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식당 종업원이 하루동안 받은 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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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식당 종업원이 하루동안 받은 팁


2024. 4. 25.

 

팁 문화가 사실상 없는 아시아권 사람들이 보기에는 그냥 그 나라의 문화라고 생각할 수 있으나, 비교적 오래된 관습도 아닌데다 오히려 팁 문화가 가장 널리 퍼진 미국, 캐나다에서도 썩 긍정적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미국인과 캐나다인이 팁 문화가 없는 나라에서 여행을 하고 가장 좋았던 점으로 '팁이 없음'을 흔히 꼽는다는 점은 생각해볼만 한 점이다. 소비자 입장에서 지불해야 할 요금에는 그 서비스의 대가 자체가 이미 포함되어 있고 이런 팁은 아무리 좋게 생각해도 '보너스'로 여길 수밖에 없는데, 그런 '보너스'를 정당한 요금인 양 의무적으로 받아낸다는 건 소비자 입장에선 불쾌할 수밖에 없다.

북미에서의 문제는 이게 사실상 의무라는 것이다. 소비자 마음대로 액수를 정할 수 있으니 안 내거나 아주 조금 내도 되지 않을까 생각할 수도 있지만, 실제로는 주지 않는 경우가 거의 없다. 종업원이 손님을 불친절하게 응대하더라도 손님이 이걸 빌미로 팁을 주지 않겠다고 할 경우 한국으로 치면 생트집, 그러니까 블랙 컨슈머 정도로 여기는 시선이 있어서 어떠한 이유로든 팁을 안주면 종업원에게 진상으로 찍힌다고 보면 된다.

점잖은 고급 레스토랑이라 하더라도 말없이 팁을 내지 않고 나가려고 하면 담당 종업원이 쫓아와서 "혹시 제가 불편하게 한 것이 있나요?"라고 물어보는데 바꿔 말하면 '혹시 팁을 내는 걸 까먹은게 아니냐, 팁을 어서 내놓고 가라'는 뜻이다. 그런데 딱히 불편한 것도 없었음에도 끝까지 팁을 내지 않고 간다면 가게에서는 블랙리스트로 취급할 것이고, 손님은 그냥 그 가게에 다시는 안가겠다는 메세지를 던졌다고 보면 된다.

팁의 장점으로 흔히 오해하는 것이 '종업원에게 더 나은 서비스를 기대할 수 있다'는 것인데,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팁을 많이 주더라도 다음에 방문했을 때 손님과 종업원이 서로 안면을 트기도 힘들거니와, 설령 힘들게 안면을 텄다 해도 종업원이 그 손님에게만 뭔가 더 좋은 서비스를 주기는 매우 어렵다. 종업원이 사장님이라도 되지 않는 이상 사이드 디시 하나 무료로 내주는 것도 마음대로 못하고, 주문 과정에서 지침에서 벗어나는 행동을 하기도 어렵다.

또한 그 손님만 응대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 손님을 응대해야 하므로 한 명의 손님에게 시간을 더 쓴다는 것은 필연적으로 다른 손님에게 쓰는 시간이 줄어들거나 지연된다는 뜻이다. 결과적으로 나 한사람 서비스 더 잘 받자고 팁을 줬던 것이 결국 모두가 팁을 주고 모두가 똑같은 서비스를 받게 된 결과로 이어진 것이다.

비슷하게 손님이 차별화된 대우를 받는 경우는 VIP가 있는데, 이런 사람들이 기여하는 연간 매출은 인당 최소 수백만원 이상이기에 맞춤 종업원이 와서 친절하게 응대하는 식으로 차별화된 대우가 가능한 것이다. 바꿔 말하면 팁 몇 푼 더 얹어준다고 더욱 친절한 서비스를 기대하는 것 자체가 헛된 욕심인 것이다.

종업원이 팁에 집착하는 것은 이유가 있는데, 미국에서 웨이터의 임금은 손님한테서 팁을 받는다는 전제하에 책정되기 때문에 다른 직종보다 적고, 지역에 따라서는 심지어 최저임금보다 낮다. 미국의 몇몇 주들은 최저임금조차 웨이터 같이 팁을 받는 직종은 다른 직종에 비해 절반보다 조금 위이다. 팁을 받는 노동자의 정확한 최저시급은 $2.13이다.

