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리랑카의 역사,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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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리랑카의 역사, 사회


2017. 7. 29.

스리랑카

수도

스리자야와르데네푸라코테(Sri Jayawardenepura Kotte)

최대 도시

콜롬보(Colombo)

면적

65,610km2

인구

20,905,335명(2017년 통계)

정치체제

이원집정부제

대통령

마이트리팔라 시리세나

임기

2015년 1월 9일 ~

총리

라닐 위크레메싱게

임기

1993년 5월 7일 ~

공용어

싱할라어(공용어), 타밀어(국가어), 영어,힌디어(상용어)

민족

싱할라인 74.9%, 타밀인 15.2%, 스리랑카 무어인 9.3%,

말레이인 0.2%, 버거인 0.2% (2011)

종교

불교 70.2%, 힌두교 12.6%, 이슬람 9.7%, 기독교 7.4% (2012)

국가

조국 스리랑카(ශ්‍රී ලංකා ජාතික ගීය)

명목 GDP

822억 3900만 달러 (2016년)

1인당 GDP

3,870 달러 (2016년)

시간대

UTC (UTC+5:30)

화폐단위

스리랑카 루피

대한수교현황

남한 단독수교 (1973년)

국가 도메인

.lk

남아시아 인도 아래에 위치한 섬나라다. 법적 수도는 스리자야와르데네푸라코테(Sri Jayewardenepura Kotte), 줄여서 '코테'(Kotte)라 부르기도 한다. 이 나라 최대의 도시이자 행정수도는 콜롬보(Colombo)다. 국토면적 66,000km², 인구 약 2,000만 명이다. 공용어는 싱할라족이 사용하는 싱할라어와 타밀족이 사용하는 타밀어이다. 이외 영어도 공용어이다.

역사

약 3만년전부터 베다라고 불리는 드라비다인과 혈통적으로 가까운 원시종족이 인도남부에서 건너와 살고 있었지만 기원전 6세기를 전후해 아리아인들이 침공하며 나라를 세우는 과정에서 아리아인들과 베다인들이 혼혈되었고 이들이 싱할리족의 기원이 된다. 혼혈되지 않은 베다인들이 현재까지도 스리랑카 동부내륙부 시골이나 정글지대에서 주거하고있지만 인구가 1만명에도 못미치는데다가 관광업으로 먹고사는 경우가 많아 언어적으로 상할리어나 타밀어를 아는것이 중요하다보니, 고유의 언어인 베다어도 말이 고유의 언어지 사실상 상할리어 피진이 된지 오래인 상황이다. 기원전 4세기 이전까지 탐바판니, 우파티샤 누와라 등의 왕국이 세워졌다. 기원전 377년 아누라다푸라 왕조가 세워졌고 1017년 남인도계 왕조인 촐라 왕조의 침공으로 무너질 때까지 1300여년 간 유지되었다. 아누라다푸라왕조가 불교를 받아들이면서 불교적인 색체가 강한문화를 지니게 되었다.1070년 폴론나루와 왕조가 인도계 왕조를 몰아내고 200여년 간 번성하나, 1215년 다시금 무너지고 코테, 시타와카, 칸디 등의 왕조가 번갈아 나타나게 된다.


위치가 위치인지라 '인도의 귓밥'이나 섬 모양 때문에 '인도의 눈물'이라는 별칭이 있다. 별칭에 어울리게 남인도의 계속된 침략을 받았으며 많은 영향을 받았다..15세기까지는 아담의 다리 혹은 라마의 다리란 이름의 사주(섬과 육지를 이어주는 모래톱으로 파랑의 작용으로 발달)가 있어 육로로 인도에서 스리랑카까지 갈 수 있었으나 1480년대 불어닥친 사이클론으로 인해 사주가 끊겼다고 한다.

대항해시대의 개막으로 16세기부터 포르투갈, 네덜란드, 영국에 식민정복되었다. 이 시기 포르투갈어'Ceilão'에서 비롯한 실론(Ceylon)이라는 이름으로 불렀다. 실론은 네덜란드-영국의 식민통치 기간에 붙여진 이름. 쥘 베른의 소설 해저 2만리에 잠깐 언급되기도 했다. 또한 신밧드에 등장하는 세렌디브 섬(Serendib)이 바로 오늘날의 스리랑카이다. 참고로, 실론으로도 이 문서로 들어올 수 있다.

