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보컬리스트 이승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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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보컬리스트 이승철


2017. 7. 9.

부활의 2대 보컬이자 1집 보컬로 데뷔. 부활의 1대 보컬이었던 김종서가 부활로 활동한 지 6개월도 되지 않아 탈퇴하게 되자 김태원은 부활 공연을 팬이자 스텝 겸으로 따라다니던 아는 동생 이승철에게 새 리드보컬을 구해야하니 좀 도와달라고 했는데, 이승철은 본인이 보컬로 부활에 들어가고 싶다고 강력하게 어필을 했다. 그래서 이승철에게 노래를 시켰는데 생각보다 잘 했고, 몇 차례 객원보컬 형식으로 쓴 후 정식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이승철의 홈피에 가보면 자신이 김종서의 후임으로 임명된 것은 어머니의 돈줄 때문이었다는 얘기를 농담처럼 적어놨으며, 해피투게더에 출연해서는 처음에는 거절당했으나 당시 교사였던 어머니에게 1년 연봉만큼의 돈을 빌려서 음악 장비를 준비했더니 받아주었다는 이야기를 하기도 했다. 그리고 이 때부터 김태원과 이승철의 수십년에 걸친 애증관계가 형성된다.



그리고 데뷔 때부터 부활은 희야로 메가히트를 치게 되고, 당시 최고의 대중성을 지닌 록밴드로 떠올랐다. 다만 밴드의 특성상, 다른 멤버에 비해 이승철이 얻는 관심이 90%에 달했다. 어느 정도냐면 부활하고 김태원은 몰라도 이승철만 아는 사람이 수두룩할 정도로, 예능에 김태원이 나왔을 때도 이승철이 밴드에 들었었냐라는 말을 들었다. 한마디로 밴드 부활이 아닌 이승철의 밴드였다는 말. 당시 이승철은 잘생긴 외모덕에 여성팬도 많았으며, 노래 외에도 각종 TV/라디오 방송에 출연해서 수준급의 입담을 과시하며 아이돌급 인기를 누렸다.

하지만 몇년 지나 김태원이 마약 복용으로 인해 교도소에 가고, 이승철이 팀을 떠나면서 부활은 허무하게 해체된다. 그런데 이 부분은 김태원과 이승철의 말이 갈리는데, 김태원은 이승철이 떠나 해체되었다고 주장하는 반면 이승철은 매니저의 CF 출연료 착복으로 합의하에 부활을 해체하고, 다시 부활이라는 이름으로 된 밴드를 만들지 않겠다고 결정했다고 한다. 당시 김태원이 마약으로 제정신이 아니었으므로 이승철의 말이 맞다. 이는 이후 당시 매니저였던 백강기씨가 본인의 블로그에서 부활을 해체하면서 더이상 부활이라는 밴드이름은 쓰지 않고, 김태원은 '더 게임'으로, 이승철은 솔로로 활동하기로 합의봤다라고 포스팅한 바 있다. 단, 이승철은 손무현과 '걸프렌드'라는 그룹을 결성했다가 이후에 솔로로 데뷔했다.

이승철은 솔로로 데뷔하자마자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는데, 그 와중에 대마초를 피우다 걸리는 바람에 구속되어 몇 년간은 방송 출연까지 금지당한다. 그런데 방송출연이 없는 와중에도 꽤 인기를 유지했다. 농담반진담반으로 이 기간에 박명수가 이승철 흉내를 내고 다녔고, 그래서인지 잊혀지지 않았다고. 이승철 본인도 방송에서 박명수와 관련된 질문이 나올 때마다 자신을 흉내내주던 박명수에게 고마움을 표하곤 했으며, 당시에도 박명수가 1999년 자신의 솔로 1집에 수록한 이승철의 대표곡인 '친구의 친구를 사랑했네'라는 노래를 듀엣으로 부르자는 제안에 이승철이 흔쾌히 수락해주어 상당한 화제가 되기도 했다. 박명수 역시 이런 이승철의 도움이 자신에게 있어 평생 잊지 못할 고마움이라고 회고하기도. 이후 이승철 딸과 박명수 딸이 같은 유치원에 다니기도 해 친해졌다고 한다.

이승철이 이렇게 되는 동안 부활은 비운의 보컬 김재기를 영입하기까지 매우 힘겨운 시간을 걷게 된다. 3집도 이승철이 불렀다면 우리가 알고 있는 부활의 명곡 '사랑할수록'도 이승철의 곡이 되었을지 모른다. 이후 2002년에 다시 부활과 뜻을 모아 스페셜 음반을 발매하는데 이 음반에 수록된 곡이 그 유명한 '네버엔딩스토리'다. 그리고 이 음반이 반응이 좋자 정규 8집 앨범 '새벽'이 된다. 하지만 8집을 끝으로 그는 다시 부활을 떠나 솔로활동을 하게 된다.


