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미제사건 '윤영실 실종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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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미제사건 '윤영실 실종 사건'


2017. 6. 24.

1986년 5월에 대한민국의 탑모델이자 영화배우였던 윤영실(당시 만 29세)이 실종된 사건이다. 평소 윤영실의 행실로 보아 자살을 한다든지 잠적한다든지 할 이유가 없는데 갑자기 사라져서 충격을 낳은데다 영화배우이자 언니였던 오수미또한 1992년에 하와이에서 교통사고로 사망해 자매가 모두 비극적인 결말을 맞아 더욱 충격을 준 사건이다. 2017년 현재까지 30년째 윤영실의 생사는 전혀 알 수 없고 아직 시신도 발견된 바 없다. 공소시효가 만료된 탓에 결국 영구 미제 사건이 되었다.

윤영실은 1956년 7월 8일 생으로 서울에서 태어났다. 본래는 무용을 전공했던 무용학도였는데 배우였던 언니를 따라 1977년 모델로 데뷔하였고 같은 해에 영화배우로도 데뷔해 2편의 영화에 출연한 바 있다. 윤영실은 키가 크고 서구적인 마스크로 세련된 이미지를 드러내어 당대의 탑모델로 등극했다. 더군다나 언니 오수미는 당대 최고의 여배우였던지라 윤영실 역시 유명인사가 되었다. 그런데 이렇게 한참 잘 나가던 윤영실은 1986년 5월에 의문의 실종을 당했다.



사건이 일어나기 전 윤영실은 언니 오수미가 거주하는 압구정 현대아파트 부근에서 혼자 자취 중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1986년 5월, 윤영실이 며칠 째 연락이 두절되자 동생이 걱정되었던 오수미는 결국 윤영실의 집으로 찾아가지만 전화도 안 되는 건 물론이고 인터폰도 되지 않았으며 초인종을 눌러도 인기척이 없었다. 뭔가 심상치 않다는 걸 느낀 오수미는 경비원과 기술자를 불러 강제로 문을 따고 들어갔다. 그런데....

윤영실은 집 안에 없었다! 그런데 더 놀라운 것은 집 안의 살림살이는 한 개도 빠짐없이 모두 있었으며 깔끔하게 정돈되어 있었다는 것이다. 만일 외부에서 누군가가 침입해 윤영실을 납치한 것이라면 당시 한국 나이로 31세의 성인이었던 윤영실이 저항하지 않았을 리가 없다. 그렇다면 집 안은 속된 말로 엉망진창이어야 정상이었다. 납치범이 다시 살림살이를 깔끔하게 정리하고 갈 리는 없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누군가가 집에 침입해서 납치한 것이라고 보기가 어려웠다. 그렇다고 윤영실이 스스로 잠적한 것이라고 보기에는 뭔가가 석연찮았다. 윤영실은 패션모델들의 산실로 유명한 모델라인의 창시자로 동료 모델과 함께 후배들을 양성하는데 크게 열정을 보였다고 한다. 그런 사람이 어느 날 갑자기 잠적했다고 보기엔 뭔가가 석연찮았다는 것이다. 거기다 잠적할 사람이 집 안을 깔끔하게 정리하고 갔다는 것도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려웠다. 결국, 집안 물건이 모두 그대로 있고 외부에서 침입한 흔적도 없는데 윤영실만 사라졌다는 미스터리 한 결론이 나오게 되는 것이다.

불안감과 답답함을 느낀 언니 오수미는 곧바로 경찰에 신고했고 경찰은 즉시 수사에 착수했다. 그러나 도무지 사건 단서를 찾을 수가 없었다. 윤영실은 당대의 탑모델이었던 인물인데다 키가 크고(174cm!!) 늘씬하며 서구적인 외모를 하고 있어 사람들의 눈에 잘 띄는 외모였다. 그러므로 윤영실이 걸어 다녔다면 사람들이 못 알아봤을 리가 없는데 이상하게도 목격자는 단 1명도 나타나지 않았다! 집 안에는 앞서 말했듯이 어떠한 단서도 남아 있지 않았다. 