1948년 독립 초기 영국의 군주를 모시는 상태에서 1953년 독립국인 자국의 군주로서 엘리자베스 2세여왕의 대관식을 지켜보는 영광(?)을 맞이하였다. 이후 계속 엘리자베스 여왕을 모신 상태에서 1962년여왕 즉위 10주년을 맞이하였다. 결국 1972년 정부 형태틑 근본적으로 개혁하고 국호도 스리랑카로 바꾸었다.

스리랑카 내전

1948년 영국으로부터 독립하였으나, 싱할라족과 타밀족 사이의 오랜 분쟁으로 인해 몸살을 앓았다. 주요 민족인 싱할라족은 힌두교가 아닌 불교를 믿고 있으며, 흔히 소승불교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남전불교가 주류이다. 반면 소수민족인 타밀족은 힌두교도 믿고 있으며, 문화적으로도 싱할라족은 인도 아리안, 타밀족은 드라비다 계통이다. 이 때문에 종교, 민족 분쟁이 일어나 얼마 전까지 내전에 시달렸다. 2009년 5월 타밀 반군이 정부에 항복 선언을 했다. 이 일로 인해서 여러 경제학자들이 지리적인 여건과 국민성 등을 염두해 두고 떠오르는 신흥국으로 보고는 있지만 언제 다시 내전이 재발할지는 모를 일이다. 

오랜 전쟁 여파로 경제 및 여러 가지로 엉망이 되었으며, 이 전쟁 와중에 전 대통령인 쿠마라퉁가가 한쪽 눈을 잃기도 했다. 게다가, 전쟁이 장기화되면서 전쟁세를 따로 받기도 하면서 여론의 반발도 컸고, 언론의 비난을 강제로 막으면서 언론 탄압 국가로도 명성이 자자하다. 인도양이 비치는 경치 좋은 천혜의 관광지가 가득하여 관광업으로도 명성이 자자했으나 전쟁 탓에 큰 타격을 받기도 했다. 게다가 지금은 내전이 끝났지만 내전 당시 싱할라 정부군과 타밀 반군이 전투기와 공격헬기로 폭격, 지상공격을 하면서 떨군 폭탄들과 땅 속에 매설한 지뢰등이 터지지 않은 채 아직도 남아있어 인명피해가 발생하기도 한다.


사회

스리랑카 내전을 봐도 알 수 있듯이 인구 대다수(70%)가 불교를 믿고 있다. 2000년대 와서 타밀족의 힌두교 외에도 이슬람과도 갈등을 빚고 있다.

2012년 4월 20일 스리랑카 중부 도시 담불라(Dambulla)에서 약 8천명이 넘는 불교 승려들과 불교도들이 불교 성지 위에 이슬람 성원과 힌두교 사원이 세워졌다고 주장하며 시위를 벌였다. 시위대들은 이슬람 성원에 난입하여 기물을 파괴하고 난동을 부리다 정부 관리가 요구를 들어주겠다고 약속하자 해산했다. 

이에 대해 스리랑카 무슬림 위원회(The Muslim Council of Sri Lanka)는 이 이슬람 성원이 적법하게 등록되었으며, 불교도 급진주의자들이 다수의 스리랑카 국민들의 생각과는 반대로 소수 단체들과의 공존을 해치는 일을 지속적으로 벌이고 있다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더불어 이 위원회는 불교 공동체의 지도자들과 정치 지도자들이 속히 이 문제에 개입하여 스리랑카의 불교도와 무슬림 사이의 진실된 관계를 다시 정립해 줄 것을 촉구했다. 하지만 이에 대하여 스리랑카 다수 여론은 이슬람이 다수인 나라에선 불교나 힌두교를 말도 못하게 박해하고 차별하면서 너희들이 소수니까 종교 공존의 권리 운운거리냐면서 무시하고 비웃는 상황이다. 하지만 보두발리세나를 중심으로 한 불교 내부의 극단&배타주의도 나름 심각한 문제라는 것은 사실이다.

스포츠

스리랑카의 국기(國技)는 배구이다. 하지만 배구 성적은 그다지 내세울 게 없다.

크리켓이 인기가 많다. 영국 식민지 및 이웃 인도의 영향도 큰 듯. 크리켓도 꽤 강호이긴 하지만 2009년 3월 3일 파키스탄 원정 친선경기를 가던 도중, 테러를 당해 선수 6명이 부상당하는 일을 겪기도 했다. 2014 인천 아시안 게임에서 남자 크리켓팀이 금메달을 받았다.

