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스 한국 내한 공연때 깜짝놀란 사연
본문 바로가기

나스 한국 내한 공연때 깜짝놀란 사연


2017. 10. 9.

I never sleep, cuz sleep is cousin of death
난 잠을 자지 않아, 잠은 죽음의 사촌이니까.
- Illmatic의 수록곡 N.Y. State of Mind 中

나스
나스는 뉴욕 롱아일랜드 출신의 래퍼이다. 1973년 9월 14일생. 본명은 나시르 빈 올루 다라 존스.
이전 예명은 내스티 나스(Nasty Nas)였으나 후에 자신의 본명 바로 앞에 있는 Nasir에서 Nas를 떼내서 랩 네임이 나스가 되었고 이게 지금까지 유지되어 왔다. 한 때는"King Of New York", "God's Son" 이란 호칭으로도 불렸으며 별칭으로 "Nasty Nas / Nas Escobar"라고도 불린다.

이스트 코스트에 뿌리를 두고 있으며, 거리의 삶을 묘사하는 것에 매우 뛰어나다. Thug poet으로 불린다. 흔히 생각하기 쉬운 뉴욕의 화려한 모습이 아닌 그 이면에 있는 거칠고 삭막한 거리를 풍부한 메타포로 정확하고 세심하게 표현하여 그는 힙합의 역사에 한 페이지를 장식하는 래퍼이자 전설로 등극할 수 있었다.

Illmatic 이전

그는 인종 차별이 극심하기로 유명한 미시시피 주 나체스 출신 뮤지션 올루 다라 존스가 32세에 본 첫 자식으로, 올루 다라의 아버지 역시 뮤지션으로 올루 다라의 대부와 함께 Mellowderes라는 그룹을 결성하고 미국 전역에서 연주를 하였다. 나스는 이런 음악가 집안의 혈통을 이어받는다. 4년간의 해군 복무를 마친 올루 다라는 뉴욕 시에 정착하고 나스의 어머니 앤 존스를 만나 나시르 존스와 자바리 존스 두 아들을 보게 된다. 가난한 뮤지션이었던 올루 다라는 유럽을 오가며 돈을 벌었고 남은 가족들은 나스가 성장한 퀸스브릿지로 이사하게 된다.

나스는 자신이 사는 그 동네가 불우한 환경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고 조숙한 아이로 자라났다. 하지만 그러한 환경과 넉넉지 못한 수입에도 존스 부부는 아이들을 올바르게 키우기 위해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올루 다라는 음악을 연주하며 세계를 떠돌아다닌 이야기들을 들려주었고 책장을 만들어 그곳에 다양한 인문 서적을 꽂아넣었으며, 앤은 좋은 카펫을 깔고 불우한 환경에서 뭔가를 얻기 위해 훔치는 행위보다는 차라리 사주는 쪽을 선택했다. 나스와 자바리는 뮤지션 집안 혈통답게 어린시절 해외공연을 떠난 아버지의 빈 자리를 그가 남겨놓은 악기로 대신하였다. 어린 나이에 트럼펫을 부는 것이 입술을 망가뜨린다고 못 불게 하였고 7세가 되자 다시 불어보라고 했는데 나스는 다른 곳에 흥미를 느꼈다.


부모의 노력 아래서, 나쁜 길로 빠지는 대신 예술가 집안 혈통답게 어린 시절부터 가사를 만들어왔고 자바리 존스와 나시르의 친구, Ill Will이라 부르는 윌리엄 그레이엄 과 함께 음악으로 성장하게 되지만, 마약의 광기가 퀸스를 덮치고 단지 불우하던 환경은 목숨이 위태로운 험악한 환경으로 변모하게 된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어린 나스의 가정은 더욱 힘들어지고 나쁜 길로 인한 건 아니었지만 올루 다라는 더이상 가족들과 함께 살아가지 못하게 되며 앤은 자신의 아이들을 더욱 굳건하고 강하게 키워나간다. 비록 함께 살진 못했지만 올루 다라는 그의 자식들을 내버려두지 않았는데, 하루는 자식들이 다니던 학교를 보고 미국의 공교육 현실 속에서, 그것도 할렘가 흑인 아이들이 이러한 교육 시스템에서 자라난다면 안 가느니만 못하다고 생각하고 두 아이 모두 학교를 그만 다니는 대신 하고 싶은 것을 하게 한다. 그리고 나스가 선택한 것은 음악이었다.

