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평가 영국요리 재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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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평가 영국요리 재평가


2017. 1. 8.



영국 요리, 즉 브리티쉬 퀴진이란 오랜 세월동안 켈트, 로마, 앵글로색슨, 노르만과 인도와 파키스탄, 홍콩 등 여러 민족과 문화가 융합되어 만들어진 요리이며 영국의 전통적인 브리티쉬 퀴진을 '강한 향의 소스로 맛을 가리기보다는 심플한 소스를 곁들이길 즐겨하며 질좋은 현지 재료로 꾸밈없이 만든 요리이다'라고 설명한다. 또한 현대 영국은 세계 미식계를 주도하는 미식 선진국으로 평가 받고 있다. 그리고 영연방 국가들, 특히 호주. 캐나다, 뉴질랜드, 남아프리카 공화국, 자메이카 요리에 큰 영향을 준 요리이다. 영국계가 주축이 되어 세운 나라인 미국 요리 또한 영국 요리의 지대한 영향을 받았다.

<영국식 아침식사>

'독일인은 유머감각이 없다'와 함께 '영국인은 요리를 못한다'는 서양의 오래된 우스갯소리 혹은 고정관념은 분명 존재하며, 영국인들조차 이를 블랙 유머의 소재로 종종 사용할 정도이기는 하지만, 사실 그렇게 진지하게 받아들여지는 이야기는 아니다. 단편적인 예로 레딧 등의 서양의 웹사이트에 영국요리라는 주제가 나올 경우 대부분 중립적인 반응을 보이지만, 영국 요리라는 주제가 나올때마다 끔찍한 괴식으로 취급하는 류의 편견과 고정관념은 주로 프랑스, 일본, 한국에서 나타나는 양태이다. 심지어 주일영국대사관에서는 일본의 영국요리에 관한 인식이 '도시전설화' 되고 있을 정도로 심각하다며「영국요리는 맛있다(Food is GREAT)」,「영국의 맛(A Taste of Britain)」캠페인까지 벌이고 있을 지경이다.



영국 요리 역시 오랜 세월 높은 경제력을 향유하며 궁중, 귀족, 서민 계층을 포함해 훌륭한 전통요리와 식문화를 가지고 있으며 미식의 주관성을 감안하더라도 어디까지나 기술적인 부분과, 장식적인 부분에서 프랑스와 이탈리아 요리에 비해서 영국 전통요리를 포함한 북유럽 신교 국가들의 소박한 요리가 서양 고급요리의 헤게모니에서 밀려나 유럽에서 상대적으로 저평가 되고 있는 것 뿐이다. 


그러나 최근 들어 영국을 포함한 북유럽 요리가 재평가를 받으며 세계 미식계를 휩쓸어 이 또한 달라져가고 있다.(영국 요리/역사 문단 참조) 또 영국산 식재료는 유럽 내에서도, 국제적으로도 품질을 인정받는 편이다(특히, 소고기에 대해서는 알아준다.). 지리적 표시제/유럽연합에 등록된 유럽연합 역내 28개국과 역외 등록 제품 보유국 8개국을 합쳐서 36개국 중 등록 품목수 7위가 영국이니 말이다. 게다가 완성된 식료품도 등록 되어 있기도 하다. 예를 들어 잉글랜드 중부의 멜튼 모우브레이 마을의 파이 같은것도 말이다.

알아두면 유용한?? 영어 욕설

맛없는 요리의 대명사 영국요리

영국 브렉시트 간단정리


영국 요리역사

"영국 요리가 프랑스보다 뒤떨어졌느냐?" 라고 묻는다면, 꼭 그런 것은 아니다. 16세기 초반까지만 하더라도 영국 요리와 프랑스 요리의 차이는 레시피만 봐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현재 남아있는 중세시대 영국의 요리책이나 음식에 대한 기록에 당시의 증거들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영국은 기본적으로 육식, 그 중에서도 특히 쇠고기 요리가 중점적으로 발전했는데 영국보다 자연적으로 구이를 선호했던 투르크족, 몽골족, 만주족 같은 유목민족의 요리는 다른 문화권의 요리를 접하면서 터키 요리나 만한전석같은 독특한 요리들을 발전시켰고 영국요리도 항해술이 발달하면서 다른 문화권의 접촉을 거쳐 발전했다. 19세기부터는 지속적으로 자국의 영향권에 넣기 시작한 인도 요리의 영향도 받았다.


이미 기원 전부터 영국은 인류가 생활하고 있었던 장소로서 숱한 이민족의 침입을 받으면서도 함락되지 않고 독자적인 문화를 지켜 왔다. 특히, 지금의 영국을 구성하고 있는 4개 지역은 지금까지도 각각 민족적, 문화적 특징을 가지고 있어 독자적인 요리 문화가 발전했다. 숲이 울창한 스코틀랜드의 경우 사냥한 동물을, 웨일즈는 농경문화를 중심으로 하는 가축과 야채를, 잉글랜드는 밀을 중심으로 한 곡식을 주요 재료로 하여 요리해 왔다.


