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간첩단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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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간첩단 사건


2017. 6. 28.

1969년 발생한 대표적인 공안 조작 사건이다. 박노수 교수는 영국 케임브리지대학에 재직 중이었고 김규남 국회의원은 박 교수의 도쿄대 동창으로 민주공화당 의원이었다. 

박 교수는 1955년 일본으로 건너가 도쿄대 법대를 마치고, 1961년 영국 케임브리지대 초청으로 유럽 유학 생활을 시작했다. 케임브리지대 학부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국제법을 전공한 그는 국제문제연구소 초청연구원으로 일하다 1969년 2월 귀국했다. 귀국 2개월여 뒤인 1969년 4월29일 박 교수는 중앙정보부(중정·국가정보원의 전신)에 불법 연행돼 조사를 받았다.

<유럽 간첩단 사건의 피고인으로 나온 고 박노수씨(앞줄 오른쪽) 등이 법정에 앉아 있다.>



1967년 민주공화당 국회의원으로 당선된 김 의원은 1969년 5월1일 중정에 불법 연행돼 조사를 받았다.

당시 중앙정보부는 박 교수와 김 의원 등에 대해 “1960년대 유럽에 있던 이들이 동베를린과 평양 등을 방문했던 사실을 빌미로 연행, 불법 구금하며 강압적인 수사를 벌였으며 검찰은 유럽에서 간첩 행위를 한 혐의로 이들을 기소하였다. 박 교수는 북한 공작원에게 지령과 공작금을 받은 뒤 북한 노동당에 입당, 독일 등지에서 간첩활동을 한 혐의를, 김 의원은 대학 동창인 박 교수와 이적 활동을 한 혐의를 받았다. 이후 1970년 대법원에서 박 교수와 김 의원의 사형이 확정되었고, 2년 후인 1972년에 형이 집행되었다. 당시 검찰은 중앙정보부가 수사기관의 영장없이 가혹 행위를 가하며 수사한 사실을 알았음에도 불구하고 기소를 하였고, 법원은 자백 외에는 뚜렷한 증거가 없는데도 형식적으로 사형을 선고하였다. 

진실ㆍ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는 2009년 중앙정보부의 불법 연행과 강압 수사, 협박, 고문 등으로 박 교수 등이 허위 자백하였다는 조사 결과를 발표하였고, 같은 해 유족들은 법원에 재심을 청구하였다. 이에 사형 선고 후 43년 만인 2015년 12월 29일 박 교수 등 세 명은 대법원으로부터 무죄 판결을 확정 받고 누명을 벗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