축구도 리그인 킷 프리미어 리그가 있으나 약체라서 AFC 챔피언스 리그 최다 실점 기록을 가지고 있다. 2001년 11월 24일 이 리그 소속인 SC사운더스가 수원 삼성 블루윙즈에게 18:0으로 크게 졌다. 참고로 2007년부터 2012년까지 한국의 전 축구 선수인 장정이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을 역임한 바 있다.


아직 미약한 편이나, 야구도 하고 있다. 전적도 없는 스리랑카에 박철순이 직접 감독이 되어 2015년 5월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서 열리는 동아시안컵에 출전하였다. 지난 해에 0:58로 인도네시아에게 질 정도로 기량이 낮은 팀을 박철순이 훈련시킨 결과 태국과 홍콩,싱가포르를 이기며 3승 2패(인도네시아와 필리핀에게 졌음)를 기록하며 비약적인 발전을 만들어 냈다. 그러나 이후로 그만둔 듯. 2017년 서아시아 야구 선수권 대회에서 이 대회를 단골로 우승한 파키스탄을 그것도, 원정 경기에서 제치고 첫 우승을 거둬들였다.

2004년 스리랑카에서 유럽으로 밀입국하고 싶어하던 사람들이 모여서 있지도 않은 스리랑카 핸드볼 국가대표팀을 만들어서 독일 핸드볼 클럽 대회에 참가한 후 그 자리에서 뿔뿔이 흩어져 잠적하는 희대의 밀입국 스킬을 선보인 바 있다. 이들은 지금도 행방이 알려지지 않고 있다. 참고로 이 이야기는 이탈리아에서 "마찬"이라는 제목으로 영화화 되었고, 스리랑카에서도 개봉하였다. 지금은 스리랑카에도 핸드볼 국가대표팀이 있으며 서남아시아 쪽에서는 나름 준수한 성적을 내고 있다.

외교

2011년에 중국의 돈다발 공세에 중국 해군 주둔기지 설치를 허락했다가 인도견제를 위한 것 아니냐는 인도의 강력한 반발로 고생 중이다. 종교는 다를지 몰라도 지리적 및 역사적으로 인도의 경제적 영향이 엄청나기 때문이며 스리랑카에서도 기지 건축에 죄다 중국인 노동자만 쓴다는 점 때문에 여론 악화에 시달리고 있다. 2016년 8월 17일에 스리랑카 정부는 남부의 함반토타 항구를 중국에게 전부 넘겨 운영할 계획을 밝혔다. 하지만 총리가 함반토타 항구를 군사적 이용으로 임대하는 것은 반대했고, 약속을 어길 때에는 임대권을 회수하겠다고 밝혔다.


대한민국과는 1972년 행정수도 콜롬보에 주(駐) 스리랑카 한국대표부를 설치하였다가 1977년에 양국간 국교수립에 따라 대사관으로 격상되었다. 특히 1995년 10월 스리랑카도 비상임이사국에 진출 계획이 있었지만 한국이 국제연합 안전보장이사회 비상임이사국으로 진출할 수 있도록 스스로 입후보를 포기했다. 2004년 동남아시아 대지진 당시 한국의 인도적 차원에서 지원 이후 양국 간의 협력이 더욱 강화되었다.

2010년에는 스리랑카 정부가 한국 정부에 스리랑카 코끼리 1쌍을 기증하였는데 여기에 사연이 있다. 지구촌사랑나눔의 대표인 김해성 목사는 1996년에 스리랑카의 노동자들에게 밥을 주고 구직을 도와주면서 이들과 인연을 맺게 되었다. 얼마 후 동남아 쓰나미의 피해가 나자 스리랑카에 지원을 하면서 당시 대통령이던 라자팍사 대통령과 인연을 맺게 되었다. 그 뒤에 그 고마움으로 코끼리 1쌍을 기증하였다. 이게 꽤 대단한 것인데, 스리랑카는 원래 코끼리 반출에 의회 동의를 거쳐야하는 큰 제한이 있다. 그 코끼리들은 서울동물원에 사육되고 있으며 2016년에 새끼를 출산하게 되었다. 해당 사항은 2011년에 SBS TV 동물농장에 소개되었던 전례가 있었다.

90년대 후반 V챔프를 비롯한 국내 게임 월간지에 어느 업체 컴퓨터 부품 광고에 스리랑카가 거론되는데, 낙타에 베두인과 같은 유목민 옷차림을 한 사람이 스리랑카 사람이라고 나오는 엉터리 설정이 나온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