그의 아내 이현주도 모르는 상태였다.


부활 출신의 보컬 중 가장 성공한 이승철과는 그야말로 영화 속 애증의 관계. 둘 다 밴드 내에서 자존심이 강한 데다 성격도 좋은 편이 아니다보니. 그러나 간간히 합작해서 음악 작업을 하고, 그때마다 명곡들이 발표되었기에 다시 한 번 이승철이 부활에 합류해 주길 바라는 팬들도 있다. 사실 이승철과의 관계가 너무 영화 같아서 그렇지, 이승철 이외의 다른 보컬들도 우여곡절도 많고 오래 가지 못했다. 특히 김태원이 돈 때문에 잘랐다고 인정한 이성욱 조금 복잡한 관계였던 박완규, 그 외 부활 디스코그라피에나 언급되는 수많은 탈퇴한 전 멤버들. 김태원의 좋게 말하면 음악적 욕심과 완벽주의,나쁘게 말하면 독선과 아집 때문에 밴드 이름 그대로 음반 낼 때마다 죽었다가 다시 부활하기를 반복한 그의 음악사를 그대로 말해준다.

뮤지션 중엔 정말로 드물게 장비에 큰 욕심이 없기로도 유명하다. 케이블TV의 모 프로그램에서 김구라가 기습적으로 그의 집에 인터뷰를 간 적이 있었는데, 집에 있는 것은 당시 엔도서 활동으로 받았던 일렉기타 하나와 통기타 하나 이렇게밖에 없었다고 한다... 좋은 기타를 선물받은 적도 많지만 후배나 지인들에게 대부분 나눠주었다고.

같은 맥락의 이야기로, 대부분의 공연에서는 앰프+이펙터(GT-6)하나 + 기타 조합으로 연주를 한다고 한다. 다만 이는 김태원의 '복잡한 건 싫다'라는 성격도 어느 정도 반영이 된 것으로 보인다. (GT-6는 꽤 전의 장비이고, 현재는 Vox사의 Tonelab LE 멀티이펙터 + BOSS사의 EQ페달 GE-7 + Vertex사의 볼륨페달을 함께 사용한다.)

1987년과 1991년 대마초로 두 차례 입건되었다. 결국 그는 대마초를 끊기 위해 "아내를 위해 약을 끊어야겠다 결심하고 외진 섬으로 들어갔다"며 한 번 들어가면 밖으로 나오기 쉽지 않은 섬으로 들어가 마지막으로 가지고 있던 약병을 돌멩이를 묶어서 과감히 바다로 던졌다. 약을 바다에 던진 것은 반드시 약을 끊고 새 사람이 되겠다는 의지를 확고히 하기 위한 행동이었던 것. 하지만 "그때 코란을 포함한 지구상의 모든 종교서적을 섭렵하며 마음을 다잡았지만 소용이 없었다"고 밝히며 "결국 약병을 건지기 위해 수경까지 쓰고 바다로 뛰어들었다." 노력에도 불구하고 약병 찾기는 실패로 돌아갔고, 그는 허탈하고 비참한 심경으로 물 밖으로 나올 수밖에 없었다고 MBC 드라마넷 미인도에서 밝혔다. 2008년 라디오스타에 출연했을 당시 본인의 금단 현상을 언급하던 중에 "항간에는 (대마초는) 중독성이 없다 이런 얘기를 하더라"라는 윤종신의 질문에, "문제가 뭐냐면 그걸 하면 그 위를 가게 되니까... 하얀색 그거... 그걸로 가는거에요"라고 말해 대마초를 넘어 마약으로 가게 됨을 경고했다. 이 이야기는 방송에서 아주 짧게 언급되고 넘어갔다. 어쨋든 금단증상으로 괴랄한 폭식을 했다고 한다. 