정확히는 연방법으로 고정된 팁을 받는 노동자의 '최저' 시급이 $2.13이고, 각 주정부에서 또 다르게 얼마든지 책정할 수 있다. 만약 주에서 다른 금액의 최저 팁 노동자 시급을 책정하는 경우에는 둘 중 더 높은 시급이 적용된다. 하지만 많은 주 정부들은 요식산업 종사자들의 반발을 의식해 팁 노동자 시급을 연방법 이상으로 책정할 의지가 없기 때문에 결국 이 낮은 연방법 시급이 실질적으로 적용된다.

최근에는 이런 상황도 조금씩 개선되어 일부 주를 제외하면 대다수의 주들은 자기들만의 팁 노동자 최저 시급을 책정해 적용하고 있다. 캘리포니아, 워싱턴, 미네소타 주 같은 경우에는 아예 팁 노동자 시급을 폐지하고 기본 최저임금을 적용시키고 있을 정도이다. 다만 더 높은 팁 노동자 시급을 책정한 다른 주들의 경우에도 팁 노동자 시급은 최저임금에조차 미치지 못할 정도이다.참조

법적으로 꼭 내야 한다는 의무는 없지만 그 사람들은 팁을 못 받으면 정말 수입이 형편없다. 법적으로는 만약 팁 노동자가 충분한 팁을 받지 못해 일한 시간에 비해 얻은 시급+팁 수익이 최저임금보다 낮을 경우 업주가 그 차액을 보상해야만 한다. 즉 팁을 못 받더라도 법적으로 최저시급은 보장받게 되어 있다는 것. 하지만 실제로는 상당수의 업주들이 실제 차액을 보상하기 보다는 그가 팁을 많이 받은 경우들을 들먹이며 퉁친다.

쉽게 말해 미국에서 웨이터에게 팁은 보너스 개념이 아니라 봉급의 개념이다. 고용자가 노동자에게 제공해야 할 임금의 일정 부분을 소비자한테 떠넘기고 있는 셈이 된다. 받은 팁을 모두 기록해서 고용주에게 제출하면 최저임금에 못미치는 액수만큼을 받을 수 있다지만, 서비스의 질이 좋지 않아서 팁을 못 받은게 아니냐는 평가를 받을 수도 있기 때문에 결국 손님들 한명 한명에게 팁을 악착같이 요구할 수밖에 없다.

그러다보니 어지간히 잘나가는 레스토랑이 아닌 이상은 대부분의 웨이터들도 팁 문화를 싫어하는 경우가 많다. 종업원 입장에서도 손님이 팁을 이유로 온갖 갑질을 하고 여성 종업원의 경우 성희롱까지 벌어지는데다가 손님 눈치 때문에 아무 조치도 못 하기 때문에 싫어할 수밖에 없다. 식당에 따라서는 노동자들이 받은 팁을 모아 키친쪽 스태프들과 나누기도 한다. 대체로 팁 노동자 시급이 좀 더 높은 주들 내의 관행이기는 하지만, 어쨌든 노동자들 입장에서는 안 그래도 적은 수입이 더 줄어드는 것이다.

그리고 정작 업주 입장에서도 상당히 귀찮은 시스템이다. 카드로 계산을 받았을 때 서빙 담당자에게 팁을 재지급하는 과정이 귀찮기도 하고, 이 과정에서 문제가 생기기라도 하면 소송 걸릴 위험도 높아진다. 또한 업종에 따라선 차지백 위험이 큰 항목이기도 한데, 가령 판매상품 가격보다도 높은 팁은 차지백시 패소할 가능성이 꽤 높다.

