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불호 갈리는 선짓국 맛있게 끓이는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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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불호 갈리는 선짓국 맛있게 끓이는 방법


2018. 8. 22.

선짓국

선짓국. 혹은 선지해장국. 식당 등에선 선지국이라고 표기하는 경우도 많다.

동물의 피를 굳혀서 젤리같은 상태로 만든 '선지'가 주재료로 들어간다. 우거지로 만든 우거짓국을 기본으로 삼고 있으며, 해장할 때 애용된다.



선지 특유의 비린내 때문에 호불호가 상당히 갈리는 편이다. 후추를 치면 비린내가 많이 없어지기 때문에 냄새를 잡겠다고 후추를 많이 넣기도 하는데, 이러면 선짓국 고유의 맛이 약해지니 후추는 조금만 넣거나 넣지 말고 먹으면서 취향만큼 더 넣으면 된다. 또 비린내는 참아도 선지 특유의 미끌미끌한 식감 때문에 기피하는 사람들도 있다. 먹은 후 폭풍설사를 해서 못 먹는 사람도 있다.

그리고 냄새와 무관하게 피를 굳혀 만들었다는 점 때문에 싫어하는 사람들도 많다. 피를 먹는 음식인지라 야만스럽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외국에도 피를 가공해 만든 음식이 많이 있다. 유럽 여러 나라의 선지 소시지, 스웨덴의 피 푸딩이나 블랙 푸딩 등 다양한 종류가 있다. 그리고 핀란드에는 정말 선짓국과 비슷하게 생긴 스프가 있는데, 이 스프에는 선지를 직접 넣지 않고 만두피 비슷한 반죽으로 한번 싼 후에 넣는다고 한다. 시베리아 사람들은 아예 순록의 피를 생으로 마신다. 순록의 피는 시베리아 사람들에게 철분을 보충해주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알다시피 동물의 피 속 적혈구에는 철(Fe)성분이 들어 있다.

호불호를 떠나서, 피를 먹지 않는 여호와의 증인은 이 음식을 금기시한다고 한다. 이슬람교에서도 피를 먹는 행위를 금지하기 때문에 선짓국도 하람(금지된 것)이다.


재료

포유 동물의 피를 받아 한동안 두면 맑은 혈청과 응고되어 가라앉은 혈병으로 나뉘는데, 선지는 그 혈병을 먹는 것이다. 생 선지의 색깔은 카마인과 스칼렛의 중간 정도인 새빨간 색이며, 물에 넣어도 풀어지지 않는다. 선지에는 철분과 칼륨이 상당량 포함되어 있어 해장과 빈혈, 근육 경련, 심장의 비정상적인 두근거림, 생리나 헌혈 뒤에 효과적이다. 한마디로 삼계탕을 능가하는 보양식이다. 선짓국 외에도 선지국밥, 선지국수 등 다양한 변형이 존재한다. 선지에는 생선지와 냉동선지 두 가지가 있는데, 부산과 밀양을 제외한 전국의 선짓국 파는 식당 대부분이 후자를 취급한다. 냉동선지는 앞서 말했듯이 피를 굳혀 만들기 때문에 냉동이라고 할지라도 산화되어 맛과 씹는 촉감이 떨어질뿐더러 피가 응고될 때 생기는 특유의 비린내도 심해진다. 부산에서 생선지를 취급하는 식당은 부전시장, 구포시장, 감전시장 등에 있고, 구포시장 선짓국 식당들은 2~3대를 이어 하기 때문에 그날 바로 잡은 생선지를 취급한다. 

참고로 선지는 소의 부산물 중 원가가 상당히 싼 편에 속하며, 그런 이유에서인지 곱창집이나 소고기 구이집에 가면 서비스로 선짓국을 작은 뚝배기나 국그릇에 담아 주는 경우가 종종 있다. 시골에 가면 2~3천원에 한 그릇을 파는 곳도 꽤 많다. 대신 양의 피를 쓴 선지로 만들 때도 있는데, 소 선짓국보다 싸다. 

순대에 들어가는 것도 생 피 상태가 아니고, 선지를 갈아 넣는 것이다. 케이싱은 돼지 창자이지만, 소 선지를 많이 쓴다. (돼지 선지로 해도 상관은 없지만, 소 선지도 싼데 돼지 선지를 쓸 이유가 없다.) 

기타

해장을 선짓국으로 하는 사람들을 위한 팁이 하나 있다. 단골집에 가거나 다수의 사람들과 함께 해장국집에 갔을 때 선지를 따로 줄 수 없냐고 물어보면 일정 확률로 사장님께서 선지를 제공하신다. 물론 여러 사람들과 함께 있어서 가게 매출에 적당히 도움이 된다든가 사장님과 친분이 있을 때만 유효한 방법이니 아무 집에나 들어가서 선지를 달라고 하는 것은 민폐이다.


