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2. 23.
마야인들은 교역을 하기도 했으며 통화의 개념도 있었다. 또한 근대적인 개념은 아니지만 장도 섰던 것으로 알려진다. 유카탄반도의 소금·벌꿀·목면 제품과 중앙·남부지방의 산물인 플린트제품, 카카오, 케찰섬의 깃털 등의 교역이 성행하였는데, 카카오 열매는 일종의 통화와 같은 구실을 하였다. 이 교역은 유카탄에서 타바스코지방에 이르는 해상로를 통해서 하였는데, 내륙지방에도 장이 섰으며, 또한 멕시코에서 오는 포추테카와의 접촉도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마야인들은 초가에서 살았는데 많은 사람들이 거주했음에도 불구하고 전체 취락에는 규율성이나 통일성이 없이 지형적 제한에 따라 마음대로 건물을 지어놓은 데 지나지 않아, 멕시코 중앙고원이나 잉카의 고대 계획도시와는 전연 그 성격을 달리한다 이러한 취락으로 구성된 마야의 사회가 어떠한 구조로 이루어졌는가에 대해서 많은 주장이 있으나, 혈통에 따라 사회적 지위가 엄격하게 제한되는 종류의 계급사회를 이루었던 것으로 보이며, 신관(神官)·군인·정치지도자·상인 등은 알메헨이라 불리는 귀족계층에 속하여 일반농민과는 구별되었다. 또한 일반평민 밑에는 주로 전쟁포로들로 구성된 노예계층이 있었고, 이 밖에 잉카의 야나코나와 비슷한 수장 및 귀족의 농노가 있었다. 정치권력은 에스파냐 사람들이 침입할 무렵 멕시코계의 군인 지배 계급에 의해 독점되었다.
또한 마야는 어떤 문명보다 발달한 역법을 가졌다. 그러나 그것은 귀족계층이 독점했을 뿐 일반평민에게는 알려지지 않았다. 역법·신성문자들은 잉카의 경우와 비교하면 체계적·복합적이고 표기수단도 발달되어 있다. 또한 마야인은 일종의 윤회사관을 믿고 있었고, 세계를 4방향으로 나누어 각 방향마다 색으로 표시하여 구분하였으며, 천공에 13층, 지하에 9층의 세계가 있다고 생각하여 천체의 운행을 여기에 들어맞게 하였다. 또한 천체의 위치를 길고 짧은 2개의 역으로 표시하고 이를 신성문자로 표기하였으며, 신들의 속성에는 각각 상반된 이원성을 부여하였는데, 이러한 것들은 멕시코의 톨테크 및 아스테크계 문화와 유사성이 있어 주목된다.
마야의 역은 260일의 단력과 365일의 장력에 의해 동시에 표현되어 이를 짝맞추는 것이 결정적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사람의 운명은 이를 짝맞추어 나타나는 4개의 부호에 따라 정해진다고 생각하였고, 모든 의례는 이 역에 따라 시행되었다. 그리고 이에 수반해서 천체의 관측이 엄밀히 행하여져 태양의 방위, 달 및 별의 운행이 관찰되었으며, 금성·화성의 주기를 정확하게 산출하고 있었다. 의례는 한 해 동안 다양한 형태로 행하여진 것으로 보이는데, 톨테크계의 문화가 침투할 무렵에는 인신희생의 관습이 널리 퍼져 있었다. 역이나 다른 것을 표기하기 위하여 숫자와 신성문자가 발달하였다. 숫자 이외의 신성문자에 관해서는 극히 일부만 해독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