1990년대에는 신승훈이나 김건모에 밀렸다는 평이 많았지만, 2000년대 이후 동시대 가수들이 잊혀져가는 동안에도 꾸준히 히트곡을 내놓으면서 평가가 높아졌다. 1986년 데뷔 이래 부활의 보컬로 활동해서 낸 앨범을 포함해 총 14개의 정규 앨범을 내고, 콘서트도 2000회 이상 연, 앨범과 콘서트를 꾸준히 병행하고 있는 몇 안되는 가수 중 한명. 그리고 슈퍼스타K를 비롯해 방송 활동도 동년배 가수들에 비해 잦은 편. 또한 OST는 좋았다의 적절한 예시라고 할 수 있는 비천무의 '말리꽃' 이후로 영화나 드라마의 OST 분야에서도 '인연', '그런 사람 또 없습니다', '그 사람' 등이 호평을 받으며 좋은 성적을 내고 있다.

가창력

전성기 기준 우리나라 보컬계에서 톱클래스 위치다. 노래의 미묘한 멜로디를 살리는 데에 천부적인 재능을 갖고 있다. 노래의 섬세한 부분을 표현하는 데 있어 장인에 가까운 모습을 보여준다. 단어 하나하나마다 리듬적인 느낌을 살리면서도 그것이 하나의 멜로디로 자연스럽게 연결되게 만들어낸다. 이것이 이승철이 부른 노래를 타 가수들이 불렀을 때 느낌이 살지 않는 이유 중에 하나이다. 김범수도 부른 '떠나지마'의 후렴구를 예로 들자면, 김범수는 가사를 그냥 평이하게 연결해서 부르지만 이승철의 경우는 떠-나-지-마 한 글자 한 글자마다 억양과 리듬을 넣어 같은 소절이라도 훨씬 풍성하게 들리게 한다. 그러면서도 노래의 멜로디적인 부분이 전혀 줄어들지 않으며, 그만의 독특한 음색이 노래의 분위기를 더 살려준다. 그야말로 노래를 위해 태어난 사람이라는 수식어가 어울리는 가수이다.

안녕이라고 말하지마, 희야, 오늘도 난을 비롯한 90년대 수많은 히트곡을 통해 보인 노래실력으로 항상 가창력을 논하는 자리에는 빠지지 않는 인물이었으며 2002년 '네버 엔딩 스토리'로 한참 활동할 당시에는 우리나라 역대 최고의 보컬 소리도 심심찮게 들었다. 가창력 하나만 논하자면 복식호흡과 깔끔한 발음(딕션)의 본보기. 불후의 명곡2에 출연해서 본인이 직접 말한바에 의하면 한창땐 대표곡 중 하나인 마지막 콘서트의 하이라이트 부분 "밖으로~ 나가버리고오오오오오오오~"를 50초까지도 끌어봤다고 한다. 복식호흡은 이승철을 닮았다고 주장하는 박명수가 종종 흉내내어 '복식호통'을 치는 자신의 기믹으로 삼은 바 있다. 또 곡 해석력이 뛰어나서 슬픈 노래라고 무작정 흐느끼지 않고 절제해서 부르는 능력이 탁월하다. 다만 이 부분은 절친 신승훈이 농담 삼아 디스를 한 적이 있는데, 본인은 노래가 끝나고 여운을 주지만 이승철은 성격이 급하다보니 바로 웃으면서 감사합니다! 하고 인사를 해서 감동을 깬다고.

국내에서 유일하게 가왕이란 호칭으로 불리는 조용필이 공식적으로 인정한 보컬. 단, 이혼 이전의 전성기 시절 이야기로 "조용필의 뒤를 이어서 누가 공연계의 제왕이 되겠느냐?"는 질문에 답하면서 한 말이다. "그래도 승철이가 느낌을 좀 살리지 아마?". 일반 대중들의 인식 속엔 여전히 포스트 조용필로 이승철을 떠올리는 경우가 많으며 이것조차 세월이 지나서 요즘엔 포스트 이승철을 논하는 시대가 왔다. 대중들 사이에선 김나박이가 흔히 거론된다. 정작 이승철은 tvn 현장토크쇼 택시에 나와 포스트 이승철로 신승훈을 지목했다. 또한 임재범은 가요계에서 본인의 라이벌로 꼽을만한 가수는 이승철과 조관우 둘뿐이라는 말을 하기도 했다. 칭찬에 인색한 임재범 성격을 감안하면 칭찬에 후한 편인 조용필에 비해 어찌보면 더 희소성 있는 칭찬일지도.