1989년 이승철이 탈퇴한 뒤엔 4년 동안 거지로 살았다고 한다. 학원 영어, 수학강사를 하던 여자친구(지금의 아내)가 하루 1000원씩 줬다고통장도 이 즈음 처음 만들었다고 한다. 이유는 이승철이 '마지막 콘서트'로 리메이크한 '회상3'의 저작권 수입 때문에. 1집과 2집의 히트에도 불구하고 자신에게 들어오는 돈은 없었다고 방송에서 밝혔다. 1993년도 첫사랑을 위한 곡 '사랑할수록'이 들어간 3집을 쓰고 모든 자신의 상황이 뒤집어졌다고 한다. 그 당시 누구도 자신이 뜰 거라고 상상조차 못할 정도로 술과 마약에 찌들어 있었고 끝내는 정신병원에 감금당했을 정도로 상태가 안 좋았다. 그렇게 망가진 자신에게 제 발로 찾아와준 故 김재기가 있었기에 재기가 가능했다고 한다.

작곡적인 능력으로 말한다면 '네버 엔딩 스토리'의 굴지의 히트 이후로는 자기복제 경향이 심해졌다고 이야기하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부활 팬층도 어느덧 나이가 40대 이상인 사람들이 대부분이고, 팬들이 뭔가 새롭고 혁신적인 사운드를 원하는 것도 아니며, 팬이 아닌 사람들도 부활이 신선한 사운드를 들려주길 기대하는 것은 아니기에 큰 문제가 되진 않는다. 무엇보다도 부활 앨범은 따로따로 떨어진 곡이 아니라 그 자체가 한 편의 소설과도 같다는 점. 거의 모든 곡이 김태원의 사랑 혹은 인생사를 모티브로 쓴 노래다. 그리고 예능 출연으로 시간이 턱없이 부족한데도 그동안 발매된 콜라보레이션 프로젝트, OST, 디지털 싱글 등의 퀄리티는 상당하며 이 곡들만 모아도 하나의 앨범이 완성될 정도의 분량이다. 이에 김태원은 조금 강하게 자기 입장을 밝혔는데, 세상엔 수많은 뮤지션이 있고, 나는 내 음악을 하는 것. 때문에 다른 음악은 다른 뮤지션에게서 찾는 게 맞다는 입장. 듣고 보면 맞는 말이다.

SBS 힐링캠프에서 밝히길 (하늘에서 내리는) 비를 굉장히 좋아한다고 한다. 비와 관련된 곡이 많은 것도 그런 이유이고, 잠 잘 때는 커튼으로 방의 창문을 막아서 어둡게 한 뒤에 스테레오사운드 오디오로 24시간 빗소리가 흘러나오는 CD를 틀어놓는다고 한다.

박완규의 인터뷰에서 언급되기를, 생활고로 인한 이혼과 성대가 망가지는 시련을 겪고 있을 때 '비밀'이라는 곡을 들고 와서 무작정 부르도록 시키면서 그의 재기를 도왔다고 한다. 마약을 하면서 방황하던 자신을 김재기라는 인물이 도와주었던 것처럼 자신도 방황하는 후배를 도와준 셈이다. 그리고 2007년 부활과 박완규 모두 힘든 시절에 자신을 믿고 모든 걸 맡긴 것은 박완규 뿐이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이미 2009년 라디오 스타에 출연했을 때 이미 김태원은 콜라보를 하고 싶은 보컬 중 하나로 박완규를 지목하기도 했다.


대단한 영화광으로 약 1만 편 가량을 보았다고 한다. 책을 읽지 않는 만큼 영화를 많이 본다고 한다. 예능에서 자주 고전 영화를 언급한다.

무릎팍도사에서는 스티븐 스필버그의 미지와의 조우, 남자의 자격 탭댄스편에서는 백야를, 그리고 힐링캠프에서는 한혜진이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를 언급하자 바로 알아차리는 모습을 보였다. 2집에서, 그리고 부활의 가장 유명한 연주곡인 'jill's theme' 또한 Once Upon A Time In West의 OST다.

