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네수엘라가 경제 파탄으로 식량난에 허덕이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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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네수엘라가 경제 파탄으로 식량난에 허덕이는 이유


2017. 4. 23.

남아메리카의 북부에 위치한 국가. 면적은 916,445㎢, 인구는 29,275,460명(2015년), 수도는 카라카스이다. 공용어로 스페인어를 사용한다. 정식 명칭은 볼리바르 베네수엘라. 베네수엘라의 북쪽에는 카리브해가 있고 서쪽 및 서남쪽으로는 콜롬비아, 남쪽으로는 브라질, 동쪽으로는 가이아나와 각각 국경을 접하고 있다.

베네수엘라라는 국명은 '작은 베네치아' 라는 뜻인데 이는 이곳에 온 스페인인들이 원주민들의 수상주택을 보고 지은 이름이다. 국가는 '용감한 이들에게 영광을'이다.

독특한 지형이 전세계적으로도 손꼽히는 곳이다. 로라이마 산으로 대표되는 세계에서 두 군데밖에 없는 테이블 산 지형이 있는 곳이며 세계에서 가장 높은 높이 979m의 앙헬 폭포도 이 테이블 산 지형에 있다. 이 일대를 카나이마 국립공원이라고 하는데 드넓은 사바나 지형과 울창한 정글 지형이 테이블 산과 함께 펼쳐져 있다. 이 이외에도 악어가 많은 아마존의 지류 로스 야노스나 오리노코 강 삼각주, 짙푸르고 투명한 카리브해 해변 등 자연 관련 관광자원을 대단히 많이 가지고 있는 나라다. 그러나 아래에 설명할 강경 반미 외교 노선이나 좋지 않은 치안 문제 등으로, 관광대국으로는 발전하지 못하고 있는 중이다.


남아메리카 전반이 거의 그렇지만 베네수엘라도 16세기 스페인의 식민지 사업이 시작되기 이전에는 남미 부족들의 부족시대로써 특기할 만한 역사적 움직임은 없었다. 식민지화 이후 베네수엘라는 누에바 그라나다 부왕령의 베네수엘라 총독부에 속하였으며 식민 초기 카라카스 일대 근처에서 신성로마황제 겸 에스파냐왕 카를 5세가 독일인을 보내어 식민개척을 시켰다. 토착민들은 몇 차례 봉기를 일으켰으나 번번이 실패하고 죽임만 당했다. 그러다 미국 독립전쟁과 프랑스 혁명에 참전했던 프란시스코 데 미란다 장군이 베네수엘라로 돌아와 혁명운동을 조직, 1811년 7월 5일 독립을 선언하고 독립전쟁을 시작했다. 그러나 첫번째 공화국 정부는 1812년 카라카스에서 일어난 지진과 야네로의 반란으로 붕괴되었고 1813년 8월 7일 선언한 두번째 공화국 정부도 몇 개월을 버틴 뒤 무너졌다.


베네수엘라가 제대로 독립을 쟁취하게 된 것은 시몬 볼리바르의 봉기 이후였다. 볼리바르와 동료들은 수 차례 스페인군과의 전투에서 승리를 거두고 그란 콜롬비아 연방의 일원으로 베네수엘라를 독립시켰다. 그러나 그란 콜롬비아는 볼리바르의 죽음 이후 내부갈등으로 해체되었고 베네수엘라도 여기서 탈퇴하며 독자노선을 걷게 되었다. 이후 베네수엘라의 역사는 군벌에 의한 독재의 역사가 주로 진행되었다. 군벌 가운데 연방주의자들의 승리(1863년의 coche 조약)로 지방 분권이 강화되었으나 19세기 말 안토니오 블랑코의 17년, 시프리아노 카스트로(Cipriano Castro)의 9년, 후안 비센테 고메스(Juan Vicente Gómez)의 25년 등의 개발독재가 진행되면서 연방정부와 상비군이 강화되고 석유 개발(1918년부터)에 성공하는 등 발전했다.


그리고 1935년 고메즈가 사망하면서 베네수엘라의 역사는 큰 변화를 겪게 되었다. 1945년 좌파성향의 민주운동(AD)이 10월 혁명으로 군부를 몰아내고 정부를 장악했으나 토지개혁과 각종 소외계층 이익단체(노조, 농민단체 등)가 결성되도록 지원한 '3년 천하'는 군부 쿠데타로 정치가 10년간 정지되었다. 베네수엘라 최초의 보통민주선거로 로물로 가예고스(Rómulo Gallegos) 대통령이 집권한지 고작 1년만이었다.