부활 데뷔 초에는 락보컬이었고, 현재의 음색과는 달랐다. 미성이면서도 지금보다 훨씬 허스키했고, 쇳소리까지 냈다. 사실 지금도 소녀시대 같은 곡들을 부를땐 쇳소리가 난다. 박명수가 이승철 모창을 하면서 소리를 내지르는 모습을 보고 이승철과 안닮았다고 생각할 수도 있는데, 2000년대 초반까지 나온 앨범들을 들어보면 정말 박명수가 불렀다고 해도 믿을 정도로 비슷한 음색의 곡들이 여럿이다. 그래도 타고난 미성이었던지라 1집 수록의 '인형의 부활' 같은 경우는 '연주는 좋은데 보컬 목소리가 너무 애다'라는 평도 들었다.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음색은 허스키한 맛은 사라졌지만 더욱 아름다워졌다고 봐도 무방. 

이제는 가창시 가성 사용이 늘어나면서 데뷔 초 보여줬던 날카로운 미성의 고음은 잘 듣기 힘들다는 평가를 받는다. 2006년 8집쯤을 기점으로 눈에 띄게 목소리와 사운드를 경량화하기 시작했고, 10집 즈음해서는 확실히 힘이 많이 빠졌다. 물론 전성기와 비교할시 그렇다는거지 아직도 가수로서의 가창력은 뛰어난 편이다. 2010년에 있었던 25주년 콘서트에서도 여전히 건재함을 과시했다. 이승철의 팬이라면 '말리꽃' 무대는 필견. 이젠 본인도 가창력을 전면으로 드러내기보다는 편하게 감정을 살리는 방향을 목표로 하는 듯 하다. 이승철 본인도 대중과 가수 본인이 선호하는 창법에 대해 괴리감이 있을 수 있다고 언급한 적이 있는걸 보면 일부러 바꾼 측면도 있는듯 하다. 팬에 따라선 오히려 지금의 창법을 선호하는 경우도 있으니 취향차인듯.

현재 이승철의 음역대는 진성 기준으로 0옥타브 라(A2)에서 2옥타브 시(B4)정도. 가성 기준으로 3옥타브 솔(G5)까지 올라간다. 사실 이승철의 음역대가 낮은건 결코 아니지만, 초고음을 지르는 락커들처럼 엄청 높은 것도 아니다. 같은 위치에 있는 국내 톱클라스 보컬들과 비교하면 사실 조금은 음역대가 좁은 편이기도 하다. 물론 한창 젊은 21살 부활일때 희야 라이브에서 진성으로 3옥타브파까지 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승철의 가창력이 이토록 평가받는 이유는 자신의 음역대 안에서 저음과 중음, 고음 가릴 것 없이 음색의 질이 거의 변하지 않고 소리를 편하게 내기 때문인데, 이건 이승철 노래만 들을땐 그저 듣기 좋다 정도로만 여기고 간과하기 쉽지만, 이승철 곡을 다른 가수들이 부르는 경우와 비교해보면 확연히 티가 난다. 이른바 말하듯이 노래한다는 말의 표본일지도. 다만 이 때문에 기교는 있는데 마음을 울리는 노래를 부르지는 않는다는 비판도 있다. 

가끔 가다 유튜브를 보면 원키로 자기 노래를 잘 부르지 않는 이승철은 과대평가된 가수다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간혹 있는데, 원키로 소화한다고 무조건 노래를 잘 부르는게 아니다. 원키로 소화하든 1키를 낮추든 몇 키를 낮추든 감정을 잘 살려서 청중들에게 감동을 줄 수 있으면 그게 노래를 잘부르는거다. 


쇼프로에 나와서 하는걸 보면 목을 정말 애지중지하는 편. 그러나 조용필이나 이선희가 50이 넘은 나이에도 아직 '쩌렁쩌렁' 울리는 보이스를 가지고 있는 반면, 이승철은 상대적으로 힘이 많이 약해진 것은 부인할 수 없다. 그런데 반대로 사실 이승철은 한국에서 목소리를 잘 보존한 편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위에서 비교대상으로 언급된 사람 중 한명인 이선희는 제자인 이승기도 밝힌 바 있듯이 사생활에서 반찬과 물 마시는 것조차 극도로 조심할 정도로 목관리를 철저하게 하는 스타일인데 반해, 이승철은 술과 담배를 지속적으로 해온 사람이다.그러면서도 정말 많은 공연을 소화하는 가수인 것. 다만 담배는 2000년대 접어들면서부턴 10년 넘게 금연 중이라고 한다.

미성이라서 잘 부른다는 평가를 하는 사람도 있으나, 미성은 단지 타고난 음색일뿐 유지하는게 공짜로 그냥 되는건 아니다. 유영석, 윤종신처럼 활동초기 미성으로 평가받던 가수들의 전성기와 지금이 얼마나 다른지 상기해보자. 타고난 미성만으로 노래하는 가수는 중년의 나이대에 망가지기 쉽다. 오히려 임재범 같은 허스키 보이스가 의외로 오래가는 경우가 많다. 다만 미성으로 타고났더라도 조용필이나 신승훈처럼 관리만 잘하면 오래가기도 한다. 애초에 목소리가 변한다는것 자체가 성대에 '상처'를 입히면서 노래를 불렀다는 증거이기도 하고.. 결국 케이스 바이 케이스. 그러니 성대 수술까지 해야했던 유영석의 경우나 적극적으로 술, 담배를 하면서 목소리가 변하는 과정이 여실히 드러난 윤종신의 경우처럼 확실한 경우가 아니라면 함부로 속단하거나 적용하지는 말자.