재미있는 것은 주변이 바다로 둘러싸여 있음에도 생선은 인기있는 음식이 아니었는데, 이는 북유럽 지방에 일반적으로 분포하는 바다에 대한 공포가 당시에도 널리 퍼져 있었기 때문으로 같은 섬나라로서 불교의 전래에 따라 육식을 거절하고 주로 생선을 즐겨먹던 일본과는 다르게 영국인들은 바다를 식량 창고가 아닌 죽음이 펼쳐진 하나의 암흑으로 간주하였기 때문이다.


이후 항해술이 발달하자 바다를 대륙으로의 진출을 위한 항로로만 간주하였기 때문에 바다에서 많이 잡히는 정어리나 특별히 맛이 있는 대구와 같은 생선을 제외한 다른 물고기나 해초는 음식으로서 취급하지 않았다. 따라서 기원전부터 내려온 곡식과 육류 위주로 이루어진 식단을 지금까지도 지켜오고 있다.


당시 요리의 조리법은 신석기 시대부터 발견하였던 불을 기초로 하는데 특히 잉글랜드 중심으로는 직화(直火) 문화가 발달하였고 아일랜드 중심으로는 냄비(Pot) 조리가 발달하였는데 이 때문에 잉글랜드는 곡식을 불에 구워 빵을 만들고 고기를 바로 불에 던져 태운채로 먹었고 반대로 아일랜드는 감자를 쪄서 으깨거나 곡식을 갈아 끓여먹는 차이가 있었다. 이는 사실상 국력의 차이로서 꾸준한 정복활동으로 고기를 쉽게 얻을 수 있는 잉글랜드는 고기를 통째로 불에 던져 태워낸 겉 부분을 제거하고 고기에 배어진 숯향기와 흐르는 지방질을 양념으로 통째로 먹으며 서민은 곡식을 갈아 불에 구워 독특한 향이 밴 빵을 먹은 반면에 아일랜드에서는 곡식이든 고기든 일단 물을 넣고 끓여 배고픔을 해결하기 위한 수단으로 요리를 판단했기 때문이다.


16세기와 17세기, 개신교 종교개혁의 영향으로 '심플하고 투박한' 특성이 생기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영국 요리만의 특성이 아니라, 독일 등을 포함한 북유럽과 북미 등 여타 개신교 문화권의 요리 문화 전체가 공유하는 특성이다. 이러한 '심플하고 투박한' 영국과 북유럽의 요리는 가톨릭 문화권인 화려한 프랑스나 이탈리아와 같은 남유럽 요리에 비해 오랜 기간 상대적으로 평가가 낮았다. 


그러나 근세에 들어 이런 평가는 반전되어 가고 있는데, 1970년대 슬로우푸드의 유행과 함께 프랑스 요리도 무겁고 장식이 많은 오뜨퀴진에서 가볍고 담백한 누벨퀴진으로 이행했으며, 2000년대에 들어서 영국이 스페인과 함께 분자요리의 양대 산맥이 되고, 2010년대에는 담백하고 현지 재료를 중시하는 북유럽 퀴진이 세계 미식계를 휩쓸며 남유럽을 누르고 대세로 자리잡아 예전과 비교하면 완전히 달라진 평가를 받고 있다.


18세기, 19세기에는 세계적으로 질 좋기로 유명한 영국의 Hereford 품종의 소가 호주, 뉴질랜드, 캐나다 등 영국의 식민지 지역으로 수출되어 현대 신세계 지역의 사육용 소 품종의 주류를 이룬다. 


1970년대, 현대(modern) 영국요리가 성립되었으며, 성립 직후 굉장한 인기를 얻어 브리티쉬 퀴진의 대세가 되었다. 현대 영국 요리란 고품질의 현지 재료를 쓰며, 현대적 발명과 20세기 이전의 전통 영국 레시피를 섞어 사용하는 것으로써 슬로우 푸드 운동의 영향을 강하게 받은 것이다.


현재 영국 런던은 프랑스 파리를 뛰어넘는 미슐랭 레스토랑을 보유한 세계 최고의 미식 도시다. 


고든 램지, 제이미 올리버, 마르코 피에르 화이트, 헤스턴 블루먼솔과 같이 뛰어난 요리사, 그리고 미슐랭과 함께 세계최고 권위를 가진 레스토랑지의 최고 레스토랑 역시 영국에서 지속적으로 배출해내고 있다. 수많은 한국 유명 셰프들 역시 영국유학파 출신이다.

미슐랭 2스타 레스토랑 DINNER의 메뉴중 1720년, 1670년경의 영국 전통요리를 재현한 것이다.

DINNER의 나머지 메뉴도 영국의 전통요리를 재현해낸 것으로 세계 최고의 레스토랑 중 하나로 꼽히고 있다.


영국 요리와 육식

영국 요리의 역사에 있어서 육식은 빼놓을 수 없는 사실로 영국인들은 유럽에서 쇠고기를 가장 탐하는 민족이었다. 그들의 켈트족 선조들은, 기원전부터 이미 영국 섬들에 소 사육 문화를 구축했으며, 43년에 브리튼을 공격해서 남부와 동부의 저지대에 자리잡은 로마인들도 로마군 병사들이 선호하는 쇠고기를 위해 소를 사육했다, 소고기 수요가 증가하자, 원주민들 사이에서는 자연스럽게 소를 매매하는 시장이 형성되었고, 켈트족의 소 사육 문화는 아일랜드와 스코틀랜드 북부 및 서부에까지 뿌리를 내렸다. 이후 로마인들이 영국에서 물러났지만, 소는 자연스럽게 부의 상징으로 남았으며 육식은 영국인 식생활의 중심이 되었다. 