예능 출연

1991년 마약혐의로 구속되었다가 죗값을 치르고는 주로 음악 활동만 하다가 2008년 김구라의 추천으로 라디오 스타 게스트로 처음 참여했는데 4차원적인 성격과 생활상, 음악에 대한 이해, 기러기 아빠(가족은 필리핀에 체류 중)로서의 고뇌 등 여러가지 레파토리를 많이 들려주면서 단숨에 예능의 새로운 카드로 급부상하였다. 사실 첫 방송만 해도 라스에서조차도 큰 도박성 출연이라, 검증된 게스트 김흥국을 붙인 뒤, 당시 매우 떨어지던 인지도로 인해 김태원이 카메라에 잡힐 때마다 거의 2~3분 간격으로 진지한 바탕체 자막으로 "그룹 <부활> 리더 김태원"이라고 띄워줬다. 

이 출연 한 방에 방송국에 새로운 예능카드로 떠오르고, 이후 이경규의 눈에 띄어 남자의 자격에 출연하게 되면서 본격 예능인의 길을 걷게 된다. 이 김태원의 발굴로 김구라까지 재평가 받을 정도로 2008년 예능계 최대의 발견 중 하나. 참고로 음악평론가 임진모가 운영하는 음악평론사이트 'IZM'의 김구라 인터뷰를 보면 벌써 전부터 예능출연을 마지막 돌파구로 여기고 김구라에게 부탁한 정황을 읽을 수 있다. 전부터도 채제민 등은 김태원의 예능출연을 적극 권장했다는 증언도 있었기에 이는 침체기에 빠진 부활을 살리기 위한 필사적인 노력의 일환으로 벌써부터 준비되어 있었다 볼 수 있다.


2009년 11월에는 생애 처음으로 광고를 찍었는데, 긴 생머리를 풀어헤친 채 핑크색 스키복을 입고 출연했다. 김태원의 뒤태만 보고 여자로 착각했던 한 남자가 얼굴을 보고 망연자실한다는 줄거리의 광고였는데, 여기서 김태원은 리프트에 함께 앉아 심드렁하게 "혼자 왔니?" 라는 단 한 마디 대사만 한다. 사실 이 대사를 치는 장면은 고소공포증이 심각해 리프트에서 덜덜 떠는 게 보여서 풀샷으로 촬영된 것이며, 당시 스태프들이 딱 한 마디만 하라고 부추겼는데 그리하여 간신히 나온 대사가 "혼자 왔니?" 였다고... 사실 원래 대본상의 대사는 훨씬 길었다고 한다. 하지만 실제 광고 방영 후에는 저 짧은 한마디가 시청자들에게 제대로 먹혀들어가 빵 터져 오랫동안 유행어가 되었다.

청춘합창단 지휘와 작곡을 담당하며 "독설과 폭로, 강한 유머 코드만이 난무하던 예능계에 인간적이고 따스한 예능이라는 새로운 바람을 가져왔다"는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예능인으로서도 뮤지션다운 색깔을 잃지 않으며 오히려 대성공을 한 것이다.

남자의 자격

남자의 자격 고정 멤버로 활동했다. 상상 이상의 허약함으로 국민 할매의 칭호를 획득하였다. 본의 아니게 이윤석의 국민약골 캐릭터를 빼앗은 격. 2010년 8월 22일자 방영분에서는 요정이 되었다. 음악인으로서의 모습과 너무 갭이 심해서 많은 팬들이 당황하기도 했지만, 정작 본인은 예능을 통해서 부활과 자신의 음악이 알려지는 것에 대해서 긍정적인 의견을 여러 차례 인터뷰를 통해서 밝혔다. 멤버들도 이에 절대적으로 동감하고 있다. 실제로 예능 애호가인 드러머 채제민은 김태원의 예능 진출을 적극 추천했고, 베이시스트 서재혁은 예능 출연을 반대했지만 김태원의 예능 진출은 첫 날부터 성공하게 된다. 예능 출연은 부활의 부활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부활에 큰 영향을 끼쳤다.

