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대를 대표하는 K-POP의 디바 '김현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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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를 대표하는 K-POP의 디바 '김현정'


2017. 6. 21.

폭발적인 고음과 시원한 가창력을 자랑하는 여성 솔로가수 김현정.


김현정은 <그녀와의 이별> 데뷔 이후 8장의 정규 앨범과 5장의 비정규 앨범을 발표하면서 활발한 활동을 펼쳤다. 2000년대 초반에는 영화와 드라마 OST에도 꽤 여러번 참여했고 다른 가수들 노래에 피처링 참여도 많이 했다.


현재의 소속사는 '힘엔터테인먼트'이지만 데뷔한 소속사는 '레볼루션 넘버 9'이다.

'시원시원한 고음' 이 특징인 댄스 가수.


1집 타이틀 곡 <그녀와의 이별>


2집 타이틀곡 <되돌아온 이별>

1999년 방송에서 부른 2집의 타이틀곡 <되돌아온 이별>. 댄스곡이라 우습게 볼 수 있지만 절대 만만한 곡이 아니다. 특히 후렴구 부분은 엄청난 고음을 요구하고 있다.

댄스 가수의 이미지가 크지만 가창력은 최고 수준이라는 평을 받는다. 다만 진성 의존도가 높은 창법이다 보니 컨디션에 좌우되기도 하는 편이라 평가가 많이 엇갈린다. 하지만 나름 격한 안무를 댄서들과 함께 추면서도 그 빡센 노래들을 립싱크 말고 라이브를 하는 편인 걸 감안하면...


김현정의 곡은 어지간히 노래 잘 부른다 하는 여자들에게도 쉽지 않은 편이다. 사실 도전 1000곡 같은 데서 가끔 걸리면 노래 좀 한다는 가수들도 안무 없이 노래만 불러도 쩔쩔맨다. 이따금 이런저런 이유로 김현정의 노래를 하는 타 가수들의 경우 음계와 성량 모두를 김현정만큼 잡아 주는 경우가 드물다. 노래 이외에도 판소리에 능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웬만한 명창 수준'... 이라고 하면 좀 과장이겠지만 판소리 좀 배운 경험이 있다고 개인기로 써먹는 다른 가수들에 비하면 실력이 출중하다.


참고로 판소리에서는 가성을 쓰지 않는다. 고음역대까지 진성(육성)에 의존하는 특유의 창법은 판소리를 했던 경험이 원인으로 보인다. 전성기에는 도대체 이 창법이 뭔지 제대로 알려진 바 없었으나 2010년대의 기준으로 판단해보면 벨팅 창법의 달인.
키가 173cm에 달해 여자 치고는 상당히 크다.

특히 각선미로 유명했는데 순수 다리 길이만 97~98cm이고  골반까지 포함하면 112~113cm에 달한다.  가요계 유일무이한 롱다리 여자 가수.

2017년 4월 18일 MBC에브리원 비디오스타에서 박나래가 쟀는데 114cm가 나왔다.

김현정 이후 롱다리로 유명했던 그룹 'LPG' 출신 한영은 이미 가수를 그만둔 지 오래됐고 다리 길이 측정이라는 게 언플이나 측정 방법이 따라 왔다갔다 하는 부분이다 보니 둘의 다리 길이는 우위를 판가름하기 힘들다. 물론 이상은-김현정-한영의 뒤를 잇는 초장신 여가수의 계보를 잇는 가수가 달샤벳에서 나오긴 했다. 무려 175cm. 다만 김현정의 경우 무릎 위, 즉 허벅지 부분이 긴 타입이라 비행기 좌석 등에 앉으면 불편하다고.

고등학교 시절 헤비메탈 밴드를 한 경력이 있다.

1995년 기획사가 주최한 오디션에 합격하여 앨범 준비를 시작했고 1996년 12월경부터 기획사측에서 제작한 홍보용 LP판이 돌기 시작했다. 이후 1997년 2월, 1집 <Legend>를 발매했다. 타이틀곡 <그녀와의 이별>로 방송에도 출연했지만 당시에는 히트를 못 했다... 기보다는 망했다. 97년 5월 17일 MBC 음방에 나갔는데 긴장 탓인지 노래도 불안했고 스타일링도 매우 나이들어 보였다.


