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전국시대 戰國時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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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전국시대 戰國時代


2016. 12. 28.

戰國時代 
고대 중국 동주시대(東周時代)의 후반부로 한나라의 학자 유향(劉向)이 저술한 역사서 <전국책(戰國策)>에서 따와서 전국시대라 불린다. 영어 명칭은 Warring States Period.



<전국시대 지도>

전국시대의 시작기준 기준은 구분선은 사람마다 조금씩 다른데 사마광은 자치통감에서 진(晉)나라가 3명의 가신들에 의해 한(韓), 위(魏), 조(趙) 3국으로 분할되었을 때로 보았고 다른사람은(추가바람) 제(齊)나라의 지배층이 강(姜)씨에서 전(田)씨로 교체된 연도를 기준으로 보는 견해와, 오(吳)의 멸망을 기준으로 보는 사람도 있다. 이 사건들의 공통점은 지배자의 교체나 멸망인데 이는 춘추시대 주나라와 천자와 제후의 관계를 알 필요가 있다. 주나라 유왕이 전사한 뒤부터 제후들을 관리할 통치력을 완전히 상실한다. 그나마 역사적, 종교적 권위로 땜질해 간신히 주나라 봉건제국을 유지하던 시기가 춘추시대다. 각국의 제후들은 다른 제후와 전쟁을 벌이는 등 봉건국가 중에서도 보기 힘들 정도로 독자적으로 행동했지만 형식상으로나마 주나라의 천자의 신하로서 제후의 자리도 주나라가 임명해줬다는 사상이 강했다. 따라서 모든 제후의 임명권은 주나라 천자의 고유권한이고 제후가 다른 제후를 합병등으로 몰아내는 일은 강한 제후인 춘추오패도 할 수 없는 권한 밖의 일로 보았다. 때문에 춘추시대 전쟁은 나라가 멸망하는 일이 없었고 패전국도 (주나라가 임명한) 같은 가문의 제후로 교체하는 선에서 전쟁은 끝났다.




하지만 기원전 400년경부터 위 사건 같이 제후가 천자의 권한을 무시하는 일이 발생했지만, 주나라는 앞서 언급한 것처럼 수백년전부터 이런 반란을 통재할 힘은 없었기에 결국 주나라 천자는 자신의 권한을 공격한 사람들을 새 제후로 인정하는 사실상 항복선언을 한다. 결국 권위라는 땜질마저도 부서지면서 주나라 봉건제국은 사실상 붕괴했고, 안그래도 독립적인 제후들은 이제 완전히 독립국이 되면서 다른 독립국과 국가의 운명을 걸며 전쟁이 시작된다. 당연히 주나라 천자의 권위는 땅바닥을 넘어서 맨틀 바닥까지 뚫고 들어갔는데 당장 조공 한 번 제대로 들어오지 않아 일개 제후보다도 궁핍하게 생활했고, 천자의 통치권은 낙양(洛陽, 뤄양) 주변에서만 효력이 미쳤지 다른 제후들에게는 노턴 1세보다도 권위가 없던게 주나라 천자다. 그리고 이렇게 시작된 전국시대는 사마광의 말처럼 '천하에서는 지혜와 힘으로 서로 크고 자라게 하였고, 드디어 성연들의 후예들로 제후가 된 자들로 하여금 사직이 무너지는' 시대가 찾아온 것이다.

시대적인 상황도 춘추시대와 달랐는데, 우선 철기가 완전히 정착하면서 훨씬 많은 병사를 무장시킬 수 있었다. 결국 전쟁도 소규모 귀족 중심의 전차전 방식이 도태되고 대규모 농민 중심의 보병전으로 바뀌면서 국가 단위의 총력전 양상으로 전쟁의 패러다임이 변화하였다. 이런 큰 비용과 희생을 치르면서 단순히 제후 세습 정도의 자잘한 수확으로는 전쟁의 수지타산이 맞지 않았고, 마침 위에서 언급한대로 주나라 눈치볼 일도 없어지면서, 결국 어느 한 국가를 멸망시키겠다는 의지를 가지고 국가의 사활을 건 싸움이 200년 내내 벌어졌다. 결국 국가들은 국력을 키우기 위해 과거 봉건질서 말고는 의지할 곳이 없던 주변 소국을 합병시켜 나갔으며, 이런 치열한 싸움에서 사실상 연(燕), 조(趙), 제(齊), 위(魏), 한(韓), 초(楚), 진(秦) 7개 국가만 살아남았고 이들을 전국칠웅이라 불렀다.

춘추시대와 합쳐서 춘추전국시대라 부르기도 하는 이 시기는 온갖 권모술수가 등장하고, 수많은 엄친아들과 막장들이 등장하여 카오스를 보이던 시대였다. 결국 이 혼란상은 상앙의 변법 이래 늘 7웅 중 가장 강한 군력을 자랑했던 진(秦)에 의해 종결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