유럽인은 육식을 즐기기로 유명했지만, 그 중 영국인들은 이웃한 육지인들보다 훨씬 더 많은 쇠고기를 소비했다. 쇠고기에 대한 그들의 탐식은 켈트족이 사냥, 동물학살, 화려한 고기 만찬을 즐긴 전통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그 전통은 봉건왕조 시대의 귀족들을 거쳐서, 이후 젠트리 계급 사이에서 계속 이어졌다. 영국인의 의식에서 동물 도살의 신성한 의미는 이미 오래 전에 퇴색 되었지만, 고기 특히 쇠고기가 '활력'을 불어넣는다는 믿음은 영국인, 그 중에서도 귀족들의 의식에 확고하게 자리잡았다. 쇠고기를 대량으로 섭취하는 것은, 엄청난 힘과 남성다움을 획득하는 것으로 여겨졌다. 미국 독립전쟁 직전. 즉, 영국의 군사력이 사실상 전세계 모든 대륙에 손을 뻗치고 있었던 무렵 한 영국인은 이렇게 적었다. "고기를 맘껏 먹는 사람들이 좀 더 가벼운 음식을 먹는 사람들보다 더 용감하다는 사실은 두 말하면 잔소리다." 

때문에 영국 귀족들은 서로 경쟁을 하듯이 호화로운 고기 만찬을 준비하기 위해서 개인의 재산과 시간과 에너지를 아낌없이 쏟아부었다. 부유층에서는 그 음식 준비가 지위와 특권을 내세우는 기본적인 수단이었다. 영국에서는 "빈자들은 살기 위해 먹었지만, 부자들은 먹기 위해 살았다." 라는 말이 나돌 정도였다. 귀족들 간의 경쟁이 점점 치열해지자 1283년 에드워드 2세는, 왕국의 저명 인사들이 자신들의 성에서 엄청난 양의 고기와 음식을 흥청망청 낭비하고 그보다 낮은 지위의 사람들이 자신들의 신분에 걸맞지 않게 그들을 흉내내는 것을 금하는 법령을 공포했다. 왕의 칙령은 만찬에서 고기 요리의 수를 제한하는 것이었는데, 만찬 주최자의 정치적 영향력이 준비한 요리에 따라 열렬한 지지자들을 끌어 모으는 능력을 크게 좌우한다는 점을 감안해 본다면, 그것은 상당히 중요한 결정이 아닐 수 없었다.


따라서 고기는 각 군주의 만찬에 초대된 손님들의 적절한 지위와 신분을 명확히 구분해 주는 정치적, 사회적 수단으로 사용되었다. 주빈석은 언제나 가장 윗사람에게 제공되었으며, 그 옆으로 지위에 따라 차례차례 자리가 정해졌다. 최고 부위의 고기는 가장 윗사람의 몫이었고, 질이 좀 떨어지는 부위는 아랫사람에게 제공되었다. 흔히 사용하는 "굴욕을 참다(eat humble pie)"라는 표현도 실은 "사슴 내장을 먹다"라는 뜻에서 유래된 것이다. 


영국의 봉건군주들과 지주계급의 쇠고기 탐식은 가히 전설적이었다. 심지어, 빅토리아 여왕 시대 후기까지도 귀족과 상류층 계급은 화려하게 차려진 고기 만찬을 즐겼다. 소설가 프리스틀리(J. B. Priestly)는 "로마 제국 이래 탐식에 빠져든 사람들이 그토록 많았던 적은 없었다." 라고 말한다. 지주계급의 농총 주택에서는 매일같이 백정, 요리사, 주류 관리인, 부엌 하인들이 시중을 드는 성대한 사냥 파티, 만찬 준비, 화려한 음식들이 요란하게 펼쳐지곤 했었다. 


근대 초기에는 영국 도시에서는 부유층과 빈곤층사이에서 부르주아 계급이 등장했고. 이들은 육식을 갈망했다. 때문에 영국 도시에서는 엄청난 쇠고기 소비가 발생했고, 산업혁명 직전에 영국은 이미 세계적인 쇠고기 육식 생활의 중심지로 자리잡았다. 1726년 즈음 런던 시장에서만 해마다 무려 10만 마리의 소들이 도살되었다. 당시의 런던 주민들은 스페인, 이탈리아, 프랑스 일부 지역 주민들이 한 해 동안 소비하는 전체 쇠고기보다 더 많은 양의 질 좋은 쇠고기를 겨우 1달 동안 먹어치웠다. 덤으로 영국군은 적색 육류가 군인들을 강하게 만든다고 믿어서, 해군 기준으로 수병 1인당 1년동안 무려 208파운드(1파운드=0.45kg)의 쇠고기를 제공했다. 소비량은 대략 하루에 250g정도였다. 그러니까 고깃집에 가면 나오는 쇠고기 1인분보다 좀 더 많은 양을 1년 365일 내내 먹었다는 계산이 나온다. 여담으로 이 믿음 때문에 영국 해군은 채소를 기피했고 이로 인해 괴혈병이 유행했다는 설이 있다.