하지만 다시 1958년 반공주의 군부가 시민혁명으로 붕괴하고 중도좌파 성향의 여당인 AD와 중도보수야당 기독사회당(COPEI), 우파인 민주당(URD)가 「푼토 피호 협정(Pacto de Punto Fijo)」을 채결하면서 AD가 우위이면서 COPEI가 견제하는 양당제 풍토가 완성되었다. 어떤 의미에서는 베네수엘라판 55년 체제라고 할 수 있는데 이 조약으로 군부, 재계, 농민, 노조 등 각종 단체들의 권리가 보호되었고 이후 토지개혁이나 민주개혁, 또 석유의 국유화(1976년)가 이뤄지면서 베네수엘라 정치를 군부의 위협없이 안정시켰다. AD는 바탕코트 독트린 (Batancourt Doctrine)을 폐기시키고 쿠바나 다른 국가와 관계개선을 꾀하는 등 남미에서 유독 진보적인 민주정부를 유지시켰다. 다만 보수정당인 기독민주당도 소련과의 수교를 맺을 정도이기는 했어도 1960년대 좌파 게릴라전의 영향 때문에 쿠바와의 관계는 영 좋지 않은 편이었다(쿠바와의 관계가 좋아진 것은 우고 차베스 집권기에 들어와서부터다).

석유국유화 이후 베네수엘라 경제는 1인당 GDP가 남미에서 가장 높은 나라가 되었고 1인당 위스키 소비량도 1위를 기록할 정도로 호황을 누렸지만 이 호황은 몇년 가지않아 오일쇼크의 부메랑인 석유값 폭락과 미국의 금리인상으로 외채가 급증하면서 경제적으로 큰 타격을 입으며 끝났다. 이후 사상 최대의 외채규모(350억불) 속에 국유화를 진행했던 카를로스 안드레스 페레스(Carlos Andrés Pérez) 대통령(임기 1973~1978, 1988~1993)이 10년만에 다시 집권했다. 하지만 베네수엘라의 황금기를 이끌던 그의 2번째 임기는 막장으로 점철된다. 물가는 89년부터 91년까지 150%나 상승했으며 신자유주의 긴축정책에 따라 발생된 극심한 빈부격차에 시위가 빈번해졌다.

결국 페레즈 정권은 우고 차베스 중령의 쿠데타를 겪었다. 쿠데타 세력은 항복했긴 했으나 정부는 결국 결국 부정부패 혐의와 대법원의 판결, 의회의 탄핵으로 페레즈 대통령은 불명예 퇴진하고 말았다. 이후 COPEI 출신의 중도연정을 라파엘 칼데라(Rafael Caldera) 대통령이 이끌었다. 칼데라 정권은 초기에 보호주의 정책을 시행했으나 결국 94년 금융위기로 IMF의 보조를 받으며 변동환율제와 석유 민영화 조치를 단행하면서 빈부격차는 더욱 심해졌다.

이후 1998년 제5공화국 운동을 이끄는 좌파 우고 차베스가 당선되었다. 차베스는 좌파와 반미의 선봉장으로 한국에서도 많이 알려져 있다. 차베스의 좌파 정권이 들어서면서 국장까지 바꾸었는데, 국장에 그려져 있는 말이 오른쪽을 향한다고 해서 왼쪽으로 틀어버렸으며 국기에도 똑같이 적용했다.

차베스는 석유 재국유화 조치를 취함으로써 세계 원유 매장량 1위를 자랑하는 풍부한 석유자원에서 얻은 수익을 모두 손에 쥘 수 있게 되었고, 때마침 날라다니던 고유가의 덕택으로 엄청난 오일머니를 획득하게 되었다.

차베스는 오일머니를 바탕으로, 소위 21세기 사회주의 혁명에 기반해 빈민층들에게 각종 혜택(무상교육, 무상의료, 저가주택)을 베푸는 포퓰리즘적인 복지와 평등정책, 시장개입을 통해 빈민률을 많이 줄였으며 이를 통해 하층민의 지지를 굳건히 하여, 선거마다 연승했다. 

그러나 우고 차베스는 정치적으로 오히려 베네수엘라의 민주주의를 퇴보시켰는데, 개헌을 통해 종신대통령이 가능하게 법을 바꾸고, 자신이 종신 대통령이 되어 독재자가 되었다. 또한 사법부와 입법부에도 정부가 크게 관여할 수 있는 권한을 주고, 언론과 야당을 권위주의적으로 탄압했다. 베네수엘라의 민주주의를 크게 퇴조시킨다는 국내외의 비판에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차베스가 죽은 뒤에는 버스기사 출신 니콜라스 마두로가 그의 후계자로서 정책을 계승해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차베스와 마두로 둘 다 점차 높아지는 유가를 경제적 기반으로 포퓰리즘적 정책을 확대했다. 그러나 원래부터 베네수엘라 경제의 한계였던 다른 산업이 발달하지 못한 네덜란드병은 고치지 않았다. 특히 모든 산업이 석유에만 집중된 산업의 불균형이 심각했다. 

