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영남 대작 사건
본문 바로가기

조영남 대작 사건


2017. 7. 7.

가수 조영남이 다른 무명 화가를 고용해 대리제작 하게 하고 적은 돈만 준 사건으로 미술계와 대중, 고전미술계와 현대미술계의 인식 차이를 드러내는 계기가 된 사건.

조영남은 60년대말부터 미술 작업을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60년대말에는 주로 유화를 그렸으나, 70, 80년대에는 화투, 소쿠리, 노끈 등의 입체적 오브제를 콜라주한 작업을 했다. 1973년 첫 개인전을 가진 조영남은 수십회 개인전을 치뤘고, 2011년에는 무릎팍도사에 출연해 자신의 작품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조영남은 미국에서 대작 작가인 송기창씨를 만났다고 한다. 당시 송기창씨는 어렵게 유학생활을 하고 있었고, 귀국 후에도 사정은 나아지지 않았다고 한다. 이때부터 조영남은 송기창씨에게 작업을 맡기기 시작했다고 한다. 

송기창씨는 재정적 사정이 좋지 않아 조영남에게 그림을 그려서 팔았지만 재능갈취에 가까운 대우와 금전적 댓가를 받고는 더 이상 조영남을 위해 그림을 그리기 싫어 연락을 끊고 도망간 적도 있었다. 하지만 조영남은 다른 일반 학생이 그린 그림으로는 그림이 팔리질 않으니 송기창씨에게 전화해 다시 그림을 그려 달라고 졸라 댔다고 한다.

검찰은 대작 화가는 총 두 명이고, 모두 전문 화가이며 조영남에게 그림을 어떤 식으로 그리라는 지시를 받은 적이 없다는 사실로 미루어 조수가 아닌 것으로 판단했다.


2016년 5월 16일 조영남 자신이 그렸다고 발표한 작품중 200점 이상이 다른 무명화가가 대부분을 그리고 조영남이 사인 정도만 넣은 대작이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검찰은 조영남의 그림이 거래된 갤러리와 소속사 압수수색에 들어갔다.

조영남 측 주장

조영남은 이에 대해 미술계의 관행이다라는 주장을 하였다.
12월 21일 공판에서 조영남은 "제가 직접 마지막 (붓)터치를 했고 사인을 했기 때문에 제 작품"이라며 무죄를 주장했다. 그는 "일부 그림을 그리는데 초안에 도움을 받았다고 해서 사는 사람에게 일일이 고지할 의무는 없다"며 "예술의 자유를 국가 형벌권으로 제한할 것인지 면밀히 판단해달라"며 무죄를 주장했다. 피고인 신문에서 조영남은 "팝아트에서는 아이디어나 개념을 중시한다. 화투를 그리는 것을 팝아트로 보고 저 스스로 팝아티스트라고 한 것"이라며 "제가 (송씨에게) 화투를 그리라고 한 것이니까 당연히 제 작품이 맞다"고 밝혔다.

대리 작가 측 주장

조영남 대작 화가인 송기창씨는 조영남이 작품을 팔 줄 몰랐다고 말했다.

송화백의 인터뷰에 따르면, "그림을 다 그려놓으면 조영남은 그 그림 위에 그냥 싸인만 하면 뭐하니까, 집에서 텔레비전이나 보면서 그 위에 깔짝깔짝 그린 후, 자기 손이 갔으니까 자기 그림이라고 하는" 것이었다.

그림 가격에 대해서는 갈취 혹은 동네 조폭 수준으로, 가격은 조영남이 정하고 크기에 상관없이 한 점당 10만원씩 주다가 어느 날은 그림 17점에 대해서 150만원(20만원 깎아서) 주기도 했다.


그림 가격에 대한 것은 말도 못 꺼내게 한다고 한다. 어느 정도냐면 "택시운전사가 요즘 얼마 받는 줄 아냐"면서 "까분다고" 송화백에게 뭘 던지려고 하기까지 했다고 한다.

말 그대로 불공정거래 및 재능갈취.

구매자 측 주장

사건이 커지기 전에는 구매자들의 반응이 거의 없었다. 그러나 사건이 점점 조명 받자 일부 구매자들이 나서 이번 사건에 대해 조영남의 처벌을 원하다고 밝혔다.

미술계 특유의 구두거래 방식상 갤러리 말고는 거래내역이 남아있지도 않는데다가 사건 조사 중에 조영남이 그림을 환불해주기도 해서 검찰이 구매자 파악에 애를 먹고 있다.