하지만 나이트클럽과 길보드, 즉 불법 복제 테이프 가판대 등을 통해 천천히 입소문을 타더니 반응이 폭발적으로 늘어나서 결국 앨범 발매 1년 뒤인 1998년 6월 무렵에 앨범 자켓을 재촬영해서 재발매를 했으며 접었던 방송활동을 다시 시작하는 기적을 이루었다.

이 때문에 2000년 중후반까지도 공식 데뷔시기는 1998년, 앨범 자켓은 재판 기준으로 소개되었다. 심지어는 팬들 사이에서도 97년에 데뷔했다 카더라는 정도로만 알고 있었고, 초판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레전드급 위상을 가지고 있었을 정도로, 97년 데뷔사실은 김현정이 정상에 오른 이후 철저히 비밀에 부쳐져 있었다.

얼마나 인기가 높았냐 하면 갤럽 조사에서 국민 선호음악 1위도 기록했으며 1년 3개월이 지난 98년 8월에서야 공중파 1위를 기록했다. 이에 힘입어서 1998년 1집을 재발매, 60만장이 넘는 판매고로 이 해 여성 솔로 가수 음반 판매량 1위를 기록했다.


1998년부터 발표하는 곡마다 1위를 달성했고 당시 그녀는 1세대 아이돌 전성시대였던 시절에 H.O.T.의 라이벌인 젝스키스를 뮤직뱅크에서 전화 투표로 이겼을 정도로 인기가 무서웠다. 1999년에는 정오의 희망곡 DJ로도 활약, 인기를 증명이나 하는 듯 청취율 1위까지 찍었다. 그냥 1위도 아니고 무려 강석, 김혜영의 싱글벙글쇼를 누르고 1위를 찍은 것이다!

이처럼 1996년 별들의 전쟁 이후 혜성처럼 등장한 김현정의 별명은 "가요계의 신데렐라"였다.

<그녀와의 이별> 히트 이후 발표하는 노래와 안무가 줄줄이 히트를 치면서 김현정은 1990년대 후반을 대표하는 댄스 가수의 반열에 오른다. 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여자 솔로 가수 중 가장 많은 음반 판매량과 가장 많은 1위곡을 배출했고 김현정의 이름 앞엔 항상 롱다리 미녀 가수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녔다.


이에 걸맞게 방송 CF와 의류 모델 등으로도 꾸준히 활약했고 샤넬 패션쇼 메인 모델로도 활약한 바 있다. <그녀와의 이별> 이후에는 <혼자한 사랑>으로 또 다시 대박을 터뜨렸다. <혼자한 사랑>의 인기도 <그녀와의 이별> 못지 않았다.

1999년 2집도 역시 나오자마자 큰 인기를 끌었다. <그녀와의 이별>을 쓴 최규성이 준 <되돌아온 이별>, 당시 히트메이커였던 주영훈이 쓴 <실루엣>, 윤일상 작품인 <자유선언> 등 세 곡의 싱글로 활동했는데 이 세 곡 다 히트에 성공했다. 98년 6월 데뷔 1년만에 1집과 2집 누적 판매량이 100만장을 돌파하여 화제가 된 바 있다. 시원한 가창력과 강렬한 사운드로 소위 '김현정 스타일' 을 만들어 나이트클럽 등지에서 큰 인기를 유지했다. 2집 활동 중 시트콤을 통해 연기도 도전했다.

그 때, 나온 시트콤이 SBS 청춘시트콤 '행진'이었는데 거기서 굉장히 멋지게 나왔다. 하지만 개편되면서 같이 출연했던 성동일 등과 같이 대거 하차했다. 참고로 이 시트콤이 판유걸이 리즈시절에 등장한 작품이다. 당시 보기 드물게 9시 뉴스에 보도되었으나 호사다마라고, 후속곡 <자유선언>으로 활동 중 타고 가던 벤이 전복되는 사고를 당해서 연예활동을 잠시 쉰 적이 있다. 

그해 연말 지상파 가요 시상식에서 본상을 석권했지만 <서울가요대상>에서만 상을 수상하지 못했다. 그 이유는 당시 기획사였던 <레볼루션 넘버나인>측에서 수상을 거부 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다음해인 2000년에도 전성기를 구가했지만 수상하지 못했다. 김현정뿐만 아니라 다른 인기가수들도 수상하지 못해 정확한 수상기준에 대한 비판 여론이 거세졌었다. 