영국의 엄청난 쇠고기 수요는 영국의 식민지 정책의 방향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17세기 영국 귀족, 부르주아 계급, 군대에서 쇠고기 수요가 급증하자 영국 정부는 어쩔 수 없이 새로운 목초지를 찾아나서야 했다. 스코틀랜드와 아일랜드가 최초로 식민화된 목초지가 되었으며, 뒤이어 19세기에는 북아메리카 평원, 오스트레일리아 오지, 뉴질랜드 초원이 똑같은 길(정복)을 걸었다.


양고기 또한 유명한 식재료인데, 영국인들은 어린양(lamb) 고기와 늙은 양(mutton)을 철저히 구분하여 요리법을 체계화시켰으며, 근대 가축 품종 개량 기술의 발전 당시 가장 첫 대상으로 양을 품종 개량해 질 좋은 양고기를 생산해내었다. 또한 여러가지 요리법으로 양고기의 단점인 누린내를 효과적으로 잡을 수 있는 방법을 발전시켰다. 영국인들은 목초지에서 소와 함께 양의 사육도 활발히 했는데, 이렇게 개척된 지역들인 웨일스와 뉴질랜드는 오늘날까지 드넓은 양목장과 질높은 양고기 생산으로 유명하다. 영국식 양고기 스튜는 오늘날 영국의 각 지역과 가문의 특징을 보여주는 가정식이자, 영국계 이민자들이 세운 캐나다, 뉴질랜드, 호주의 각 가정에서도 중요하게 만들어먹는 가정 요리 중 하나일 정도로 양고기에 대한 사랑도 크다.


이렇게 고기 매니아들이 넘쳐난 터라 이들은 고기를 2가지로 나눴는데, 이게 붉은 고기(살코기)와 하얀 고기(우유, 치즈, 버터 등)이다. 값비싼 것은 역시 살코기. 닭고기는 하얗지만, 레그혼 종은 2.7kg까지 기르는데다가 전근대식 사육은 효율을 되게 중요하게 여기지는 않았던지라 오늘날의 고기보다 더 늙고 풍미와 색이 짙었다.


이러한 고기 사랑은 후대에 한국에서 서양 요리들 중에서도 유독 부당하게 저평가되는 요인으로도 보이는데 고기 요리에 집중한 결과 상대적으로 채소 요리는 기껏해야 샐러드 정도인 부실한 수준에 머물렀다. 이웃 국가인 프랑스는 물론 대륙 유럽 대다수의 국가들도 영국보다는 훨신 더 다양한 채소 요리가 존재할 정도. 그런 상황에서 다양한 채소 요리를 접하고 후대에 웰빙 열풍으로 '고기보다는 채소가 몸에 좋다'는 인식이 박힌 현대 한국인들에게는 야채가 거의 없는 영국 요리는 다른 서양 요리들보다도 이질적으로 느껴질 수 있다.


연방과 영국요리

영국 요리의 발전을 얘기할 때 17세기 이후 전세계 곳곳에 있었던 영국 식민지들의 영향을 빼놓을 수 없다. 또한 20세기 이후 현재까지 영연방의 일원이 된 이들 국가 간 교류의 영향으로 다양한 나라의 음식 문화와 재료가 영국으로 유입됐으며, 많은 영연방 국가에 영국 요리가 유입됐다. 또한 현재도 강력하게 남아있는 영연방 국가간 교류 채널들로 영국과 영연방 각국의 요리들이 교류, 발전하고 있다.


가장 먼저 손에 꼽히는 것이 인도, 파키스탄, 방글라데시, 스리랑카 등 남아시아 지역의 요리이다. 남아시아 요리는 현재 영국에 성공적으로 정착하였으며, 영국 요리에 큰 영향을 끼쳤다. 처음에는 남아시아로 파견된 영국인들이 귀국하면서 데리고 들어온 인도인 하인 등 소수의 인도계 노동자들을 통해 영국 상류층 사회에 단편적으로 소개되었으며, 이 시기 커리, 고추 등 인도식 향신료가 영국 요리에 일부 첨가되게 된다.


19세기 후반 이후 남아시아인들의 영국행이 대폭 늘어났으며, 20세기 남아시아 각국이 독립한 이후에도 영연방 체제 내에서 영국 이민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졌다. 영국으로 이민온 이민자들은 런던 등 대도시에서 자국 요리를 파는 식당을 운영했으며, 이를 통해 영국 요리에 인도 등 남아시아 지역의 식문화가 유입되게 되었으며, 영국 외식업계의 흐름 또한 바뀌게 된다. 현재도 런던에서 가장 흔한 외식 식당 중 하나로 인도 요리 식당이 꼽힌다. 또한 현대 영국 요리에 카레 등 인도 향신료를 사용한 요리가 많은 원인이기도 하다.

오뚜기의 무리수 '오뚜기카레를 처음 먹어본 인도사람들의 반응'

나쁜 기억을 지우고 싶다면 카레를 먹어라

위는 홍콩 현지화된 영국식 밀크티와 간식들, 아래는 영국 케이크가 호주 현지화된 호주 전통(?) 레밍턴 케이크


중국, 특히 영국의 영향권 아래에 있던 광둥 지방 요리의 영향을 받기도 했다. 가장 기본적이고 대표적인 사례로, 현대 영국의 차문화도 생성 과정에서 중국과 인도의 영향을 받았는데, 19세기 초까지 영국의 차문화는 특히 중국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다.