검찰 측 주장

타인의 그림들을 큰 액수의 돈으로 판매한 사실이 밝혀졌으므로 검찰 측은 이번 사건에 사기죄를 적용하겠다고 밝혔다.

2016년 12월 21일서울중앙지법 형사18단독 오윤경 판사 심리로 열린 조씨의 사기 혐의에 대한 결심공판에서 검찰은 "조영남에게 (사기의) 기망행위가 있었다"며 징역 1년6개월을 구형했다. 검찰은 "조씨의 직업적 특성이나 그림 거래에 있어 가장 중요하게 판단해야 할 사는 사람의 의도를 고려했을 때 기만행위가 있었다"며 "그림을 판매할 때 편취 의도도 있었다고 판단한다"고 주장했다.


예술계 측 주장

우리는 협업과 대작을 구분하기 위해 해당 예술의 사조,경향 그리고 작품규모를 고려해야 할 필요가 있다. 대체로 고전미술, 서양화, 동양화, 추상화를 하는 쪽에서는 혼자 작업하는 경우가 많은 반면 팝아트, 개념미술, 미니멀리즘, 건축, 설치미술 분야는 특성상 협업을 하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미켈란젤로나 루벤스 같은 작가들이 조수들과 함께 작업한 것을 도제관계로 보지 대리제작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유화를 한 점 그리는데 물감이 마르고 다시 덧칠하는 과정이 필수였으므로 완성하는데 최소 몇개월 이상 걸리는 경우가 많았다. 게다가 튜브물감이 나오기 전에는 예술가들이 스스로 물감을 만들어 써야 했다. 이런 과정에서 도제 시스템이 적용됐는데, 가내 수공업 내지는 공장제 수공업처럼 어떤 제자는 물감만 빻고, 어떤 제자는 물감만 개고, 어떤 제자는 배경 색깔만 칠하는 식으로 분업이 이루어진 것이다. 당시에는 이 과정 자체가 하나의 수련 과정으로 여겨졌다. 스승인 화가가 하는 것은 작품의 뼈대가 되는 스케치를 잡아주고 세세한 지시를 내리고 마무리 과정에서 잘못된 부분을 매만지는 것이었다. 대신 스승인 화가는 작품값을 판 돈으로 제자들을 어느 정도 먹여 살려줘야 했다. 이유는 제자들과 함께 생활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동양화에서는 작가 혼자 그림을 그리는 경우가 더 많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는 어디까지나 남종화 문인 계열에 한정되며, 규모가 큰 동궐도 같은 그림은 당연히 화원들이 협동해 그렸다. 홍세섭 같은 화가는 그림이 인기가 많아서 아버지와 같이 그렸다는 기록도 있다.

물론 이렇게 협업자나 제자 등을 두지 않고 혼자 그리는 작가도 있었다. 그러나 그런 경우는 보통 
1) 혼자 생활하기 원하거나
2) 가난하거나, 또는 
3) 유명하지 않아서 제자를 둘 형편이 안되는 경우였다. 


첫번째의 일부에 해당하는 경우를 빼면 대부분은 조수를 안두는게 아니라 못두는 거다. 렘브란트의 경우 말년에 생활고와 심리적 고통에 빠져 혼자 생활한 경우이고, 고흐의 경우는 집에서 아버지가 돈을 부쳐주지 않아서 가난했고 무명 작가였기에 혼자 그린 것이다. 웬만큼 능력있는 예술가라면 다 제자를 두고 그렸다 보는게 맞다. 이것은 현대미술계도 마찬가지이다.

대중들이 통상 화가, 예술가하면 생각하는 것은 앞서 설명한 르네상스 미술의 작업방식을 떠올리는데, 근대 이후의 예술은 예술가가 오직 본인의 눈과 손만을 가지고 작업하는 것을 뜻하지 않는다. 오직 눈과 손으로만 작업한다는 것은 이미 근대 이후로 사라진, 매우 구시대적인 발상이다. 예를 들어, 어떤 예술가들은 카메라 옵스큐라나 카메라 루시다 같은 광학 도구를 이용해 그림을 그리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도구나 다른 매체를 작업에 사용하는 것은 조영남으로 인해 이슈가 된 '대작'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당연시 되고 있는 예술가의 독창적인 아트 프로세스에 불과하다.