2011년 2월 남자의 자격 암 특집을 위해 위암 검사를 받았다가 위암 초기 판정을 받고 16일 1차 수술, 22일 2차 수술을 마치고 26일 퇴원하였고 3일도 안 되어 예정되었던 부활 정규 콘서트에 임하여 깊은 감동을 주었다. 원래 수술에 대해선 프라이버시 문제로 방송할 생각이 없었다고 한다. 암 수술에 대한 긍정적인 태도, 이후의 건강한 모습은 암환자들에게 희망으로 다가왔기에 이후 관련 공익 CF나 강연회에 꾸준히 참가하고 있다. 참고로 김태원은 건강검진을 잘 안 받았는데 이때의 검진이 그를 살렸다. 즉, 남자의 자격이 김태원을 살렸다. 그렇지 않았다면 우리는 우수한 음악인을 허망히 보내야 했을 것이다. 이전에도 간경화로 생명이 위독한 것을 함께 출연하던 김국진이 문을 강제로 열고 들어가 병원으로 실어갔다 하니 프로그램이 사람을 두 번이나 살린 것이다.


스타 오디션 위대한 탄생

2010년 12월 스타 오디션 위대한 탄생의 국내 오디션 심사위원으로 활동하였다. 다른 두 심사위원에 비해 관대한 편이지만 떨어질 사람은 결국 다른 두 사람이 떨어뜨리므로 김태원이 관대하게 해준다고 이득을 본 사람들도 없다. 슈퍼스타K에서 서인국과 다른 몇몇을 광적으로 깠던 이승철과는 상반되는 이미지.

평가는 일단 위트 있게 이야기해주는 편이지만, 냉정하게 짚을 것은 다 짚어낸다. 그야말로 촌철살인 심사. 두 사람이 같이 노래를 부를 때 음정을 틀린 사람을 잡아 내기도 했다. 그렇다고 이론적인 것만 보는 것이 아닌 느낌이 와닿는 사람을 추천하여 더더욱 공감을 자아냈다.

"여기까지라는 단어는 없습니다. 항상 이제부터입니다", "음악은 발명이 아닌 발견이다. 자기 안에서 찾아내는 거다", "승패를 떠나서 그대는 이미 기적입니다", "인생이 후렴만 있다. 앞으로 살면서 1, 2절을 만들어야 한다. 후렴은 그 누구보다 아름답다" 등의 김태원 어록이 만들어질 정도로 주옥 같은 심사평이 연일 화제가 되며 위대한 탄생에 비판적이던 여론을 뒤바꾼 일등 공신.

일반 대중들에게도 탁월한 뮤지션으로서의 이미지를 알리며 국민멘토로 칭송받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다른 심사위원들(위탄+슈스케)보단 훨씬 긴 오디션 심사 경험이 있고 그가 키워낸 인재들이 이승철, 박완규, 김재기, 이성욱, 신해철, 정단, 정동하 등 레전설들 뿐이라는 사실을 기억하도록 하자.

스타 오디션 위대한 탄생 시즌 1 성공의 가장 큰 이유라고 평가받고 있다. 위대한 탄생이 슈퍼스타K 시리즈와 차별화 시키려 애썼던 멘토 스쿨 편에 들어와 무엇을 달리 하려 했는지 가장 확실하게 보여주고 있다.


놀러와에서 밝힌 바에 의하면 위탄 멘토를 꼭 하고 싶었다고 한다. 아직 다섯명의 멘토가 비공개일 때 김태원이 멘토라는 게 밝혀져서 제작측에서 교체를 검토했을 때 먼저 찾아가서 하고 싶다고 하기도 했다고. 위탄을 꼭하고 싶었던 이유는 예능을 하면서 너무 할머니 이미지만 굳어지고 음악인의 이미지를 잃는 것 같아서였다고 한다.

결국 위탄 시즌 1 그랜드 파이널에 제자 두 명(백청강, 이태권)을 올리면서 가장 성공한 멘토로 남았는데 위탄 시즌 2의 실패는 김태원과 같은 차별화된 멘토의 부재로 평가되고 있을 정도이다. 시즌 3에서 다시 멘토에 합류.

여담

예능에서 많은 얘기를 하며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으나 거짓말이나 과장 또한 없지 않다. 평소에도 그렇다는데 이건 그의 과거 친구나 같이 작업한 음악인, 남자의 자격 팀도 인정하는 사실. 학창 시절 별명도 '김억삼'이었다고 한다. 당시 거짓말을 많이 했던 이유는 부족했던 자신의 모습으로는 사랑받을 수 없기에 거짓말로 포장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남자의 자격에서도 이경규가 이 사람 얘기는 다 믿지 말라고 할 정도였다. 김태원 본인도 자신의 얘기에 과장이나 포장이 많다는 것을 인정하고 있다.