2013년까지 고유가 덕분에 지탱되던 베네수엘라 경제는 2014년 이후 유가 폭락으로 IMF 외환위기, 그리스 경제위기를 아득히 초월한 경제 위기를 맞게 되었다.

베네수엘라는 수출의 96퍼센트를 오일머니에 의존하고 있으므로 국제 석유가격이 폭락하면 경제 기반이 완전히 무너지게 된다. 이 때문에 여당은 2015년 말 총선에서 17년만에 패배했다. 이는 야당이 의석의 2/3 이상을 차지하여 여당의 개헌 저지선까지 무너뜨린 수준이었다.

그러나 현 대통령 니콜라스 마두로는 이 총선에서 당선된 국회의원 3명을 부정선거라는 이유로 대법원에 신청해 국회 등원을 막아 슬그머니 독재자의 길을 걷기 시작하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경제난으로 인해 강력범죄가 급증하고 있다. 그리고 현재 니콜라스 마두로는 그의 실정으로 인해 총선에서 야당이 승리하여 대통령 자리를 유지하기 어려워지고 있으며 국민들도 반정부 시위에 적극 참여하여 니콜라스 마두로의 권위적이고 좌파적 포퓰리즘에 반기를 들고 그의 사퇴를 바라고 있다고 한다. 그리하여 그의 당인 베네수엘라 연합사회당 (PSUV)도 총선 패배의 책임을 인정하지 않고 있으며 야당을 중심으로 반정부 시위를 이끌고 있는 국민들에 대한 폭력적인 제압을 하고 있다고 한다.

2016년 5월부터는 시장이 마비되어 약탈, 강도가 일상화되고, 굶는 학생들이 속출하며, 정부가 늘린 배급은 전혀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 와중에 가뭄까지 거들고 있다. 정전사태가 일어나자 경제는 파탄나고, 치안과 교육, 일상생활마저도 불안해지고 있다. 국내 맥주 생산의 80%를 차지하는 거대 식품 회사마저도 보리 수입을 정부 때문에 하지 못한다며 폐업을 선언했다. 마두로 대통령은 문제해결은 커녕 이 회사의 사장을 비난하면서 우파 파시즘적 세력과 미국이 베네수엘라를 망가트리고 있다며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하면서 탄압을 더하자, 쿠데타 등의 폭력사태도 일어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또한 경제난으로 인해 항공권 판매 수익 지불이 지연됨에 따라 베네수엘라로 향하는 국제 항공노선이 잇따라 폐쇄되고 있다. 2016년 5월 31일에는 미주 기구에서 긴급회의를 소집하면서 미주 기구의 회원국 자격을 박탈당할 가능성도 커지게 되었다.

게다가 경제가 막장인 상황에서 대통령 소환에 대한 주장하는 야당 대표가 친정부 시위대에 의해 폭행당하는 등 민주주의 면에서 훼손이 심각해지고 있는 실정이다. 그리고 베네수엘라는 경제난으로 배급제를 실시하는 중이다.

식품난 폭동에 4명이 사망하고, 로물로 가예고스(Rómulo Gallegos) 전 대통령의 무덤이 파헤쳐지기도 했다. 게다가 미국으로 망명하는 사람들이 급속도로 증가했다. 그리고 베네수엘라의 젊은 여성들은 아이를 낳아 키우기보다는 자발적으로 불임시술을 선택하고 있는데 그 이유는 피임약과 콘돔을 구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원유매장량 세계 1위의 국가에서 식량이 모자라는 기현상을 보여주는 예가 되고 말았다. 가계 평균 수입의 72%가 식량 구입에 사용되며, 최저 임금의 열여섯배를 벌어야 제대로 먹고 살 수 있다는 암울한 조사 결과가 나오고 있다. 게다가 배고픔이 일상화되면서 최악의 식량난에 직면하자 약탈과 폭동이 빈발하고 있다.

이제는 국민들이 식량과 생필품을 찾아 주변국으로 가고 있으며 특히, 콜롬비아로 많이 가는데 밀수를 방지한다며 2015년 8월부터 콜롬비아와 맞닿은 2,250km에 이르는 국경 지대를 차단하였지만 배고픔 앞에서는 결국 국경도 통제를 못하며, 환율 때문에 10배 이상 비싸지만 베네수엘라에서는 아예 생필품을 구할 수 없어서 이들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다보니 결국은 사게 되다는 것이다.

