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사실은 현대건설 부실 경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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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사실은 현대건설 부실 경영


2017. 5. 23.

<정주영과 이명박 (1981년)>


사실 사람은 그렇다. 기용하는 사람이 그 사람의 재능을 알아주지 않으면 재능이란 것은 쓸모없게 되는 것이다. 내가 서울대학 출신의 많은 선배들을 물리치고 그 분을 기용했기 때문에 많이 클 수 있었다. 〈야망의 세월〉이라는 드라마가 그 분을 너무 유명하게 만들었는데, 그건 정말 작가의 장난이었다. 드라마에서 보면 이명박씨가 소양강 댐이다 뭐다 해서 다 한 것처럼 나오고 박대통령 앞에 가서 으르렁으르렁거린 걸로 나오는데 사실이 아니다. 소양강 댐 만들 때 이명박씨는 간부도 아니었고 참여도 하지 않았다. 설계에서부터 설계 시공에 이르기까지 전부 서울공대 패거리들이 했다. 모두 이씨의 (회사)선배 들이다. 
현대건설이 65년에 태국 파타니 나리왓 고속도로를 건설할 때 고속도로 건설에 반대하는 현지 주민들이 난입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이 사건과 관련해서 칼을 든 폭도들이 금고를 열라고 요구했으나 이명박씨 혼자 끝까지 금고를 지킨 무용담이 있는데 이씨는 사실 금고를 지킨 많은 사람 중의 한명일 뿐이었다. 
현대건설은 생긴지가 40년이 넘는다. 그런데 현대건설 초반기에 맡았던 공사에 그 분이 주역을 담당했다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다. 드라마상으로는 조선소 건설이나 자동차 등등 다 그 분이 한 것처럼 나오니까 사내에 보이지 않는 위화감이 많이 생기게 되었다. 
나는 밑의 직원이 매스컴에 나오면 그걸 좋게 보지만 같은 동료들은 그렇지가 않다. 그 때 저 밑에서 서류도 만져보지 못한 사람이 자기가 다 한 걸로 나오고, 그건 좋은데 초기의 중동건설도 다 자기가 한 것처럼 나오니, 그 때 이명박씨는 참가할 자격도 못 됐다. 
서울대 선배들이 다 한 건데 서로 말은 못해도 회사 내에서 분위기가 아주 어색했다. 그런 저런 이유로 해서 그 분이 떠날 분위기를 자초한 거다. 

ㅡ 정주영의 이명박에 대한 평


이명박은 1965년 현대건설 재정/경리과 직원으로 입사, 1977년 현대건설의 CEO에 올랐으며 1988년 회장에 올랐다. 

당시 이명박은 한국 건설사의 사우디 수주로 인해 활황이었던 중동 건설붐을 이어가기 위해 1978년 이라크 건설 수주 사업에 뛰어들었다.이에 총 41억 달러 규모의 이라크 인프라 건설을 최저가에 입찰하여 수주하였다. 

1980년 이란-이라크 전쟁이 발발하고 외국계 건설사들의 이탈이 가속화 되었으나 현대건설은 이라크에 대한 수주 받은 건설현장에서 작업을 지속하였다. 1980년 시작한 전쟁이 8년간 지속되어 1988년에 마무리가 되었고 당시 이명박은 이라크 건설수주 미수금에 대한 자금부족의 우려를 회복하기 위해 국내외 은행에게 자금을 빌리러 다녔다. 

1988년 이란-이라크 전쟁이 끝나고 미수금을 회수하려고 하였으나 1990-1991년 이라크-쿠웨이트 전쟁이 심화되며 걸프전으로 발발하였고 1992년 이명박은 회장 자리에 사임 후 정치권에 뛰어 들게 된다. 

이명박은 1981년부터 95년까지 공사미수금에 대한 대손충당금을 적립하지 않았고 91년도에는 미수금은 8908억여원까지 불어났다.

현대건설은 이명박의 퇴임 이후 각고의 노력에 불구하고 2000년 회계 감사에서 미수금에 대한 일괄 반영하고 2001년 워크아웃을 신청하게 된다. 당시 삼일회계법인은 2000년도 대규모 적자의 내용이 이라크 장기 미회수 공사대금이라고 공시하였고 금액은 1조 7000억원이라고 하였다.

공적자금 250억원을 수혈하게 된 현대건설은 지속적인 개선의지로 다시 회생하게 되었다. 

이후 현대건설은 2005년 미회수 공사대금의 75%를 탕감하여 미수금은 마무리가 되었다. 1조 7천억원에서 1조 3천억을 탕감하고 6천억 가량만 회수하였다. 


이명박의 현대건설 재임기간 중 1981년부터 1991년까지 영업이익은 1.4조이나 영업외 손실이 1.1조로 부채 및 환율에 따른 비영업손실이 컸으며 퇴임 이후 현대건설이 2000년 전까지(92~99) 영업이익은 3.6조, 비영업손실은 3.2조였다. 

이명박의 현대건설 취임 이후 퇴임까지 총자본은 5149억 증가하였으나 부채는 2조 증가하였고 퇴임 말 부채비율은 622%였다. 재임동안 평균 640%의 높은 부채비율을 유지하고 있어 이자비용의 부담이 높았다. 

경영성과면에서 보면 이명박의 재임기간(81~91년)동안 매출액은 평균 6% 성장하였으며 영업이익은 12% 성장을 보였다. 퇴임 이후 현대건설의 각고의 고통으로 92년~99년까지 매출액은 평균 14% 성장하였고 영업이익은 14% 성장을 보여왔다.

이명박의 현대건설 사장 취임 동안 막대한 부실은 지속적으로 현대건설의 경영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쳐왔으며 결국 2001년도 워크아웃으로 끝나게 된다. 
<세상에서 제일 어색한 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