가성 사용과 관련해 평가가 박한 편이지만, 이승철 특유의 발음처리로 회자되듯 전반적으로 '부드러움'을 추구한 결과일 뿐이며 이 또한 가창 테크닉, 즉 창법의 일환이다. 인터넷에서 세분화된 발성강좌가 널리 퍼지면서 지나치게 세밀한 분류가 일반화됐는데, 그냥 일반적으로 전문적인 보컬들이 논하는 '가성'은 흔히 말하는 두성부 발성을 이야기한다. 두성(가성) 아니면 흉성(육성/진성). 이 두 분류만으로 이야기하는게 일반적. 애초에 직접 대면해서 가르치는데 단어로 세분화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기도 하고, 지나치게 용어를 세분화해봐야 혼란만 가중되기 때문이다. 만약 흔히 이야기하는 '그냥 호흡만으로 바람 빠지는 소리를 내는' 가성만으로 계속 발성한다면 결과적으로 성대에 타격을 줘 목소리의 성질 자체가 변해버리게 된다. 물론 대중가수는 마이크의 도움없이 두성만으로 노래해야 하는 성악가가 아니기 때문에, 섬세한 표현을 위해 목에 타격을 주더라도 일부러 그런 소리를 내기도 한다. 하지만 이승철처럼 콘서트를 계속하는 공연 주력 가수가 발성을 못해서 그런 가성으로 처리한다는건 알맞지 않는 분석. 초창기 쩌렁쩌렁하다 못해 카랑카랑하기까지 하던 고음처리에서 현재의 부드러운 처리로 취향 자체가 바뀌었다고 보는게 맞는 평가이다. 물론 나이가 들면서 스테미너가 떨어지는 부분도 있겠지만 그건 뭐 사람인 이상 어쩔 수 없는거다. 오히려 쉰이 넘어서도 수준급 노래와 퀄리티를 뽑아낼 수 있는 것을 보면 참으로 대단한 가수이기는 하다. 


녹음할 때는 곡의 분위기에 맞는 술 한 잔 정도 걸치고 '한번에' 간다고 한다. 그런 탓인지 정박에 익숙한 사람이 듣기에는 미묘하게 박자가 빠르거나 느리다는 인상을 받기도 한다. 널리 알려진 곡 중에서는 '말리꽃'의 경우가 대표적. 호불호가 갈릴수도 있지만, 이승철 특유의 매력으로 받아들이기도 한다. 다만 11집 인터뷰 원테이크 녹음 방식을 버리고 여러번 끊고, 다시 들어가면서 공들여 녹음하는 방식을 선택했다고 한다.

김연우, 박선주 등의 보컬 트레이너 10명을 대상으로 한 시대별 국내 최고의 남녀 보컬리스트 설문조사에서 1990년대 부문에서 김건모, 임재범에 이어 3위를, 2000년대 부문에서 1위를 차지했으며,같이 진행한 시대/성별을 막론한 최고 보컬리스트 부문에서 조용필의 뒤를 이어 2위를 차지했다. 간발의 차로 임재범이 3위. 또한 음악전문가 20인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에서 '가장 노래 잘하는 가수' 부문에서는 조용필의 뒤를 이어 2위, '기술적 능력이 뛰어난 가수' 부문에서는 단독 1위, '감성적 능력이 뛰어난 가수' 부문에서는 김광석, 김현식, 김동률과 함께 공동 1위를 차지했다. 문화일보에서 조사한 '지난 20년 국내 최고의 가수' 설문조사에서는 조용필에 이어 2위를 차지하고 같이 진행한 '지난 20년간 최고의 노래' 설문조사에서는 이승철이 부활의 보컬리스트로 활동하면서 부른 '네버 엔딩 스토리'와 '희야'가 각각 2위와 4위를 차지했다. 1위는 돌아와요 부산항에.

슈퍼스타K

엠넷의 슈퍼스타K 시리즈에 지속적으로 심사위원으로 출연. 특유의 독설 판정으로도 유명하다. 일반적으로 칭찬 또는 '취향을 타는 것 같다'는 식의 말들을 앞에 깔아둔 뒤, 마지막에 '제 점수는요' 하면서 뒤통수를 치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다. 자기가 아니다 싶으면 아닌 스타일인듯. 슈퍼스타K 시즌1 결승에 불참했는데 이를 두고 자신이 반대하던 서인국이 결승에 올라가서 안나왔다는 루머까지 있었을 정도.