선지 자체가 액체인 피를 굳혀서 만든 것이다보니 급하게 온도를 높이면 내부에 기포가 생겨 벌집처럼 구멍이 숭숭 뚫린 보기 흉한 모습이 된다. 제대로 익히려면 천천히 익혀야 하는데, 이렇게 공들여서 익힌 선지는 단면을 잘라도 구멍이 거의 보이지 않으며 급하게 익힌 것보다 훨씬 부드럽다고 한다. 그 차이는 달걀찜과 비슷하다. 잘 끓인 좋은 선지는 겉은 붉은 기가 도는 갈색이고 잘라 보면 살짝 녹색이 도는 적회색이며, 부스러지지 않고 날카롭게 잘라지며 찰기가 있고 쇳내 같은 특유의 향이 있다.

집에서 끓일 때는 되도록 큰 솥에, 물도 많이 넣고 끓여야 온도가 서서히 올라 선지가 부드럽고 구멍이 적다. 선지해장국 전문점의 선지가 맛있는 건 다 이유가 있는 것이다. 끓일 때 나는 비릿한 냄새라든지 신선한 생 선지 구입의 어려움, 큰 솥에 많이 끓여야 한다는 등 난점이 많아 사실 가정에서 만들어 먹기에 적당한 음식은 아니다. 식구가 많다면 모를까, 해장국집이나 재래시장 반찬/국 파는 가게에서 사다 먹는 게 낫다.

차나 감처럼, 탄닌을 함유한 음식을 같이 먹으면 선지 안의 철분이 탄닌과 결합하여 '탄닌산철'이라는 소화 불가능한 화합물로 변화하기 때문에 철분 흡수에 좋지 않다. 인산이 들어간 음식과 우유 계통 음식을 같이 먹으면 안 되는 것과 비슷한 이유이다.

참고로 이름을 '선지국'으로 알고 있는 사람이 많은데, 국립국어원의 표준국어대사전에 따르면 선짓국이 올바른 표준어다. 선지+국의 형태라 사이시옷이 들어가야 하기 때문이다.

일단 피를 먹는 것이기 때문에 선짓국을 먹은 다음날 볼일을 보면 검은 변이 나온다. 장출혈이 아니니 오해하지 말자. 건강검진 받기 며칠 전에는 먹지 않아야 한다.


선지국밥, 혹은 선지해장국이라고 알려진 음식은 사골 베이스에 우거지, 콩나물 등을 함께 넣고 고추기름 등을 넣어 얼큰하게 끓이는 것이 전국적으로 널리 퍼진 방법이지만 호남 등 일부 지역에서는 뭇국을 베이스로 하여 쇠고기를 약간 넣고 만든 맑은 선짓국을 먹기도 한다. 다만 이런 지역에서도 해장국으로는 위의 사골베이스 선지국을 먹으며 맑은 선짓국은 가정식으로 해먹거나 일부 쇠고기 전문 고깃집에서 된장찌개 대신 곁들이 국물로 나오는 정도라서 선지해장국처럼 메이저하다고 보기는 어렵다. 맑게 끓이다보니 선지의 비린내가 더 도드라지기 쉬워 선지의 신선도가 매우 중요하기 때문에 신선한 선지의 수급이 맛을 좌우하는 관건이라고 한다. 깔끔하고 시원한 맛이 있어 좋아하는 사람은 선지해장국보다 맑은 선짓국 쪽을 선호하기도 한다. 청양고추를 썰어넣어 칼칼한 맛을 더하기도 한다. 그밖에 체인점으로 전국에서 꽤 볼 수 있는 양평해장국도 소 내장과 선지를 넣고 고추기름으로 얼큰하게 끓인 일종의 선짓국.

서울 종로 청진동의 역사 깊다는 선지 해장국 전문점에서 선짓국을 달라고 하면 파 외엔 아무 것도 안 들어가고 맑은 국물에 덜렁 선지만 들어 있는 것을 준다. 위에 얘기한 보드랍고 탄력있으며 녹색이 돈다는 잘 끓인 신선한 선지의 질감이 바로 그것인데, 그쪽 몇몇 가게만큼 선지의 제맛이 나도록 잘 끓인 선짓국을 찾는 건 쉽지 않다. 

놀랍게도 대전 역전시장에 가면 선지 국밥을 단 1000원(大자는 1500원)에 맛볼 수 있다. 불경기에도 불구하고 서민의 배고픔을 달래주기 위해 20년 넘게 그 가격을 유지해왔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