어느날 Def Flesh Crew의 멤버였던 록샌 샨테는 퀸스의 아파트에서 랩을 하고 있는 나스를 발견하고 그 비범한 꼬마를 퀸스 파크에서 열리는 공연에 함께 할 것을 권유했다. 그러나 그 재능에도 아직 햇병아리였던 나스는 아직 수많은 사람들의 주목을 감당할 수 없었고 크게 위축되어 랩 다운 랩을 하지 못했다. 하지만 좌절에도 불구하고 뉴욕을 기반으로 하는 MC Shan, South Bronx, Boogie Down Productions 사이에서 일어난 퀸스브릿지 디스전 등을 들으며 한가지 사실을 깨닫는다. 

"난 내 분노를 억누르던가, 아니면 그 분노를 다른 무언가로 만들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지. 그리고 뭔가를 만들어내는 쪽이 훨씬 가치 있었고." - Nas, 전기 영화 Time Is Illmatic 中

절친이었던 Ill Will의 죽음이 그를 냉소적으로 바꿔놓았고, 나스는 더이상 햇병아리가 아니었다. 그가 참여한 Main Source의 곡 Live At the Barbeque에서의 피처링과 MC Serch의 데뷔앨범 수록곡 Back To the Grill에서의 피처링을 통해 내제된 사회적 분노를 음악으로 만들어내며 이제까지 없던 엄청난 핵펀치라인을 선보이며 세간의 주목을 받기 시작하였고, 컬럼비아 레코드의 페이스 뉴먼은 나스와 계약을 하게 된다.

Illmatic, 그리고 그 이후

1994년 4월 발매한 정규 1집앨범 Illmatic은 대중적인 인기를 얻지는 못하였으나, 동부힙합계의 거장(DJ 프리미어, Q-팁, 라지 프로페서, 피트 록)들의 대거참여+나스 본인의 실력이 합쳐지면서 우탱 클랜의 'Enter the Wu-tang : 36chambers'와 함께 동부힙합의 바이블로 취급되는 등, 음악적인 면에서는 아직도 굉장히 높은 평가를 받고있다. 소스지에서 마이크 5개를 받으며, 판매성적과는 상관없이 음악적인 면에서만은 동부 최고의 음반이라 할 수있다. 특히 네번째 싱글 곡인 'The World Is Yours'는 Jay-Z의 불후의 명곡 'Dead Presidents'에 샘플링되었다.

다만 1집 앨범 Illmatic의 완성도가 너무나 뛰어난 탓에, 앨범을 내는 족족 1집과 비교당하며, 그것을 뛰어넘지 못한다는 평을 듣는다. 눈물나는 소포모어 징크스다. 
(하지만5집 Stillmatic은 Illmatic 이후로 상업적으로 변했다는 나스를 다시 한 번 정점에 올려놓는 앨범이되었다.)


랩을 하는 실력만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흑인 빈민들의 삶을 능수능란하게 가사로 풀어내는 한편, 기본에 충실한 스킬로 듣는 이의 뇌를 자극한다. 반면에 비트를 고르는 안목은 별로이지만서도..... 6집앨범 수록곡이자 나스의 가장 대중적인 음악인 <I can>에서도 이러한 그의 성향이 강하게 나타난다.

같은 동부 뮤지션인 Jay-Z와는 몇년동안 서로 디스하며 지내던 사이. 총격전이나 린치같은 무력적 충돌없이 음악적 충돌만 있었기에, 성공한 디스라고도 한다. 둘이서 서로 앨범 팔아먹기 위해 짜고 친 고스톱이라는 음모론까지 있을 정도. 결국 2005년 11월. 손을 맞잡으며 화해를 하였다.

또한 2010년 5월 데미안 말리와 콜라보레이션 앨범인 'Distant Relatives'를 발표. 이 앨범은 현재 레게와 힙합의 조화. 나아가 새로운 장르의 형성이라고까지 호평받고 있다.

2005년 R&B 가수인 켈리스와 결혼하였으나, 2010년 이혼하였다. 이혼은 2012년 7월 발매한 'Life Is Good' 앨범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앨범 자켓에 무릎 위에 얹은 드레스도 실제 결혼식 때 켈리스가 입었던 웨딩드레스. 첫 트랙 'No Introduction', 후반 트랙인 'Bye Baby'에 켈리스와의 이혼과 관련된 나스의 감정이 잘 묻어나 있다. 앨범 평은 Illmatic이후로 최고의 앨범이라고 할 정도로 호평을 받았다. 