또한 MBC <10대가수가요제>에선 당시 김현정의 인기를 고려하여 "음악 프로듀서들이 뽑은 인기가수상"을 신설해 "대상"격인 "최고 인기가요상" 발표 직전에 시상하여 의미가 큰 상이다라고 칭했지만 정작 "본상"수상자에선 제외시켜 반발여론이 존재했다. 또한 상을 수상한 김현정은 다른 방송사 스케줄로 인해 수상소감도 말하지 못하고 노래도 2분남짓 부르고 급하게 퇴장하였다.


2000년 9개월의 공백을 깨고 발표한 3집 <멍>으로 인기 정점을 찍었는데, 당시 '다 돌려놔' 라는 후렴구 가사와 율동은 유행이 되었다. 예능프로에서 많은 패러디를 낳았고 후속곡 <너 정말>에서 컨셉으로 끼고 나온 선글라스가 큰 유행을 일으켰다. <멍>, <너 정말>까지 가요차트 1위를 차지했으며 발라드곡 <거짓말처럼>으로도 큰 인기를 얻었다. 김현정은 3장의 정규 앨범이 연속으로 대박을 기록하면서 여자솔로가수 중 톱가수임을 확실히 증명했다.


그리고 한창 전성기를 구가하던 이 시기에 엄정화와 은근히 라이벌 기믹이 존재했다. 데뷔는 엄정화가 1992년으로 김현정보다 5년 가량 빨랐지만 1997년, 3집 타이틀곡 <배반의 장미>가 공전의 히트를 기록하고서야 인기가수로 발돋움했고 90년대 말엽에 전성기를 구가했다는 점에서 김현정과 상당히 유사하다.

실제로 90년대 말 삼사의 가요대상에서는 H.O.Tvs젝스키스, S.E.S vs 핑클처럼 김현정과 엄정화의 라이벌 매치업이 성사된 적이 있다.

2001년 대만, 홍콩에 진출하여 <거짓말처럼>을 중국어로 부른 <FOREVER>가 차트 1위를 기록하며 큰 인기를 얻었는데 당시 성룡과 같은 기획사에 있었다. 김현정의 활동 예명은 'Amy Kim'이며, 김현정을 위해 20억대에 롤스로이스 차량을 지원해줬다. 


또한 일밤의 코너인 게릴라 콘서트에도 도전했는데 역대 도전 지역 중 제일 최악의 지역으로 뽑힌 울릉도가 선택되었다. 당시 PD의 말로는 김현정 정도의 가수라면 울릉도에서 성공할 자신이 있었다고... 울릉도 인구 9천명 중 2천 관객을 목표로 잡았는데, 2106명이라는 관객을 동원해 울릉도에서 절대 나올 수 없는 수치를 기록했다.

4집 <떠난 너>는 그동안의 유로댄스 스타일을 벗어난 새로운 스타일을 시도했다. 락에 뽕삘을 섞어놓은 듯한 기존 댄스곡에서 오리엔탈 느낌이 물씬 풍기는 전보다 부드러운 미디엄 템포 곡이었다. 전주 부분에 도저히 알아먹을 수 없는 속삭임이 화제가 되었는데 백마스킹으로 뒤집어보면 'mp3 다운로드 받지 말고 CD를 사서 들어달라'는 내용이라고 한다. 당시 이 내용이 많은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데뷔 년차도 어느 정도 지났고 무엇보다 너무 갑작스런 이미지 변신이어서 전작에는 못 미치는 반응이었다. 1~3집이 워낙 대박났던 이유도 있긴 했지만 전체적인 반응은 뜨뜻미지근했고 어울리지 않는다는 평이 많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01년 9월 15일 MBC 음악캠프에서 1위를 차지했다. 팬들 사이에서는 상당히 호평을 받는 곡이었지만 대중적인 반응이 좋지 않았던 탓에 후속곡은 기존 스타일의 곡인 <놔>로 활동을 이어갔다. 큰 인기는 없었지만, 어느 정도 잔잔한 반응을 이끌어내었고 그 뒤 'shining star' 곡으로 짤막하게 활동한 다음 무난하게 활동을 접었다.

4집까지 발매된 이후 소속사 이적이 있었다. 당시 이적한 회사에 대해 팬들의 불만이 많았는데 같은 소속사의 연예인이었던 장나라에게만 매니지먼트가 집중되어 있었던 모양새였고 이로 인해 김현정의 발라드 앨범이 취소되었다고 보는 경우도 있었다. 이후 데뷔한 신인 가수 혜령에 대해서도 지원이 없었음을 생각해 보면...

