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역대 국왕들이 먹던 건강보양식 '타락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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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역대 국왕들이 먹던 건강보양식 '타락죽'


2017. 8. 23.

타락죽
몽골에서 들어온 요리로 우유와 찹쌀을 함께 끓여서 만든 죽이다. '말린 우유'라는 뜻의 몽골어 '토라크'를 음차하여 타락(駝酪)으로 불렀다고 한다. 그러니까 낙타 타(駝)라는 글자가 들어갔다고 해서 낙타 젖으로 끓인 것도 아니다. 원나라 시기에는 실제로 낙타젖으로 만든 죽이 존재했지만, 타락죽은 원나라에서는 제호(醍醐), 명나라에서는 수락(酥酪)이라고 불린 유제품과 같은 계통이다.

만드는 법은 매우 간단하다. 우유와 쌀가루의 비율을 5:4로 하여 넣고, 덩어리지지 않게 잘 풀면서 끓여내면 끝이다.



맛은 부드러운 찹쌀에서 은근히 느껴지는 단맛과 우유의 고소한 맛. 하여튼 생각보다 오묘한 맛이라고 한다. 소금을 넣으면 보양죽 같은 느낌이, 설탕을 넣으면 터키 쌀푸딩 같은 맛이 난다고 한다. 그 외 자색 고구마로 타락죽을 만들면 훨씬 달다고 한다. 

고구마나 호박을 타락죽에 섞어 먹기도 하며, 이때는 넣은것이 무언가에 따라 죽의 색이 달라진다. 자색고구마 같은 경우는 말 그대로 자주색이다. 무한도전의 식객 특집에서도 길이 호박 타락죽 만드는법을 전수받아 방송에서 선보이기도 했다. 참고로 바로 이전 특집에서 담배맛 아귀찜을 선보였던 길이 직접 잘 만들 정도로 만드는것 자체는 굉장히 간편하다.

역사

우유가 매우 귀한 시대였기 때문에 국왕에게도 타락죽은 일상식이 아니라 보양식이었고, 요리사가 아니라 의원이 처방의 일종으로 만드는 음식이었다. 임금이 기분좋을 때면 신하들에게 한 숟갈 먹어 보라고 하사하는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이렇게 타락죽은 국왕이 먹는 귀한 음식이었기 때문에, 아무나 먹을수 없었다고 한다. 이런 이유로, 국왕이 궁녀와 하룻밤을 같이 보내고, 부부의 연을 맺는 사이를 "분락지간"이라고 불렀는데, 국왕만 먹을 수 있었던 귀한 타락죽을 같이 나눠먹었다는 뜻에서 나온 말이다. 분락지간(分駱之間). 나눌 분(分), 낙타 락(駱)으로 읽는다.


국왕 이외에는 대비, 세자, 중전 정도가 타락죽을 먹을 수 있었다.

우유가 귀한 이유는 조선시대까지 소의 젖을 짜는 행위가 인도적으로도, 경제적으로도 부적합 하다고 여겨졌기 때문. 당시에는 우유 생산을 목적으로 개량된 소가 전혀 없었기 때문에 우유를 생산하려면 소가 출산한 직후 젖이 나올때 짜야 했다. 이러면 자연히 송아지가 먹을 건 줄어들기에 '어린 송아지가 먹어야 할 젖을 사람이 훔쳐먹는 것은 도리가 아니다'라는 인도적인 이유로 유생들이 반대했다고 한다. 또한 송아지가 이로 인해 충분한 영양을 공급받지 못하면 성장이 더뎌져서 일을 제대로 못하게 되므로 경제적으로도 손해였다.

그래서 당시에는 관청에서 따로 우유를 관리할 정도였다. 고려시대부터 '유우소'라는 관청이 있었고조선시대에도 '타락색'이라고 해서 우유만 관리하는 관청이 따로 있었다. 서울 낙산에는 왕실 전용 목장도 있었다.
우유를 짜는 내의원 의관들을 그린 그림. 왼쪽을 보면 송아지를 어미소와 떼어내어 붙잡아두고 있는 것이 보인다.

여담

정사 삼국지의 기록에는 후한의 승상 조조가 자신의 참모들과 장수들을 자신의 집으로 초대하여 타락죽을 대접하며 한 그릇씩 나눠주는 모습이 기록되었다. 그리고 타락죽이 어찌나 맛있던지 조조는 황궁으로 가서 헌제를 알현하며 황제에게 직접 타락죽을 바치기도 했다. 물론 조선시대의 타락죽과는 재료도 다르고 맛도 다르겠지만 어쩌면 이것이 타락죽의 원조일지도? 다만, 이건 요구르트나 치즈라는 이야기도 있다.

현대 사회에서는 접하기 굉장히 쉬워졌다. 조선시대에 비하면 우유 구하기가 너무 쉽고, 찹쌀가루도 마트 곡물 코너 가면 미리 빻아놓은 거 판다. 거기다 조리법도 워낙 간단하다보니 쉽게 요리해 먹을 수 있다. 한때 통조림 형태의 즉석 식품으로도 나와있었으나 단종되었다.


허영만의 만화 식객에서 나오면서 더 대중적으로 알려졌다. 단행본 12권 '완벽한 음식' 편에서 등장한 입맛이 상당히 까다로운 미국인 미식가 케빈에게 성찬이 직접 대접한 음식이다.

불교의 석가모니와 관련된 음식이기도 하다. 처음에 고행을 하면서 단식을 했는데, 도저히 깨달음을 얻을 수 없다고 느낀 석가모니가 고행을 그만두고 지친 몸을 이끌어 목욕을 한 뒤 난다바라라는 여인이 우유로 만든 죽을 공양하여 이를 먹고 힘을 차렸다고 한다. 당시 단식이야말로 고행의 기본이라 여겼기에, 같이 수행하던 다섯 고행자들은 모두 석가모니를 비난하고 그가 타락했다고 그 곁을 떠났다. 하지만 석가모니는 부처가 되고 나서 이들을 첫 제자로 삼았다.
이 우유죽을 불교에서는 우유와 쌀로 만든 죽이라고 유미죽(乳米粥)이라고 부르는데, 타락죽과 이름만 다를 뿐 거의 비슷하다. 불교계에서는 쌀과 우유만이 아니라 연근이나 다른 곡식을 갈아 좀 더 영양이 풍부하게 만들어 먹곤 한다. 그리고 이 영향 때문인지 불교 중 채식주의를 엄격하게 지키는 종파에서도 우유, 치즈와 같은 유제품은 대부분 허용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