2013년 7월, 하버드 대학교의 힙합 기록 및 연구소에서 나스의 업적에 대한 경의를 담아 '나시르 존스 힙합 펠로우십'을 만들었다고 한다. 힙합과 관련된 예술 분야를 공부하는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지원한다고.

2008년에 내한 공연을 가질 계획이었지만 무산된 바 있으며, 2013년 8월 지산 월드락페스티벌에서 처음으로내한 공연을 가졌다. 비영어권인 국가에서 진행한 공연임에도 불구하고 관객들이 represent 후렴구를 연호한다던지, N.Y. state of mind의 'I never sleep, cuz sleep is cousin of death' 부분을 같이 따라부르는 등의 관람객들이 자기 노래를 알고있는 모습에 깜짝 놀랐다고 한다. 나스 본인도 N.Y. state of mind의 N.Y. state of mind 부분을 Seoul state of mind로 개사해서 부르는 등 센스가 돋보이는 호응을 해주었다.

2014년 나스의 데뷔작 Illmatic에 관한 이야기를 담은 다큐멘터리 필름인 'Time Is Illmatic'이 개봉되었다. 외국에서조차 당일치기 개봉 후 온라인으로 구입하여 볼 수 있는 형식을 취했기에 국내 상영 여부가 불투명했으나 국내에서도 2015년 2월 7일부터 9일까지 일시적으로 개봉했다. 이후에도 몇몇 소규모 영화제에서 상영하기도 한다.

기타
dctribe와 DC 힙갤 등 블랙뮤직 커뮤니티에선 착착 달라붙는 어감으로 인해 '나스 이 개새끼'가 하나의 유행어로 자리잡고 있다.


내한한적이 있는데, 2013년 지산 월드 록 페스티벌 서브 스테이지 헤드라이너였다. 많은 해외 뮤지션들이 첫 내한공연을 할 때 반응처럼 큰 기대 없이 처음 온 곳에서 의외의 열광적 반응에 놀랐는지 상당히 만족한 모양.

피타입이 쇼미더머니4 2차 예선에서 nas is like 비트에 랩을 했지만 가사를 절며 탈락했다.

피타입이 시즌 6에서 같은 비트로 2차 예선을 통과한다.


Nas의 앨범 중 명반이라 평가받는 앨범들은 Illmatic, It Was Written, Stillmatic, The Lost Tapes, Distant Relatives, Life Is Good 정도가 되며, 좋은 앨범이라 평가받는 앨범은, I AM..., God's Son, Street's Discple, HipHop Is Dead, Untitled이고, 나쁜 평을 받는 것은 Nastradamus이다. 국내에서의 인지도는 상당히 낮은 편으로, 최고의 라이벌이자 양대산맥으로 군림했던 JAY Z는 국내에서도 유명하지만 나스는 마니아층에게만 사랑받고있다.

상당히 동안이다. 40대 중년임에도 얼굴이 리즈시절이랑 차이가 나질 않는다.

비트를 더럽게 못고른다. 농담이 아니라 팬들 사이에서도 까이는 부분이다.

2016년 여름, Dj Khaled의 "Major Key" 라는 앨범의 "Nas Album Done"(제목부터 나스 앨범 완성됨 ㄷㄷ)이란 노래에 피쳐링을 하면서, "My Album Done N*ggas, Wait And See"(내 앨범 완성됐어, 자식들아. 닥치고 기다려)라는 멋있는 구절을 뱉었는데, 아직까지 앨범은 안나오고있다. 현재 본인의 레이블인 Def Jam과의 계약이 끝날때, 앨범을 낸다는 소문이다.

나스에 대한 말말말

Nas made you look before the heaters
나스는 총을 쏘기도 전에 니 시선을 끌었지
What do it take to be a legend like Nas is
나스같은 전설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DJ Premier - Classic에서 각각 라킴과 칸예 웨스트의 벌스

Long live the idols, may they never be your rivals
Pac was like Jesus, Nas wrote the bible
우상들이여, 영원하길. 또 그들이 내 라이벌이 되지 않길.
팍은 예수였고, 나스는 성경을 써냈지.
제이콜 - Let Nas Down 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