슈퍼스타 K2 2차 본선이 있기 며칠 전엔 이승철의 녹음실이 침수되기도 하였다. 큰 피해는 없었지만, 그로 인해 빗속에서를 부른 존박이 피해봤다는 소문이 있다. 실제로 평소보다 별로였다고 평한 장재인의 점수가 89점이였고, 잘했다고 평한 존박의 점수가 89점이였다. 응..? 음주운전을 하다가 걸린 적도 있다.


K3에 오면서부터는 그 '특유의 독설'이 많이 사라지고 과거에 비해선 보다 부드러운 평가를 하고 있다. 신청자들에게 맞춤 심사를 한 짤방이 매우 웃긴다.

그러나 K4에서도 가끔 잉여력이 대폭발했는데 대표적으로 참가자 김민준이 김광진의 편지를 불렀는데 "야 노래 좋다. 그거 누구 노래냐??" 싸이는 정말로 당황해했고 시청자들도 어이없었던 것이 작년 K3에서 이정아가 '김광진의 편지'로 생방송 첫 무대를 했다! 그걸 차치하더라도 김광진이라는 이름은 한국 음악사에서 한번쯤은 짚고 넘어가는 중요한 가수 가운데 한 명이다. 그리고 이후 '이승철팬'이라는 이름의 유동닉이 수많은 사이트를 돌아다니며 '일부러 보란듯 그랬나부지ㅋ 김광진이 연대 나오고 미시간 나와서 해외파라 빽 좀 있으니까 PD들 인맥도 좀 있고 솔까 슈스케3에서 크리스, 이정아, 버스커까지 김광진 노래 부를 정도로 메리트 있진 않았는데? 김현철, 윤상, 김건모, 윤종신, 유희열, 신승훈, 윤건 등등 가수가 얼마나 많냐? 빽이지.. 이승철이 훨 낫다 가식적이지도 않고'라는 댓글로 커버를 치기도 했다. 그리고 유명한 짤방인 어서와가 나온 시리즈이기도 하다.

K5는 시리즈 자체가 역대 최악의 시리즈였다는 혹평을 받고 걍 잊혀졌다.


K6에도 출연했다. 그래도 K5보단 성공해서 체면치레는 한 셈.

K7에서는 드디어? 이승철이 빠졌다. 뉴스룸에서 본인이 밝힌바론 다년간 심사위원을 하다보니 '넌 얼마나 잘부르나 보자'라는 일부 시선이 부담도 좀 됐고, 그래서 월드투어도 하는 김에 좀 더 콘서트 무대에 집중하고 싶어서 하차했다고. 이후 라디오스타에서 밝히길 원래 자기 계약은 K5까지였는데, K5가 폭망해서 그래도 유종의 미를 거두고 싶단 생각에 K6까지 출연했는데 K6는 그래도 제법 괜찮게 끝나서 하차했다고.


구설수
부활(특히 김태원)과의 애증관계는 그의 인생사에서 큰 부분을 차지하는데 부활이 처음 찢어질 때도 잡음이 있었고, 이후 네버엔딩스토리로 다시 뭉쳐 활동할 당시에도 팀명을 이승철 with 부활로 써서 논쟁이 있었고, 네버엔딩스토리의 mr을 들고 혼자 행사를 뛰어 비판받기도 했다. 그렇게 사이가 틀어진 후 '서로 안좋은 감정이 많다. 잘못해놓고 그때 미안하다라고 말하면 뭐 하나. 그건 좀 아닌 것 같다'라고 말했는데 음주운전이 적발된 이후 김태원의 삶을 조명한 2010년 12월 드라마 '락락락'의 기자회견장에 나타나 김태원과 웃으며 악수하는 등 화목한 모습을 보여줬다. 김태원과의 관계를 어렴풋이 아는 대중들에겐 음주운전 적발을 화해무드로 돌파하려한다며 김태원을 이용해먹는다고 까였다. 과거엔 뒷담화를 하다가 변진섭이 그래도 걘 널 그렇게 얘기 안하더라고 일침을 꽂은 사실이 알려지면서 이미지가 더 시궁창이 되었다. 허나 지금은 연락도 하며 잘지내는 듯? 김태원과의 관계에 대해 이승철이 직접 말한게 궁금한 사람은 '힐링캠프-이승철 편'을 보자.

라이브에서 원키로 부르지 않는다는 논란에 많이 시달리는데, 본인은 '녹음을 반음 높여서 한거다'라고 반박한다. 물론 가수의 아우라를 느낄 수 있는 라이브 공연과 달리 음악만 감상할 수 밖에 없는 음반의 경우, 타가수들도 일부러 한두 키를 높여서 녹음하는 경우가 실제로 있는건 맞다. 음반만 들었을 때 라이브 느낌을 주기 위해 녹음버전을 반음 높인다라고 생각하면 된다.