현대예술가 데미안 허스트는 100명 이상의 작가를 두고 작업하는 것으로 유명하고, 일본 미술가 무라카미 다카시는 아예 카이카이 키키(Kaikai Kiki) 라는 유한회사를 차려 스태프들과 같이 일하고 있다.

조영남 대작혐의의 경우, 조영남은 본인의 대작 사실을 '예술계 관행'이라는 주장을 했지만 조영남이 저지른 것은 '예술계 관행'인 조수 등이 돕는 도제관계 혹은 현대예술의 협업 등의 단어들로 미화할 수 없는 형태이다. 

도제 관계가 아닌 이유는, 조영남과 해당 대리 작가 사이에는 무언가를 어떻게 표현하라는 가르침이나 개념적인 지시도 없었고 심지어 조영남은 이미 완성된 그림에 거의 손도 대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림으로서는 송기창 작가가 조영남보다 월등히 뛰어나다. 송기창 작가는 뉴욕의 필라디에스 갤러리 멤버였고 그 곳은 한 작가의 그림을 놓고 30-40명이 거수를 진행한 뒤 80%이상이 찬성해야 들어갈 수 있는 권위있는 곳이다. 이들은 실력에서 조차 도저히 도제 관계라고 칭할 수 없는 것이다.


협업(Collaboration)이 아닌 이유는 해당 작업의 장르(회화, Painting)와 규모를 고려할 때, 이것이 두 사람의 협업이라고 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또한 조영남이 타 장르의 작가들처럼 협업자가 있다는 것을 명시하고 판매한 게 아닌 것이 밝혀진 이상, 이것은 절대 협업이 될 수 없다.
또한 만일 조영남이 협업자의 유무를 그림 구매자들에게 미리 밝혔더라도 대작 작가가 조영남의 협업자로 보기는 어렵다. 그 이유는 오히려 조영남이 대작 작가의 조수 정도로 취급되어야 할 정도로 대작 작가의 예술적 수준과 작품에 대한 기여도는 조영남에 비해 월등하기 때문이다. 덧붙여 대작 작가의 작업물에 대한 대가 또한 터무니 없는 것도 한 요인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도제관계나 현대예술의 협업방식을 끌어다 자신의 사기행각을 포장하려고 한 조영남의 주장은 논리에 맞지 않는다.

진중권은 예술계에 조수 등이 작업을 돕는 관행이 있는 것을 인정했다. 하지만 현대예술에서는 이러한 도제 및 협업 시스템은 대작으로 간주되지도, 문제 시 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근대 이후, 예술작품에서 중요한 것은 기계적인 제작과정 보다는 개념이 중요하다고 여겨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동연은 '“현대미술의 관행” 운운하는 해명은 대중들에게는 잘난 체하는 ‘엘리트주의’로 힐난의 대상이 된다.'고 비난했다. 신제남 한국전업미술가협회 이사장도 “미술계의 관행이라는 주장은 사기 행위를 피하려는 목적으로 지어낸 말”이라며 “대작이 관행이라면 그같은 작품이나 화가의 명단을 구체적 증거로 제시하라"고 요구했다. 신제남은 11개 미술단체의 성명을 모아 고소장을 제출했다.고소장 전문 나아가 신제남 이사장은 진중권 교수가 말한 부분에 대해서도 고소장에 관련 내용을 적고 법적 조치할 것이라 밝혔다.


조영남이 대작 작가에게 돈을 너무 적게 지불했다는 점에서는 예술가들 사이에서도 이견이 없는 상태이다. 참고로 조영남의 이름으로 팔린 그림들은 평균적으로 한 점에 약 800만원 정도의 가격이 매겨졌다.

대중의 반응

대중의 반응은 싸늘하기 그지 없다. 안 그대로 그동안 온갖 추태에 밉상이라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이번 사건으로 제대로 미운털이 박힐거라 보는 사람들이 대다수. 안그래도 논란이 많은데 검찰 조사 당일에 장애인 전용 구역에 주차한 것으로 인해 이제는 제정신이 아니다라는 반응이 나오고 있다.

조영남이라는 인물에 대한 평가에서는 대다수가 통일된 의견을 보이고 있지만 그 이외에는 상반된 의견들이 보인다. 

대작 작가의 말바꾸기에 대해서는 이해된다는 의견과 이게 뭐하자는 짓이냐는 의견이 나뉘고 있다.

근대 이전의 예술개념으로 예술작품을 이해하는 대중들은 예술가들이 자기 스스로 손수 작품을 만들지 않는다는 사실에 대해 배신감을 느낀다는 의견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