그래서 이 사건은 호사가들의 입에 자주 오르락거렸는데 개중에는 이 사건이 마치 마릴린 먼로 사건의 한국 버전인 양 호들갑을 떠는 이야기도 있었다. 그러나 호사가들의 입에서 갖가지 설들만 난무했을 뿐 사건에 대한 어떠한 단서도 잡을 수 없었고 30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윤영실의 생사는 알 수 없다. 만일 윤영실이 살아 있다면 현재 나이는 2017년 1월 10일 기준으로 62세(만 61세)이다.

희한하게도 이 사건을 수사하는 당시 경찰의 태도도 기묘했다는게 그 시절 기자들의 증언이다. 나름 이름이 난 연예인이 사라졌는데도 기자들에게 별달리 수사의 진행에 대해서 알려주지도 않았고 사건 수사결과에 대해서도 어떤 발표나 브리핑 조차도 없었다고 한다. 유명 연예인이 실종된 일임에도 이 사건이 완벽히 잊혀진데에는 이런 경찰의 태도도 한몫했던게 원인으로 보인다. 물론 경찰도 수사를 진행했지만 딱히 뚜렷한 증거를 찾지 못한 것이 경찰이 수사 결과 발표를 꺼린 이유일수도 있다.


그래서 이것 때문인지 전두환 정권이 이 실종사건의 배후일 가능성이 있으며 또 제5공화국의 희생양이 아니냐는 음모론도 나왔다. 독재정권을 다룬 영화 '증발', '빨간 여배우' '서울 무지개' 에서는 정권 최고 실세와 관계를 갖던 유명 여배우가 쥐도새도 모르게 살해된다는 내용이 나오는데 이 사건을 모티브로 한것으로 보인다.

이 사건이 더욱 주목을 받게 된 이유는 윤영실이 실종된 이후 그녀의 가족에 비극적인 사건이 연달아 발생했기 때문이었다. 언니 오수미는 윤영실이 실종되기 몇 년 전에 영화감독 신상옥과 교제를 하면서 2명의 아이를 낳은 바 있었다. 그런데 1979년에 신상옥이 북한으로 납북되는 사건이 발생해 오수미는 혼자서 두 아이를 키우게 되었고 사실상 남편이었던 신상옥이 북한으로 끌려가고 7년 뒤에 여동생인 윤영실마저 의문의 실종을 당하는 일이 발생한 것이다. 또 오수미는 이 무렵에 사진작가 김중만과 사실혼 관계에 있었는데 김중만과도 결별하게 되었다.

이렇게 연달아 안 좋은 일들이 겹쳐서 충격을 받은 탓인지 오수미는 1986년에 연달아 3~4편의 영화를 찍고 17년 동안 몸 담았던 연예계에서 은퇴를 선언했다. 그러나 오수미의 비극은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정신적인 충격을 해소하기 위해 대마초를 피웠다가 크게 고초를 겪었다. 이후 자신이 그 동안 키워왔던 신상옥 감독의 아이들은 신상옥 감독이 탈북에 성공했다는 말을 듣고 신상옥 감독 부부에게 돌려보냈다. 이후 오수미는 고향인 제주도로 내려가 홀로 생활했다. 그럼에도 비극적인 일은 끝나지 않았고 오히려 더 큰 비극이 찾아왔다. 1992년, 오수미는 하와이로 여행을 떠났는데 교통사고를 당해 43세의 나이로 요절하고 말았다.

영화보다 더 영화같이 기구한 삶을 살았던 두 자매는 결국 언니는 젊은 나이에 요절, 여동생은 행방불명되어 현재까지도 생사를 알 수 없는 참으로 비극적인 운명을 맞고 말았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