차를 제외한 영국 요리 자체에 중국 요리의 영향이 유입되기 시작한 사건은 크게 두 가지로 꼽힌다. 19세기 싱가포르 등 영국령 식민지로 유입된 화교의 영향과, 광둥 지역 특히 영국령으로 편입된 홍콩의 영향이 있다. 싱가포르와 홍콩을 통해 영국 요리에 중국 요리, 특히 그 중에서도 광둥 요리가 영향을 미치게 된다. 20세기 이후 해당 지역들의 발전과 영국과의 교류 확대로 이 흐름은 더욱더 확대되었다. 대표적으로 케첩과 간장, 그리고 중국식 국수와 만두 그리고 볶음 요리법 등이 영국으로 유입됐다.


역으로 홍콩과 싱가포르 요리에도 영국 요리가 큰 영향을 끼쳤다. 대표적으로 홍콩화된 영국식 밀크티나 디저트들, 싱가포르에서 유명한 과자와 빵 등이 있다. 더불어 티타임 세트 등 정통 영국 요리 메뉴 또한 홍콩과 싱가포르의 주요 메뉴 중 하나이다. 또한 영국 요리와 중국 요리를 섞어 만든 특색 있는 요리들도 많다. 


남아프리카 공화국과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등에서 영국 본토에서는 나지 않는 열대과일, 향신료 등 다양한 식재료가 영국으로 유입됐으며 이로 인해 레시피가 수정, 보완됐으며 새로운 레시피가 만들어지기도 했다. 또한 현재의 영연방 국가들로 건너간 영국인들과 그 후손들은 모국의 요리를 현지 사정에 맞게 개량, 발전시켰고, 덕분에 같은 메뉴여도 나라마다 레시피와 맛이 다른 일도 종종 벌어진다. 대표적으로 피쉬 앤 칩스의 경우 영국 본토에서는 대구를 이용하지만, 캐나다는 연어를 이용하는 경우가 많으며, 호주는 상어를 이용한다고 한다. 캐나다와 호주, 뉴질랜드에서 변형된 영국 요리는 방문했을 때 꼭 먹어봐야할 요리들 중 하나로 꼽히고 있다.


더불어 영국과 상대적으로 교류가 많았던 자메이카, 나이지리아 등의 경우에는 현지 원주민들이 식민지 시절과 독립 후 영국과 교류하면서 들여온 영국 요리들을 자신들의 입맛과 환경에 맞게 바꾸거나 자국 전통 요리와 섞어 자신들의 특산 요리로 만든 요리들이 꽤 있다. 이런 요리들은 크리올 요리의 일부로 여겨지기도 하고 때로는 식민지 시대에 만들어진 자메이카나 나이지리아 전통 요리로 여겨지기도 한다. 1960년대 이후에는 이런 요리들이 영국으로 역수출 되기도 하고 있다.


영국요리 종류

English Breakfast라고 불리는 영국의 아침식사는 세계의 호텔에서 필수메뉴로 여겨질 만큼 유럽 최고의 아침으로 꼽히며 호텔에서는 프랑스나 미국의 아침식사보다 상급으로 여겨진다고 한다. 또한 한국인도 즐겨먹는 샌드위치, 푸딩, 파이 등도 역시 영국에서 출발한 요리이다. 케첩 또한 이름만 중국에서 따왔을 뿐, 사실상 영국에서 독자적으로 변형 과정을 거쳐 탄생한 소스이다. 케첩의 토마토는 영국 사람들이 처음 집어넣은 것이다. 또 돈까스 소스의 밑바탕 역할을 하는 우스터 소스 역시 영국에서 나왔다. 


카레 역시 영국에서 출발한 요리인데, 인도에서는 가정마다 임의로 여러 향신료를 섞어서 먹는 것을 마샬라라 부르며 먹는 문화가 있었고 식민지 시기 영국인들이 그 마샬라를 특정한 형태의 향신료 배합과 밀가루를 섞어 만든 것이 현재 우리가 먹는 커리(카레)가 된것이다. 1870년대 요코하마항을 통해 일본에 영국의 카레요리가 들어오기 시작해 영국 C&B사의 카레가루를 이용한 각종 요리가 요리서적 등을 통해 일본대중에게 소개되었는데, 영국의 카레를 우동에 말아먹거나 밥에 얹어먹는 방법이 대중요리 서적을 통해 소개된 것이 현재 우리가 먹는 카레라이스의 시초이다. 현재 한국인이 주로 먹는 오뚜기 카레를 만드는 오뚜기는 카레가루를 일본의 S&B에서 전량 수입하는데, 이 일본의 S&B 카레가루는 1923년 영국의 C&B사의 카레가루를 그대로 모방해 생긴 일본의 짝퉁으로, C&B사의 것과 재료배합만 약간 다르기에 기본적으로는 영국의 카레맛과 동일하다. 고로 카레라이스란 요리에서 일본의 기여는 그저 영국의 카레스튜를 밥 위에 얹어 놓은 것이 전부이며, 기여가 가장 큰 곳은 영국이라고 봐야 합당할 것이다.