다만 본인이 거짓말을 하고 싶어서 그런 게 아니라 기억에 착오가 생겨서 그렇게 되는 것이 대부분이라고. 특히 길고 긴 마약 중독과 금단 현상에 시달리던 시절은 기억에 혼선이 올 수밖에 없는 노릇이다. 부활 멤버 전원이 출연하는 예능이나 라디오의 경우 컴퓨터급 기억력을 가졌다는 베이시스트 서재혁이 열심히 김태원의 말을 수정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리고 과거의 갈등과 같은 예민한 사안은 어떻게든 상대방에게 상처나 부담을 덜 주기 위해 묵묵히 감수하는 경우도 있다.

더불어 국민할매로 워낙에 유명해서 나이가 많은 것 같고 나이가 많아보이지만 사실은 1965년 4월 12일생으로 이경규보다는 5살 어리고, 이승환과 동갑이다. 절친인 김종서, 김국진과도 동갑. 이승철과는 단 1살 차이로 이승철이 1살 어리다.


무릎팍도사에서 둘째 아들이 자폐증에 걸렸다고 고백했다. 지금 자신이 기러기 아빠 신세인 것도, 아들의 자폐증에 대한 주변의 시선 등 여러 가지 이유 때문이라고 한다.

한국에서 저평가되는 뮤지션 중 하나. 특히 예능에 출연하게 되면서 김태원을 잘 알지 못하는 초중딩들 사이에서 일명 '미친' 할매로 통하고 있다. 물론 예능에 출연함으로 김태원 자신은 물론 부활이 젊은 층에서도 꽤나 유명해졌으니 김태원 본인은 만족하고 있겠지만, 한국의 전설적인 뮤지션(& 프로듀서) 중 한 명이 아직 아무것도 모르는 초중딩들에게 저런 취급을 받고 있다는 점에서 아쉬움이 남는다. 그래도 시청률 20%를 돌파한 위대한 탄생 시즌 1에서 국민멘토로 전폭적인 지지를 받으며 '대학생이 멘토로 삼고 싶은 인물 1위'에 오르기도 했다.

김구라와의 친분으로 유명하다. 라디오 스타에 꽂아준 것도 김구라라고. 그래서인지 이경규가 강호동 앞에만 서면 파워업하는 것처럼, 김구라도 김태원 이야기만 나오면 기세등등한 모습을 보인다. 김태원이 김구라의 팝지식을 인정해서 아무것도 모르면서 나댄다는 평을 벗은 점도 있으므로 상호 보완적이기도. 어쨌든 김구라가 무명 시절일 때 만나서 팝 이야기를 하며 친해졌다곤 하는데, 아주 무명이던 시기는 아니고 공중파에서 활약하기 직전이였다. 케이블에서 구봉숙이 MC를 봤던 '쏜데이서울'이라는 프로그램에 나왔던 김태원의 모습을 보면, 그때 김구라를 처음 본 듯한 모습을 볼 수 있다.

김태원 본인은 명랑 히어로에서 김구라가 당시 인터넷 방송 황봉알/김구라의 시사대담에서 "김태원은 사랑 노래밖에 안하는 가수다" 라는 말을 했는데 이걸 김태원의 친형이 들었고 김태원의 친형이 직접 만나서 "내 동생이 사랑 노래만 하는지 아닌지 이야기 한 번 해보라" 라고 주선을 해줘서 처음 만나봤다고 주장하고 있으나, 전술한 쏜데이 서울 김태원편을 보면 전에 만나봤다고 볼 수 없는 것도 사실이기 때문에, 또 김억삼 본능으로 뻥을 친 것인지, 쏜데이 서울에서 모르는척 한 것인지는 본인만 알 것이다.