1990년대 당시 최고의 인기를 달리던 탤런트 강문영과 결혼해서 스타부부로 인기를 얻었지만 얼마 못가 이혼했다. 이때 강문영 측에선 이승철이 결혼생활 중 폭력을 행사했다고 주장해 구설수에 오르기도 했다. 사실 이승철은 응급실에서 의사를 폭행한 전력이 있다. 교통사고를 당한 아내 강문영을 응급실로 데려 왔는데, 당직 의사가 강문영을 이동 침대로 옮기던 중 "환자를 그렇게 옮기면 되냐.", "너도 의사냐."고 화를 내며 얼굴을 폭행, 의사의 고막이 파열되면서 전치 4주의 부상을 입힌 바 있다. 이후 강문영은 한 잡지 인터뷰에서 '그는 나와 결혼하였지만 사실 이미 음악과 결혼한 상태였다.'는 발언을 했다. 이승철의 가정에 대한 무관심을 표현했던 것으로 보인다.


표절시비 때문에 논란이 되기도 했는데, 대표적으로 '소리쳐'가 있다. 영국의 POP Idol 1회 준우승자로 국내에서도 큰 사랑을 받은 가레스 게이츠(Gareth Gates)의 listen to my heart와 유사하다는 의견이 나와 표절논란이 일었고 결국 원곡 작곡가가 소리쳐를 공동작곡한 걸로 끝나는 듯 했으나, 소리쳐의 작곡가인 홍진영은 어째서 이게 공동작곡처리가 되어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주장하여 비난을 받았다. 허나 두 곡 모두를 아는 사람은 표절이라는 것에 찬성하였고 그는 수긍할 수 밖에 없게 된다. 이승철도 직접 작곡한건 아니지만 곡을 선택한 가수로서 일정 부분 책임논란을 피할 순 없었다. 그 외에 '친구의 친구를 사랑했네'의 경우 일본 퓨전 재즈 그룹 카시오페아의 Me Espere을 표절하였다는 논란이 일었는데, 나중에 원작자 명의로 바꾸고 리메이크 곡으로 바꾸었다. 그런데 이건 당시 일본문화 수입금지 시대라서 심의허가가 안나서 이승철곡으로 등록하고 저작권료는 계속 일본 카시오페아로 줬다는 말이 있다.

나는 가수다가 처음 방영될 때 부정적인 의견을 비췄으나, 입장을 바꿔서 "나가고 싶다"라고 언급을 하였다가 다시 입장을 바꿔서 "노래자랑질"하고 싶지 않다고 언급. 당연히 대폭 까였다. 본인이 말하기를 25년 음악 인생을 그런 콘테스트에 나가서 테스트받고 싶지는 않다고. 이걸 두고 슈퍼스타K의 심사위원으로서 다른 사람의 음악 인생을 평가하는 입장에 있는 게 모순이 아니냐는 견해도 있지만 전문성을 지닌 음악인으로서 다른 사람을 평가하는 것과 나가수의 청중평가단 시스템을 비교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 일부에선 대중 음악가로서 이승철은 대중들에 의해 평가가 결정되는 운명을 갖고 있으며 그런 대중의 평가를 불신하는 것이 오만하다고 비판하기도 하지만, 가수들을 일렬로 경연시킨 뒤에 청중들의 일시적인 호오의 감정에 따라서 탈락자를 추려내 망신을 주는 나는 가수다의 시스템이 누군가의 대중 음악가로서의 성과를 반영할 수 있는 잣대가 될 수 있을까? 차라리 이승철이 지금까지 낸 히트곡의 숫자를 세어보는 게 더 정확한 평가가 될 것이다. 물론 나가수에 대한 의견은 가수 뿐 아니라 대중들 개개인도 다 다르게 갖고 있는 것이니 그 내용 자체를 비판하는건 부당할 수 있으나, 다만 이승철은 내용보단 계속되는 말바꾸기로 욕을 먹었다.

송포유라는 프로에 참가하여 자신의 전과를 부풀리는 등 엄청난 흑역사를 적립했다. 후배인 이하늘에게는 슈스케 심사 도중 "조용히 하시죠? 송포유 이승철씨"라고 면전에서 디스를 당하기까지 했다.

2014년 새해벽두부터 논란이 일었는데 코어콘텐츠미디어에서 이승철이 음원을 무단으로 사용했다고 소송을 걸 예정이라고 한다. 이에 이승철 소속사가 우린 잘못이 없다며 명예훼손 등으로 맞고소를 한다고 선언했다. 헌데 알고보니 CJ E&M측의 정산오류라는 얘기가 나왔고 CJ측이 정산하기로 하면서 양측 얘기가 끝난 것으로 보인다. 결론적으로 보면 이승철이 애꿎은 욕을 먹은 셈.