받는 서비스에 따라 주는 돈을 다르게 할 수 있으니 경제적으로 효율적으로 보이나 현실은 이상과 다르다. 1:1로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람과 마주해야 하니 대부분 사람들은 서비스 질과 관련 없이 팁을 준다. 면전에서 서빙해준 사람을 대놓고 무시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또한 업무 자체도 비효율적일 수 있는데 팁 문화 때문에 종업원들이 각자 자신이 담당한 테이블만 신경쓰기 때문이다. 자신의 종업원이 바쁜 것을 보고 놀고 있는 다른 종업원에게 무언가를 부탁해도 씩 웃으면서 자신의 업무가 아니라고 거절하는 것을 경험할 수 있다. 팁 문화가 없는 국가들, 예컨대 한국인들의 경우 해당 매장 전체의 매출을 가지고 사장이 종업원들에게 임금을 주기 때문에 사장이나 관리자들이 직접적으로 종업원들을 관리하여 각자도생의 경쟁 관계가 되지 않고, 당연히 이런 일은 발생하지 않는다.

팁은 보통 현금으로 받는데 카드 거래가 보편화된 현시점에는 매우 불편하다. 비록 2010년대 들어서 팁을 카드로 계산하는 경우가 많아졌지만 지금도 상당수가 팁은 현금으로 받는다. 더불어 팁이 추적이 어려운 현금거래인 점과 무과세 대상인 것을 노려 탈세에 악용되는 경우도 많다. 미국 마피아들이 이것을 노리고 음식점을 돈세탁 용도로 운영한 사실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팁 문화가 사라지고 그 대신 종업원의 임금이 상승하면 음식점의 음식값이 상승하는 부작용이 나타날 수도 있지만 이렇게 음성적인 형태로 움직이는 돈이 양성화되면 국가가 거두어들일 세수도 늘어나므로 꼭 나쁜 것만은 아니다. 소비자 입장에서도 자신이 지불해야 할 요금이 얼마인지 정확히 알 수 있으므로 서비스의 판별이 더욱 쉬워진다.

미국과 캐나다의 경우 보통 백인이 팁을 제일 잘 주는 편이고, 흑인은 백인보다 팁을 적게 주는 편이라고 한다. 동양인은 흑인보다도 팁을 적게 주거나 당연하다는 듯 안 내고 가는 경우가 많다고. 그래서 팁을 잘 주지 않는다는 이유로 외국인이나 유색인종에게만 음식값에 팁을 포함해서 더 높은 값을 요구했다가 엄청난 벌금을 낸 사례도 존재한다.

이 와중에 한가지 꼼수로 외국인이나 단기체류자가 미국 발행 카드나 계좌를 얻기 힘들다는 점을 노려서 미국 국내 발행 신용카드 결제 또는 당좌수표 결제시 할인을 해주거나, 조금 더 온건하게는 그냥 현금이랑 미국 내 발행 카드들만 결제 가능하다고 하며 외국 발행 카드를 거부하는 가게들도 있다. 사실 어지간히 외국인한테 악감정 있는 게 아닌 이상에야 후자의 경우가 더 많다.[30] 이게 가능한 이유는 국제 카드결제망 가맹에 따른 수수료와 현찰 취급의 번거로움을 근거로, 자신들의 정당한 서비스 방침일 뿐 차별이 아니라고 주장할 수 있기 때문.

인종차별 할 놈은 어떻게든 합법적인 꼼수를 찾아서 차별하니 그런 가게는 그냥 가지 말자. 어차피 외국인 손님 받기 싫다는 곳 굳이 기어들어가서 좋은 꼴 못 본다. 가게 앞에 노 키즈 존을 써붙여놨는데도 아이를 꾸역꾸역 데리고 가는 것과 비슷하다. 꼭 가고 싶으면 아메리칸 익스프레스사 등 현지 카드사에서 발급하는 선불카드를 사든가, 온건하게 외국카드만 거부하는 가게면 현찰을 사용하면서 영어를 유창하게 하면 되긴 한다.[31] 어차피 똑같은 카드 결제망으로 긁히는 거라 가맹점에선 (모든 카드 디자인을 다 외울 정도로) 어지간히 철저하지 않은 이상에야 구분 못하기 때문. 그리고 그 정도로 악착같이 차별하는 곳은 그냥 안 가는게 정신건강에 이로울 것이다. 어차피 정상적인 다른 가게가 아주 많다.

2023년 무인 단말기, 키오스크, 드라이브 스루로 직접 주문하는 방식에도 팁을 요구하는 사례가 잇따라 소비자들이 불만을 터뜨리고 있다. 심지어 그 비율도 기본 20% 이상으로 증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