가톨릭 신자로 세례명은 바오로. 독실한 신자인 아내의 소원이 온 가족이 미사를 보는 것이었기 때문에 입교하게 되었다고 한다. 가끔 가톨릭 관련 행사나 강연에도 참여하고 주보에 글을 실은 적도 있다. 그리고 이 이름을 걸고 '폴 제페토'라는 기타 회사를 차리기도 했다. 옆에 붙은 제페토는 피노키오를 만든 장인의 이름. 그런데 세계적인 기타 브랜드로 성장시키겠다는 포부와는 달리 품질은 많이 전문적이지 못하다는 듯하다. 그래도 커스텀 오더(주문제작) 면에서는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웬만한 하이엔드 기타가 부럽지 않다고... 무엇보다도 폴제페토가 좋은 인지도를 얻은 이유는 은퇴한 노령 장인과 장애인을 고용하고, 수익을 통해 지역사회에 기여하는 사회적기업으로 운영하는 데 있다. 이러한 사회적기업 성격에 주목한 최근의 조선일보 기사에서는 노사문제로 논란이 된 모 업체와 비교하며 호평하는 뉴스 댓글을 볼 수 있다.

예능에서 체력이 바닥이라고 자주 어필하는 국민할매이나, 부활 정규 콘서트는 2시간이 넘는 러닝타임으로 하루에 2번씩 개최하는 경우가 흔하며 금, 토, 일은 공연 스케줄로 꽉 차있는 경우가 흔하다. 이 많은 공연을 전부 라이브로 소화해낸다는 점을 염두에 두면 어떤 의미에서 강철 체력이라 하겠다. 하지만 라디오스타 크리스마스 특집 참여 당시에도 자기도 모르는 사이 복수가 7kg씩 차서 죽을 뻔했을 정도로 건강 문제가 심각했으며 대마초 후유증도 심각했던 편.


표절에 대해서 결벽증수준으로 싫어한다. 곡 작업이 시작되면 그 누구와도 만나지 않고 어떠한 음악이 아닌 음도 들리지 않게 스스로를 가둔다. 부활 초기에는 아예 사람이 없는 외딴 지역이나 무인도에 가서 작곡을 했다고 하며, 엘레베이터에 층도착소리도 자신에 음악에 섞이는게 싫다는 이유로 엘레베이터도 안탄다고 한다. 다만 이 이야기가 잘못 전파되서 김태원은 자신이 작곡한 노래 외에는 아예 듣질 않는다는 소문이 나기도 했으나, 의외로 아이돌 노래나 최신 가요들도 꾸준히 듣는다. 그래서 방송에 다른 가수와 출연하면 얼굴은 못알아보지만 최근에 나온 노래를 의외로 알아듣는 경우가 꽤 있다. 

2013년 1월 31일 방송된 해피투게더 284회에서 인피니트 성규에게 팔씨름을 이겼다!!

2014년 3월 31일부터 4월 4일까지의 인간극장에 출연했다. 자폐아 둘째 아들과의 이야기를 다뤘다.


2015년 8월 25일 냉장고를 부탁해에 출연했는데, 치아 문제 때문에 5~6년 전부터 제대로 된 음식은 못 먹는다고 한다. 7년 전까지만 해도 쇠고기와 돼지고기를 좋아했었으나 어금니가 하나씩 빠지기 시작했던 탓에 돈까스로 대체하고, 갈수록 더 안 좋아지는 치아 상태로 인해 돈까스마저 끊어버리고 짜장면으로 대체, 거기서 더 안 좋아져 짜장면까지 못 먹었다고 한다. 그 후로는 음식을 거의 앞니로밖에 씹지 못하게 되었다고. 이 날 셰프들은 치아가 좋지 않더라도 김태원이 즐길 수 있도록 신경 쓴 요리를 내놓았다.

냉장고를 부탁해에서 밝혀진 바로는 잇몸이 영 좋지 않다고 한다. 어금니가 빠져서 앞니로만 씹는다고 하고, 부실한 잇몸 때문에 임플랜트도 못하고 있다고... 고기가 너무 먹고 싶다고 한다. 위에서 언급된 그것의 후유증.

캐딜락 에스컬레이드를 타는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