영국요리 저평가 원인

산업혁명기의 빈곤층의 식사가 엉망이었던 적이 있지만 이는 세계구적인 현상으로 영국만의 문제라고 할 수는 없었다. 서구권에서 영국요리가 맛없다는 식의 농담의 직접원인은 세계2차대전시기의 영국의 궁핍한 생활로 꼽히고 있는데, 2차대전 전시의 영국은 독일 잠수함에 의해 대서양으로의 대양 항해가 크게 제한된데다, 전시 경제 체제로 항상 부족한 물자에 시달렸다. 이 때문에 미국이 제공해준 스팸이나 호주, 캐나다, 남아프리카 등 영연방 국가들이 제공한 곡물과 통조림, 장기보존 식품들로 온갖 요리를 만들어 연명했어야 할 정도로 일반인들의 식생활이 엉망이었다. 마치 한국 전쟁 직후의 한국인의 식생활이 막장가도를 달렸던것과 유사하다. 다만 이건 어디까지나 1930~40년대 이야기이고, 배급제가 해제 되고 영국 경제가 정상 가도에 올라선 1950년대부터는 정상화 되었다.


다만 대전기 이런 식품난은 독일이나 네덜란드, 덴마크 등도 겪었으며, 영연방과 미군의 지원을 받아 그나마 사정이 나았던 영국과 달리 이들 국가들은 해상 무역로가 끊겨버린 상황에서 나치에 의해 인정사정 없이 식량을 통제 당했다.


더불어 이 항목은 어디까지나 "영국 요리가 현재도 맛이 없다."라는 가정 하에 밈 항목과 연결해 쓰인 것이기 때문에 진지하게 무조건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참고로 영국 요리 항목이 개편되기 전까지는 밈과 원인 분석 항목이 그냥 영국 요리 항목이었다. 즉, 원인 분석 항목은 밈 항목이 온전한 사실이라고 받아들여졌던 당시 "왜 영국 요리는 맛이 없는 것인가?"라는 주제를 탐구한, 전제부터 잘못된 항목인 것이다.


영국 급식의 문제점

하지만 현대에도 영국 요리에 문제가 있는 부분이 있었으니 그건 바로 학교급식의 문제였다, 1944년 법적인 영양 가이드라인이 갖춰진채 급식이 시작된 이래로 잘 진행되어 오던 급식이 1980년대 마가렛 대처 정부에 의해 무상급식과 같은 재정지원이 폐지 되고 학교 급식을 관리하는 주체가 학교에서 민영사업자로 넘어가면서 급식의 질이 급격히 하락했다. 민영사업자들이 감자튀김, 칠면조 너겟, 피자와 파이등 수준 낮은 '따뜻하지 않고 차가운' 패스트푸드 수준의 급식을 학교에서 제공하자 이에 경악한 제이미 올리버가 2004년 본격적으로 문제 제기를 시작하고, TV 방송을 통해 이를 알리기 시작했다.


제이미 올리버가 영국 급식을 바꾸기 위해 노력한 내용을 보면 정말 충격과 공포. 제이미 올리버 문서를 보면 알 수 있지만 요리사인 그가 성인병 예방과 급사의 위험을 줄이기 위해서 "학교 급식에라도 제대로 된 음식을 먹이자."라는 상식선의 운동을 펼치고 이를 위해 텔레비전에 나왔는데 심지어 영국 급식을 상대로는 방송 중에 울면서 노력해도 제대로 안 됐다. 그나마, 이 에피소드들이 나간 뒤에 뒤늦게 개선이 되었다고는 하지만.


이러한 영국 급식의 질적인 저하의 원인은, 마가렛 대처 수상이 집권하던 시절, 영국병을 해소하기 위해서 교육예산을 팍팍 깎고 지방 정부에게 교육예산의 권한을 넘긴 탓이다. 위에서 이야기한 제이미 올리버의 사례도 학교 조리사들이 "조리하기 힘들다."라는 말도 안 되는 이유로 대충 전자레인지에 해동한 패스트푸드를 먹일 정도였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마사 페인(Martha Payne)이라는 9살짜리 꼬마가 자신의 학교에서 나오는 급식에 대해 신랄하게 평점을 매겨 비판하는 글들을 자신의 블로그에 올렸고, 그 포스팅이 반 년만에 300만 조회수를 기록하고 이전 급식개혁운동을 주도했던 제이미 올리버의 격려 멘트까지 받았다. 때문에 자신들의 입장이 불리해진 현지 협의회가 근면성실한 직원들의 사기를 저하시키는 부당한 모함이라며 급식에 대한 사진 촬영과 업로드를 금하고 탄압하자, 영국 급식에 대해서 논란이 사회문제로 크게 불거져서 급식 개혁에 대한 불길이 각 지역으로 퍼져나가고 있다고 한다.


결국, 제이미 올리버의 이러한 노력이 2005년 영국총선의 주요 화두로까지 진화하여, 영국 정부로 하여금 아이들의 급식영양권을 지키기 위하도록 아이들의 급식신탁(Children's Food Trust)이라는 비정부공공기관까지 만들게 되었고 2014년 9월부터 영국 모든 학교의 유치원생들은 무상으로 '따뜻한' 급식(free hot meal at lunchtime)을 제공받게 되었다. 부총리인 닉 클레그도 적극적으로 나서 모든 유아들에게 인당 2.30파운드를 급식비로 지원하기 시작했고, 스코틀랜드에서는 모든 어린이들이 무상급식을 제공받게 되었다. 영국의 교사노조는 여전히 영국에서 나머지 모든 학생들이 무상급식을 받기 위해 노력하고 있고, 영국 노동당에서는 이를 정책 과제로 삼아 진행 중이다. 


