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치킨의 역사 백숙에서 구운치킨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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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치킨의 역사 백숙에서 구운치킨까지


2014. 12. 14.

1960년대 : 백숙에서 전기구이 통닭으로

60년대 이전까지 한국의 닭요리는 백숙이 대표적이었다. 그러던 중 1961년 ‘명동영양센터’의 전기구이 통닭이 등장하면서 한국의 닭요리는 오늘날의 치킨으로 변화를 시작했다.

치킨생산이 급격히 늘어나게 된 데에는 ‘제 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이 큰 역할을 했다. 1962년부터 5년간 시행된 이 계획의 주요사안 중 하나가 ‘농업 생산력 증대’였다.
이에 영양가 높고 비교적 사육이 쉬웠던 닭을 사육하는 농가가 늘어났고 닭고기의 생산량은 13배 가까이 껑충 뛰어올랐다..

1970년대 : 튀긴 통닭과 조각치킨의 등장

1971년 식용유를 공장에서 대량생산하게 되면서 저렴한 가격에 기름을 접할 수 있게 되었고 1977년에는 최초의 튀긴통닭 브랜드가 백화점에 입점했다. 한국 최초의 ‘프라이드 치킨’의 파우더에는 인삼, 마늘, 생강 등 12가지 양념이 들어 있었다. 한국에서는 발명특허를, 뉴욕의 국제발명전에서는 금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1979년에는 대한민국 첫 번째 프랜차이즈‘롯데리아’가 소공동에 문을 열고 조각치킨을 판매하기 시작했다. 버스비가 60원이었던 당시 치킨 1조각은 450원으로 꽤 고가의 음식이었다.

1980년대 : 치킨 프랜차이즈 전성시대

80년대에는 국산 치킨 프랜차이즈가 등장하면서 한국 특유의 배달 문화와 함께 치킨이 급속도로 대중화 되기 시작했다. 특히 한국식 양념을 앞세운 양념치킨이 인기를 끌면서 ‘양념반, 후라이드반’의 ‘반반’ 공식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이뿐 아니라 미국의 K 프랜차이즈가 1984년 종로에 첫 매장을 열면서 치킨 프랜차이즈의 전성시대가 열리게 된다.

가족음식이었던 치킨은 80년대 후반, 대중술로 변모하기 시작한 맥주와 만나 어른들의 음식인 ‘안주’의 대열에 합류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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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 : 호프집 안주에서 깔끔한 홀 푸드로

치킨이 배달음식으로 자리잡으면서 치킨 매장은 호프집 분위기로 술과 담배연기가 생각나는 어두운 이미지가 되어가고 있었다. 그러던 중 1995년 BBQ의 등장으로 동네 치킨집들은 ‘치킨 전문점’으로 변화하기 시작했다. 게다가 1999년 핑클이 BBQ의 전속 모델로 기용 되면서 치킨 모델은 당대의 최고 스타들만이 할 수 있는 자리가 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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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대 초반 : 찜닭, 붉닭, 간장치킨… 치킨 춘추 전국시대의 서막

2000년대 들어서 치킨은 화려했던 전성기를 뒤로하고 다른 닭요리에게 그 자리를 내어주게 된다. 매콤한 안동찜닭에 이어 불닭이 치킨의 아성을 이어갔지만 이내 사그라 들었고, 간장 치킨이 선풍적인 인기를 끌면서 다시금 치킨이 닭요리 최고의 자리를 쟁탈하게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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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대 후반 : 웰빙 치킨의 등장

웰빙의 열기가 전세계적으로 불면서 치킨 시장도 변화가 일기 시작했다. 치킨을 튀기는 ‘콩기름’의 트랜스지방 논란으로 ‘올리브유’, ‘카놀라유’, ‘해바라기유’ 등의 대안 기름이 유행했다. 건강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튀기지 않은 구운치킨이 등장하면서 치킨의 새로운 유행을 선도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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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대 : 치느님이 보우하사

이제 치킨은 단순히 음식이 아닌 ‘치느님’으로 승격되어 칭송 받고 있다. ‘1인 1닭’, ‘치맨’ 등의 신조어를 낳을 정도로 사랑받고 있으며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의 조사에 따르면 가장 자주 배달해먹는 음식으로 치킨(42%)이 꼽힐정도다. 최근에는 한류열풍을 타고 중국에 한국의 치맥 문화를 전파하고 있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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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가족 최고의 특별식이었던 한마리 통닭은 이제 시대와 함께 변화하며 수십가지로 갈라져 각자의 길을 걸어가고 있다.

저렴함을 내세운 프라이드 치킨으로 돌아가기도, 각종 재료로 독특한 맛을 추구하는 등 저마다의 방식으로 살아남으며 치킨의 세계를 진화시켜 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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