2014년 7월 시아준수의 팬들과 시비가 붙었다. 이승철이 시아준수의 노래를 리메이크해서 불렀는데 홍보 과정에서 미리 약속한 부분인 원곡에 대한 언급을 전혀 하지 않고 오히려 공식트위터로 한 팬과 문제가 불거지자 시아준수의 팬들이 이의를 제기한 것. 그러자 이승철이 이에 대한 해명은 없이 '리메이크는 원곡가수를 표지하지 않는게 상례다. 무엇보다 팬들이 시아준수의 노래를 1등 만들어서 모든 사람이 알 수 있게 하는 것이 더 현명한 방법인데, 나이 50에 데뷔 30년 된 가수에 대한 존경심이나 배려가 전혀 없이 공개사과하라는 방식은 좀 쓸쓸하다'는 글을 올려서 논란이 되었다. 이에 시아준수 팬들은 리메이크가 허락을 구할 필요는 없더라도, 노래를 부른 당사자와 작곡가에게는 미리 알리는 게 예의라고 그 동안 '후배 가수들이 선배가수의 노래를 리메이크'할 때는 꾸준히 문제가 되고 있었는데, 후배 가수의 노래를 선배 가수가 부를 때는 이러한 관행을 없는 것 취급한다며 비판을 했다.

2014년 11월 9일 일본에서 입국거부를 당하는 일이 벌어졌다. 이승철의 인터뷰를 참조해보면 현장 관계자는 필로폰, 대마초 경력 때문에 입국을 할 수 없다고 주장했고, 이승철 본인은 평소 일본에 별 문제 없이 드나들다가 갑자기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은 독도에서 열었던 음악회 때문인 것 같다고 밝혔다. 그리고 반일 블랙리스트가 있는 것 같다는 주장도 나왔으며, 정부에서는 일본 대사를 불러 입국거부 사태에 대해 강력 항의했다. 이승철은 이에 한일관계가 개선되길 바란다고 밝히며 독도 콘서트에서 불렀던 통일송 '그날에'를 12일 네이버 블로그를 신설하고 무료로 배포하였다.

한 일본인 네티즌이 유튜브에 단 댓글에 의하면 전까진 잘 입국하다 필로폰, 대마초 경력이 지금와서 문제가 된 것은 그동안은 전과 기록이 있던 것을 누락하고 입국해왔는데 공중파에서 방영된 프로그램인 송포유에서 친 전과9범 드립이 일본에도 알려지면서 허위 신고한게 드러나 입국이 거부된 것이라고 한다. 관계자가 아닌 일반 네티즌의 주장인 만큼 걸러들을 필요가 있지만 이게 사실이라면 위의 반일 블랙리스트, 독도 음악회와는 아무 상관이 없을 수도 있다. 때문에 이에 대해 이승철이 너무 성급히 양국 감정 문제를 꺼낸거 아니냐는 지적도 있다.

비슷한 건으로 실제로 2015년 초 미주 콘서트 계획이 잡혀 있었다. LA와 뉴욕에서 콘서트를 하기로 했었는데 전과기록등으로 비자를 받지 못해 공연 직전 취소를 발표, 미리 티켓을 구매했던 미주 교민들의 비난이 폭주했었다.

... 그런데 무서운 건 부활 때부터 지금까지, 근 30년의 가수 인생 동안 수도 없이 구설수에 시달렸으면서도 꾸준히 음반/방송/콘서트 활동을 계속하고 있고, 인기도 어느정도 유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레알 가요계의 생존왕.


여담

젊은 시절, 높은 인기에 힘입어 1992년 박찬욱 감독의 데뷔작인 달은… 해가 꾸는 꿈이라는 영화에 주연으로 출연한 적이 있다. 하지만 이는 감독의 의사와 관계없이 '당대 인기있는 (일종의) 아이돌 스타를 주연으로 해야 영화가 흥행할 것'이라는 제작사의 입김이 들어간 캐스팅이었고 박찬욱 감독의 자서전 등에 따르면 이승철이 열의는 있었는데, 워낙에 스케줄이 바쁘다보니 촬영장에 오긴 왔는데 그 날 뭘 찍는지는 모르고 왔다고...그나마도 목소리는 다른 사람이 후시녹음했다.그리고 영화는 쫄딱 망했다. 박 감독 본인도 흑역사로 생각하는지 모 인터뷰에서 시간만 되면 이 영화 비디오를 전부 다 없애버리고 싶을 정도라고 농담삼아 말한 적이 있다.

싱어송라이터로써 번뜩이는 재능을 보이지는 않지만, 신인 작곡가들을 기용하면서 대중의 트렌드를 꾸준히 쫓아간다는 평가를 받는다.

절대음감을 가졌다는 이야기가 있다. 다만 이 기사 외에는 실제로 그런지 확인된 바가 없어서, 절대음감에 대한 환상을 가진 일반인들 사이의 풍문이 와전된 것일 가능성도 있다. 슈퍼스타K4에서 시각장애인 참가자의 절대음감을 부럽다고 한 바가 있는데, 이것 역시 실제로 부러워서 한 이야기인지 그냥 흐름상 그렇게한 것인지 정확히 판단하기가 애매한 상황이라 절대음감 여부를 판가름할 근거가 되진 못한다.