제이미 올리버의 급식의 질 향상을 위한 노력은 미국 급식으로까지 확대되었다.


프랑스와 일본의 편견이 한국인들에게 영국 요리의 인상에 부정적인 영향을 주었다면 영국 급식의 심각성에 대한 뉴스나 자료들은 이런 편견을 더욱 악화시키는 역할을 했다. 영국 급식의 문제점은 영국 급식에 대한 예산 지원 미비나 관리감독 부실로 인한 비리 등의 문제도 있기에 앞으로도 문제가 터져 나올 가능성이 있다.


영국의 티타임

영국에서는 전통적으로 티타임이 공식적인 식문화로 자리잡았고 케이크와 쿠키, 스콘, 샌드위치 등 다양한 간식을 곁들여 먹는다. 


티 샌드위치의 경우에는 보통 마요네즈+햄 1장 or 오이 1장의 단순한 구성으로, 차에 곁들여 먹기 위해 간단히 만든다. 과거 영국에서는 '아삭한 오이'를 먹을 수 있던 것은 상류층들의 특권이었으므로 식빵 사이에 얇게 저민 오이를 끼운 큐컴버 샌드위치가 티타임 전통 음식으로 내려왔던 것이다. 애초에 홍차 자체가 찻물의 색이 나지 않을 때까지 여러번 우려먹던 고급 음식이었고, 찻잎을 보관하는 상자는 감히 하인들이 만지지 못하고 오직 여주인만이 만질 수 있었다. 그리고 테스코 같은데서 1파운드도 안하는 싸구려 샌드위치를 사 먹는 게 아니라면 한국인이 일반적으로 햄 하면 생각하는 프레스 햄이 아니라 콜드컷 햄을 넣는 음식인데다, 같은 영국식 식빵이라도 본토 물건은 조금 더 퍼석하기 때문에 촉촉하고 아삭한 오이와 매우 잘 어울리는 조합이다. 


이 외로 곁들여 먹는 스콘은 퀵브레드의 일종으로 견과류와 여러 재료를 섞어 넣기도 하며, 종류가 다양하다. 밀가루로 만든 단순한 것은 클로티드 크림 같은 것을 얹어 먹기도 한다. 스콘 같은 경우 아무 것도 곁들이지 않은 상태에서는 한국에서 사 먹는 게 더 맛있는데, 영국 물건이 맛이 없는 게 아닌, 한국에서 파는 스콘에 유지방과 당분이 더 많이 들어가기 때문이다. 그도 그럴 게, 저 동네는 빵에다 스프레드를 발라먹는 게 일상이다 보니 그냥 꿀이든 버터든 클로티드 크림이든 치즈든 입맛에 맞게 발라먹으면 그만인 반면, 일본과 그 일본에서 제과, 제빵을 받아들인 한국은 소비자가 그런 행동에 익숙하지 않으니 스프레드를 바르는 과정을 대체할만한 제조공정을 추가한 것. 다만, 식어빠진 스콘은 한국 것이든 영국 것이든 진짜 더럽게 맛없다


영국요리 고정관념

2010년대 들어 한국 웹에서는 영국 요리에 대한 비난성 짙은 밈이 유행하며 비난의 정도가 심해져 영국 요리에 대한 인식이 매우 나빠졌다. 


이런 식의 밈이 나오게 된 것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유럽에서 나돌던 '요리 못하는 영국인' 이라는 농담이 '세계 몇대~' 혹은 국민성 유머를 좋아하는 일본에서 극심한 편견과 고정관념으로 격화되어 여러 에피소드와 함께 한국에 들어오자 꽤 폭발력을 가지고 2012년경부터 이글루스 등을 통해 본격적으로 한국 웹상에 퍼지기 시작한 것에서 유래한 것처럼 보인다. 


이 후, 방송에서 영국 여행을 간 연예인이 피시 앤드 칩스를 사 먹고는 맛이 없다며 갈매기에게 모이로 주는 캡처사진이나 역시 영국 여행을 간 할머니의 악평 등의 캡처가 네티즌들 사이에서 화제가 되면서 여기에 기름을 부었고, 기껏해야 런던에서 며칠 머물며 동네 식당에서 밥 사먹고 돌아온 배낭여행자들의 주관적 증언까지 곁들여지면서 전형적인 확증편향의 사례로 발전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이어진 한국 웹상의 영국 요리를 향한 비난과 조롱의 행렬은 정말로 영국 요리가 맛이 없다고 한국인의 뇌리에 깊숙히 새겨질 지경에 이르러 영국 요리가 왜 맛없게 되었는지까지 분석하며 영국인이 선천적인 요리치라는 인종차별적인 주장에까지 나아가기 시작했다. 