국경 개방에 대해 12시간 개방을 승인했으며, 따라서 2만 5천명이상이 생필품을 구매했다. 마두로 대통령은 대규모 생필품 부족 사태에 대해 우파 기업인들이 경제 전쟁을 벌일 것이라고 비난하며, 야권의 대통령 소환에 대해 방해하고 있다. 베네수엘라는 경제가 파탄났지만, 경제고문에 좌파를 등용했다. 게다가 영양실조에 걸린 아이들이 늘어나고 있다. 심지어는 병원에서 신생아용 침대가 부족해지자 종이상자에 아기들이 담겨 있는 모습이 공개돼 논란이 일고 있다. 그리고 생필품이 부족해지자 화장품, 휴지를 사러 미국으로 가기도 하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다.

그리고 이제는 중국의 공자평화상 제작에 이어서 차베스 평화상이라는 것을 만들고 첫 수상자로 푸틴 대통령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게다가 경제난으로 유아사망율이 높아지고 있는 상황이다. 그 전에 대규모 대통령 탄핵 찬반집회를 벌어지고 있다. 교황 프란치스코 중재로 10월 30일에 야권과 대화한다. 그리고 2016년 11월 1일에 베네수엘라 정부는 야권인사 5명을 석방했고, 야권측은 국민소환투표를 잠시 보류했다. 게다가 생필품이 부족해진 베네수엘라 정부는 외국원조를 수용하고 12월에는 야권과 정부가 추가로 대화하기로 합의했다. 하지만 야권에게도 강력한 지도력을 가진 정치인이 없어서 큰 문제이다.

베네수엘라는 경제난으로 인해 이제는 생필품을 사는데 현금이 한 상자나 필요한 지경에 이르렀다. 그리고 경제파탄때문에 아이들을 버리는 부모들도 늘어났다. 설상가상으로 화폐대란때문에 시위, 약탈이 벌어지면서 3명이 숨지고 1명이 다치는 사건도 발생되었다. 상황이 심각해지자 베네수엘라정부는 100볼리바르의 사용중단을 2017년 1월 2일로 연기했다. 베네수엘라는 100볼리바르를 폐지하겠다고 한 발표이후 주말에 상점들이 약탈당하는 사태가 발생되었다. 그리고 베네수엘라 정부는 2017년 1월 8일에 최저임금을 50%로 올렸지만, 여전히 기초생활유지에 부족한 상황이다.

추가로 2016년 12월 24일 대한민국시간 토요일 경 떨어지다 못해 바닥을 친 베네수엘라 경제로 인해 윈도우10이 4000원(!)가량에 MS스토어에 올라왔다. 원래대로라면 한국에서의 베네수엘라 MS스토어 윈도우 구입은 막혀 있었으나, 예상치 못한 이유로 인해 하루 가량 한국에 뚫린 것 같다. 그래서 주문 대란이 일어났으며, 많은 한국 사람들이 윈도우 10을 4000원에 구입했다. 이에 대해 ms의 이벤트적 선물이다, 단순한 직원의 실수다 논란이 분분했는데, 25일에 마이크로소프트가 실수였으며 24일에 팔린 모든 한국의 베네수엘라산 윈도우10을 환불조치할 것이라고 정식 발표하자 단순실수인 것으로 판명났다. 

2017년 야권에서 국민투표가 좌절되자 이미 장악된 의회에서 마두로 대통령의 직무 유기 결의안이 통과되었지만, 실제로 임기를 단축시키거나 임기 종료 이전에 퇴진시킬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한때 옥수수와 쌀을 수출했으나 지금은 식량 수입을 해야 하는 처지가 되었고, 그마저도 돈이 부족해 충분히 사들일 수가 없다. 그렇게 수입한 식량의 배급권은 대통령이 지정한 친좌파 시민대원들에게 돌아갔고, 결국 그들을 중심으로 새로운 특권 계층이 탄생하고 말았다. 베네수엘라의 비극은 2017년에도 현재 진행형이다. 

결국 베네수엘라에서는 반정부시위가 5일째 일어나면서 부상자도 많이 생겨났다. 그리고 시위에 참가하던 19세 학생이 사망하고 4월 19일에도 시위가 예고되어 있어서 혼란한 상황에 놓여 있다. 게다가 베네수엘라는 반정부 시위, 약탈로 사망자가 20명이 늘어나고 있는 등 점점 심각한 상황에 놓여 있다.

