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펜계의 AK-47 국민볼펜 모나미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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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펜계의 AK-47 국민볼펜 모나미153


2017. 1. 7.

볼펜계의 AK-47


괜히 저런 별명이 있는 것이 아니다. 저렴한 단가, 단순한 구조와 뛰어난 내구성, 짝퉁도 많고, 여차하면 마개조 까지 가능하다는 점에서 딱 AK-47의 포지션. 

싸고 튼튼하기로는 정평이 나 있지만 특히 내구도가 정말 바퀴벌레 급이라고 볼 만큼 뛰어난데, 학교 운동장 진흙탕에 오랫동안 묵혀져 볼펜심에 녹이 슬고 몸체가 누렇게 변색되어 있던 모나미 볼펜을 주워서 써봤더니 아무 탈 없이 필기가 되더라는 후덜덜한 사례가 있다. 요즘 나오는 젤리펜에 비하면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튼튼하다. 특히 바닥에 펜심 부분이 먼저 떨어졌을 경우 젤리펜은 확실하게 못쓰게 되지만 일반 볼포인트 펜(ballpoint pen)구조를 가진 모나미 153은 어지간해서는 망가지지 않는다. 물론 망가지기 쉬운 부분도 없지는 않아서 경질 플라스틱으로 된 머리 부분의 검정 파츠는 종종 펜심이 나오는 구멍 끄트머리 일부가 깨져 이가 나가는 경우가 있는데 이러면 펜심이 덜렁덜렁거려서 필기감이 매우 나빠진다. 초기 버전부터 있었던 문제. 현행 버전은 필압이 강한 사람의 경우 볼펜 몸통과 머리 부분를 연결하는 수나사 부분이 부러져나가는 경우가 있는데 구버전에선 같은 상황에서 수나사가 부러지는 게 아니라 암나사가 갈라져 몸통이 터졌으니 쌤쌤. 체감상으로는 그래도 현행 버전이 내구성이 약간 높은 것 같다.



구조적으로도 노크, 스프링, 심으로만 구성된 단순한 구조 덕에 고장날 데가 없다. 말 그대로 낡아서 부서지기 전까지 쓸 수 있을 정도로 내구성이 높은데, 그 덕분에 심만 교체해가며 꽤 오래 쓸 수 있어 안그래도 높은 가성비가 더 올라간다(!). 1990년대까지는 문구점에서 낱개로도 심을 판매했지만 요즘은 수요가 없는지 대부분 낱개로는 판매하지 않고 12개 단위로 묶어서 판매한다. 요즘 물가 대비로는 워낙에 싸다보니 다 쓰면 굳이 심을 바꾸지 않고 새 것을 사는 경우가 많아서 그러는 것 같다.

이런 저렴하고 강력한 내구도에도 불구하고 학생들에게는 별로 인기가 없는 편인데 교과서 필기용으로는 굵기가 굵고 일명 '볼펜 똥'으로 불리는 잉크 찌꺼기가 많이 나오는 제품 특성상 필기량이 많은 학생들이 쓰기에는 불편하기 때문. 유성 볼펜은 피할 수 없는 숙명이라지만 153은 정도가 좀 지나치다. 거기에 하이테크와 같은 젤리펜에 익숙해져 있다면 뻑뻑한 필기감으로 호불호도 갈리는 편. 하지만 관공서와 같은 공공장소에서 비치하는 볼펜이라든가, 필통에 한자루씩 넣어두는 비상용 볼펜으로는 이만한 것도 없다. 앞에서도 서술했듯이 단가도 싸고 땅에 떨어뜨리면 고자가 되는 하이테크, 젤리펜들과 달리 내구성에서 탑을 달리기 때문.

군대 가면 훈련소에서 수양록이나 편지 쓰라고 지급하는 볼펜도 모나미 153인데, 당연히 군에서 이것을 주는 이유는 저렴한 단가와 막강한 내구성 때문이다. 훈련을 받다보면 주머니에 볼펜을 넣어둔 채로 구를 일도 있을 것이고 물이 닿을 일도 예상하기 어렵지 않지만 저 무지막지한 내구성 앞에서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여담으로 그림쟁이 훈련병의 경우 모나미 153 볼펜과 교육훈련 내용 적으라고 주는 학습장 노트 밖에 그림을 그릴 도구가 없기 때문에 이것만 가지고 오만가지 그림을 다 그리면서 놀게 된다.  유성 볼펜의 특성상 선의 농도를 연필처럼 조정이 가능하기 때문에 그림을 수정할 수 없다는 결점만 제외하면 연필과 거의 비슷하게 사용할 수 있어 표현력이 생각 외로 꽤 괜찮은 편이다. 그림 그리는 사람 실력만 좋으면 상당한 퀄리티의 그림이 나온다. 군생활을 겪으며 모나미 153의 위대함을 몸소 체험한 그림쟁이가 제대 후에도 모나미 153을 그림 그릴 때 애용하는 경우도 종종 찾아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