가령 '아시아인은 운전을 못한다'와 같은 고정관념을 미국인들이 철썩같이 믿으며 인터넷에 아시아인들의 각종 자동차 사고 사례와 통계를 모아 근거로 삼고, 아시아인들의 운전실력에 대한 유명인의 농담을 공식적인 것인냥 늘어놓고, 그에 대한 반박에는 '내 경험상 아시아인들은 정말로 운전을 못하더라'라고 주관적인 경험을 들먹이며 깔아뭉개며 급기야는 아시아인이 운전을 못하는 이유를 분석한답시고 '짧은 팔 때문에 운전을 못한다' 같은 인종차별적인 가설을 내놓으며 '아시아인의 운전실력'이 대대적인 조롱거리가 된다면 무척 억울한 상황이겠지만, 국내의 영국 요리 비하는 그 고정관념의 주제를 영국 요리로 변환만 하였을 뿐, 별반 다를바가 없다. 


해외 사이트에서는 당시 "영국요리가 그렇게까지 막장은 아닌데 왜 그렇게 비난하나?" 같은 의견을 보인다면 영국 요리/증언 문서를 들먹이며 반박하는 웃지 못할 상황도 자주 일어났다. 



한마디로 현재 한국 웹에 퍼진 영국 요리에 대한 비하성 인식은 서구권에서는 진지하게 쳐주지도 않는 유머를 심각한 편견과 고정관념으로 변형시킨 일본의 대중문화적 인식을 한국에 그대로 이식한 편견이라는 것이며 타국의 요리에 대한 객관적 인식과 존중이 필요할 것이다. 일본인들의 이러한 편견은 두 나라의 요리문화 차이 탓도 있는데, 일본은 메이지 유신 이전만 해도 불교국가로써 육식을 금기시한데다 담백하고 아기자기한 음식을 좋아하는 정서가 있으므로 생선요리가 적고 기름지며 투박한 육류요리가 많은 영국의 요리문화와 아무래도 상극일 수 밖에 없다.


하지만 실상을 보면 일본은 영국요리와 더불어 프랑스요리 등 서유럽식 요리가 아주 큰 인기를 얻고 있는 지역이다. 일본 가정식의 간판급이라 할 수 있는 고기감자 자체가 영국요리인 쇠고기스튜의 일본식 변형판이다. 고기요리 자체를 메이지유신과 함께 서유럽식으로 받아들였기 때문에, 한국이나 중국과는 달리 육류요리에 한정해서는 매우 서구식 입맛을 지닌 나라가 일본이다. 단, 파리 신드롬 문서에서 알 수 있듯이 일본은 귀축영미보다는 프랑스 문화와 요리에 매우 심취해 있으며, 타국요리, 특히 영국요리를 대놓고 무시하는 프랑스인들의 인식을 그대로 복붙하는데 아무런 거리낌이 없었다. 


이런 밈이 없어도 한국인들이 영국 요리를 맛없어 했을 것이란 얘기도 있다. 애당초 서구권 음식이 입에 맞지 않아 여행시에 김치와 고추장을 챙겨가기도 할 정도로 서유럽과 북유럽의 요리는 취향에 맞지 않아 하며, 미식의 최상위권 요리라는 프랑스 요리도 고전하는 게 한국 요식업계다. 서구 정통 요리에 대한 반감이 낳은 인식이라고 하기엔 이탈리아 요리가 승승장구하고 있으며, 그리스 터키 등의 지중해 요리에는 상당히 후한 점수를 주는 게 한국인의 식성이다. 개인 차야 많겠지만 대중성이라는 점에서는 부인할 수 없을 정도로 프랑스 영국 독일 요리는 한국에서 고전을 면치 못한다. 상당수의 한국인 배낭 여행자들이 영국 요리를 맛없다고 증언한 건, 정말로 그게 입맛에 맞지 않았기에 그런 증언을 했을 가능성이 높다.


한국인의 여행기를 보면 영국 뿐만 아니라 독일이나 프랑스에 가서도 음식을 혹평하는 내용이 부지기수다. 혹평의 내용을 보면 짜고 기름지다는 말이 주류를 이루는데, 고추를 비롯한 향신채는 소금을 덜 넣어도 맛있게 느껴지게 하고 기름진 맛을 덜어주는 능력을 발휘한다. 실제로 한국요리의 염도는 상당히 낮은 편에 속한다. 한국인이 고평가하는 지중해요리는 마늘과 서양고추 등의 향신채를 충분히 활용하고 있다. 그런데 영국인들은 대개 음식에 함초조차 넣기 싫어하니, 말 그대로 상극이라고 할 수 밖에 없다.


하지만 이런 걸 감안해도 프랑스를 거쳐 일본 필터로 걸러진 밈이 아니었다면 영국 요리는 한국에서 지금보단 나은 평가를 받았을 것이다. 영국 요리에 대한 농담은 프랑스인들이 아주 좋아하는 농담으로, 틈만 나면 영국 요리를 못 까서 안달이다. 대통령이라는 사람이 다른 국가 정상들과의 회담에서 아무런 거리낌 없이 영국요리 비하를 하는 모습이 영국 bbc를 통해 기사로 소개되기도 했다. 영국 가정식은 스튜와 수프의 비중이 높은데, 이는 국물 요리를 선호하는 한국인들이 좋아할 만한 요소이다. 물론 대처리즘 이후 자국 창작물에서도 지독하게 깔 정도로 답이 없는 영국 급식은 그래도 까였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