베네수엘라는 미국 입장에서는 대단히 껄끄러운 상대이지만 그렇다고 혼 좀 내주기도 뭐했던 게 미국이 가장 석유를 많이 수입하는 나라가 바로 베네수엘라였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석유 때문에 코가 단단히 꿰였던 셈. 하지만 이건 이미 낡은 정보가 되어버렸고 2016년 초부터는 미국으로부터 수출용 석유 생산을 위한 경질유를 수입하고 있다.


특히 전 대통령 차베스는 반미(反美) 및 혐미(嫌美) 성향이 강한 인물로 알려져 조지 W. 부시는 물론 버락 오바마도 비판한 인물로 알려져있다. 베네수엘라 역시 미국을 비판하거나 약올리거나 욕하는 정도로 끝내고 군사적 도발이나 테러를 하지는 않기 때문에 미국이 베네수엘라를 조질 명분이 없기도 하다. 참고로 부족한 명분에도 불구하고 미국이 전쟁을 일으킨 사례가 있는데 그게 바로 미국을 수렁에 빠뜨린 이라크 전쟁. 하지만 2010년대 들어 미국에서 셰일 가스 붐이 불고 친한 친구인 쿠바를 자기네 편으로 끌어들이려하자 베네수엘라의 입장이 서서히 위태로워지고 있다. 물론 셰일 자체의 약빨은 많이 떨어지고 있지만 문제는 미국이 그간 반미로 일관해 온 쿠바와 화해하고 수교했다는 것. 거기에다 미국이 이란과도 핵협상을 체결하고 이란의 원유가 시장에 본격적으로 풀리면서 유가가 오를 기미가 안보이는 것 역시 베네수엘라 입장에선 반미노선을 유지하기 힘들어지는 이유가 되어 골칫거리다.

러시아와 매우 친밀한 관계이며 같이 합동 군사훈련을 하거나 Tu-160을 파견하는 등 소련 붕괴로 인하여 동유럽이나 쿠바에 있던 공군기지를 폐쇄해야 했던 러시아로서는 매우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무기도 러시아제를 주력으로 사용하고 있다. 러시아제 무기 덕분에 과거 미국에게 수입한 F-16을 비롯한 미국제 무기를 러시아에게 제공하여 미국을 경악시켰다. 2001년~2013년 동안 145억 달러 상당의 러시아 무기가 베네수엘라에서 팔렸다고 한다.

러시아와 마찬가지로 중국과는 매우 가까운 관계를 유지하고 있고 중국과 동맹을 맺을 정도이다. 하지만 경제난으로 인해 중국은 베네수엘라와의 동맹관계를 재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반대로 친미 노선을 가던 이웃나라인 콜롬비아랑은 숙명의 경쟁자, 시도때도 없이 투닥거리더니 2010년 7월 결국 국교 단절을 선언했다. 콜롬비아가 반군 지원을 해오던 베네수엘라를 계속 비난해오던 차에 결국 빡돈 베네수엘라가 2010년 7월 외교 관계를 단절, 콜롬비아 외교관들에게는 72시간 내 출국 명령을 내렸다. 그것으로 모자랐는지 군에 비상상태를 선언하고 2300㎞에 달하는 국경지역으로 병력을 대거 투입하는 군사적 압박도 보였으나 남아메리카 국가연합(UNASUR)의 주도로 화해했다.

이렇게 자꾸 미국을 약올리다 보니 오바마 대통령은 베네수엘라가 미국에게 현저한 위협이 된다고 했다. 그 다음엔 미국은 베네수엘라에게 미국을 포함한 국외 베네수엘라군과 정보기관의 고위 관리들의 자산 동결과 미국 비자 제한 등 제재를 가했다. 당연히 이는 베네수엘라 경제에 타격을 주기에 베네수엘라 정부는 반발하며 자국에 주재하는 미국 외교관 100명 중 17명만 남고 모두 떠나 달라고 요구하는가 하면 미국 관광객의 비자 면제 혜택을 박탈했다. 그러자 미국은 추가 제재를 가해 가뜩이나 안 좋은 베네수엘라 경제에 큰 타격을 주었다. 베네수엘라는 중남미의 국가들과 함께 제제를 해제하라고 요구했으나, 미국은 이를 반미노선을 버릴 때까지 하겠다며 거부한다. 특히 베네수엘라 형편상 미국의 제재에 맞설수가 없고 중남미 국가들도 미국을 비난만 하지 자극하지 않는 방식으로 나간다. 그리고 미국은 트럼프 정부가 들어섰을때 테러지원혐의로 베네수엘라 부통령을 재제대상에 올려 추가제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