나가수 발언으로 욕을 먹긴했지만 그래도 임재범의 출연 이후에 기대치가 높아진 대중들 때문에 나가수 이야기만 나오면 수도 없이 거론되는 인물이기도 하다. 솔직히 가창력은 정말 손꼽히는 사람이니까. 임재범이 한창 나가수에서 활약할 때 디씨에서는 임재범vs이승철 논쟁이 벌어지기도 했다. 8~90년대에 10대들이 할만한 논쟁을 21세기가 되어서 다시 하고 있다. 유행은 돌고 돈다더니.


싸이월드 방명록에 댓글을 일일이 달아준다. 심지어 민감한 부분을 건드려도 '허허' 웃거나, 맞대응해준다. 이에 사람들은 멘탈甲 승철신이라는 별명을 선사했다. 귀찮지않냐는 물음에 투데이 두자릿수 찍는 것보다는 낫다고.

이미지가 별로 안 좋아서 그렇지 사실 알고보면 일전부터 기부 등 금전적 선행을 꾸준히 한 편이다. 아프리카 지역의 학교 설립에 30억을 쾌척하기도 했고, 100여명의 심장 질환병이 있는 아이들을 돕기도 했다.

보통 인기를 얻고 어느정도 지위가 쌓이면 방송활동을 접고 콘서트에만 집중하는 많은 가수들과 달리, 상대적으로 방송출연이 잦은 편이다. 2016년 라디오스타에서 밝히길 청취률 순위 1~20위권 라디오방송을 전부 꿰고 있으며 '일기장' 홍보를 위해 모두 출연할 예정이라고 한다. 실제로 전부 나가진 않았지만 두시탈출 컬투쇼, 배철수의 음악캠프 등 인기 방송은 물론이고 김현정의 뉴스쇼 같은 아침 뉴스까지 다수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했다.

초창기 시절의 자신의 보컬을 부끄러워 하는 듯한 발언을 방송에서 몇차례 하기도 했다. 누군가를 따라하기만 하던 시절이라고 평하기도. 1집 수록곡인 인형의 부활도 부끄러워 하는 모습을 한 연예 정보 프로그램에서 보이기도 했는데 '태원이형이 목 긁고 기합 좀 넣고 그러면서 불러보라고 자꾸 시켜서 막 악써서 불렀던 곡이었어요'라고 하기도.

와인 애호가다. 2016년 마리텔에 김구라의 와인 편에 나와 말한 바에 의하면 90년대쯤부터 마시기 시작했는데, 이때만 해도 와인을 마시면 재수없다는 인식이 좀 있었는데 요즘에는 와인에 대한 수요가 굉장히 많이 늘었다고 기뻐하기도.

본래 앨범만 나오면 불교식 기원도 지내고 이승철 본인이 다니던 절의 주지스님에게 가장 먼저 앨범을 주고 본인 콘서트에 스님은 공짜(!)라는 이색 이벤트도 하던 불교신자였으나, 개신교인인 지금의 아내를 만난 후 가족은 같은 종교로 뭉쳐야한다는 생각에 개종했다. 아내, 아이와 함께 교회 예배에 참석하고 있으며, CCM을 리메이크해서 부른 곡들도 제법 있다. 여담으로 라디오 스타에서 개종한 얘길 하며 곡 홍보활동을 위해 불교방송에도 매니저가 갔는데 그곳 관계자가 "이승철씨 개종하지 않았어요?"라고 물어 그렇다고 하자 불교계의 큰손실이라고 했다고...


2016년 9월 26일 데뷔 30주년을 맞이했다. 30주년 소감에 이승철은 이제 음악이 뭔지 알아가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사실 40주년, 50주년 하는 선배님들도 있는데 30주년이라고 거들먹거리는 것 같아 뭔가 부끄럽다고...

2016년 10월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터지고, 한 국회의원이 최씨 일가와의 친분을 이용해 특혜를 받은 연예인이 있다는 일명 최순실 연예인 의혹을 제기하였는데, 2016년 11월 14일 부활의 전 매니저가 페이스북에 박근혜와 이승철의 투샷 사진까지 올리면서 이 리스트 중 한명으로 이승철이 지목받기도 했다. 하지만 이승철 본인은 억울함을 토로하며 근거없는 헛소문이라고 해명하였다.

하지만 2014년 8월달에 최순실의 전남편 정윤회와 박사모 회원들이 이승철과 비슷한 시기에 독도를 방문한 것으로 밝혀져 논란은 수그러지지 않을 전망이다.

이런 논란 때문에도 이승철은 박근혜 탄핵 집회에 꽤 큰 비중으로 참여했다. 집회중 공연 영상을 보면 노래 '덩크슛'을 부르면서, 후렴구를 '주문을 외워보자, 하야하라 박근혜는 하야하라.'로 노가바하기도 했을 정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