2002년 새로운 기획사에서 5집 <단칼>을 발표했다. 데뷔 초에 비해 조금씩 인기가 좀 잦아들기 시작했지만 여자 댄스 가수 중 보기 드물게 정규 음반 5장에서 모두 1위하는 기록을 세웠다. 후속곡 선정과 방송활동 부진에 대해 새로운 기획사에 대한 팬들의 반발이 컸었다. 당시 팬들은 하드록 풍의 곡인 <순종>을 후속곡으로 밀었지만 소속사에서는 <현장>이라는 곡을 후속곡으로 삼았고 그나마도 활동을 얼마 안 했다. 

2003년 녹음까지 마친 발라드 음반이 취소되고 6집 <끝이라면>으로 가요차트에서 10위 권까지 들 정도로 선전했고 기획사의 문제인지 음반 발매 3달 만에 음반 활동이 조용히 마무리 되었으며 발라드 후속곡인 '그 놈의 결혼식'으로 짤막하게 활동했다.

사실, 이미 이 무렵에는 음악 시장의 판도가 상당히 바뀌고 있었다. 90년대에서 2000년대 초반까지는 댄스 음악이 점령했지만 2001년 이후부터 R&B 열풍이 본격적으로 터지면서 2003년 무렵에는 R&B 붐이 불었고 흑인 음악이 한국 가요계의 주류가 되었다. 이는 김현정의 인기와 절묘하게 맞물리는데 댄스 음악의 전성기였던 1998~2000년에 여자 솔로에서 탑을 찍을만큼 절정의 인기를 구가하다 알앤비 열풍이 시작된 2001~2002년에 서서히 하락세를 타더니 알앤비가 완벽하게 주류로 올라선 2003년부터 인기가 크게 떨어졌다.

그리고, 당시에는 김현정 뿐만이 아니라 이정현, 소찬휘, 백지영 등 2000년에 전성기를 구가했던 기존의 여성 디바들이 하락세로 접어든 반면에 정통 발라드를 내세운 이수영과 힙합을 무기로 내건 이효리는 이 시기 최고의 전성기를 구가했다. 이런 시류에 맞추기 위해서인지 김현정은 자신의 트레이드 마크인 생머리와 고음을 버리고 솔과 R&B 음악에 시도했다. 김현정은 헤럴드경제와의 인터뷰에서 '그간의 히트 댄스곡은 이젠 '추억 속의 댄스' 일 뿐이에요. 지금 트렌드와는 맞지 않은 부분이죠' 라면서 '이 음반은 이제 다른 발전의 변화를 모색하는 계기가 됐다는 점에서 자부심을 느껴요' 라고 밝혔다.


2004년에는 7집을 발매하면서 기존의 유로댄스에서 당시 트렌드였던 R&B와 소울 힙합을 시도했다. 창법도 시원시원하게 지르는 창법에서 나름대로 그루브를 살린 창법으로 바꾸는 등 파격적인 변신을 꾀했지만 타이틀곡 <B형 남자>에서 <B형 남자> 자체를 띄우는 데만 성공하고 정작 노래 흥행에는 실패했다. 팬들 사이에서도 호불호가 심하게 갈렸던 곡이었으며 오히려 <태양에너지>, <Like a virgin>, <Don't you follow me> 등등 앨범 수록곡으로 타이틀을 하는 게 어땠느냐는 의견이 많았다. 결국, 팬들의 의견을 수렴해 후속곡은 <태양 에너지>를 선택하면서 팬들 사이에서 오래도록 사랑받고 있지만 타이틀곡에 비해 활동을 많이 하지 못하고 흐지부지 방송 활동을 접었다.

너무 갑작스런 변신은 독이었다는 것을 느끼게 해준 성적이었지만, 김현정이 기존과는 반대되는 스타일도 충분히 소화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던 앨범이었기에 나름대로 의미 깊은 앨범이기도 하다. 단지 자연스럽게 변화해나갔다면 어땠을까 싶지만 음반은 충분히 명반으로 당시 미국에서 유행하던 R&B 스타일을 한국으로 살짝 어레인지하며 접목시킨 곡이 많다. 2000년대 초반 팝을 듣는 기분을 느낄 수 있는 앨범으로 지금 들어도 신선한 곡이 많다. 

2005년에는 컴필레이션 <Fun Town 20>을 발매. 과거의 히트 댄스곡을 리메이크한다는 콘셉트로 Earth Wind&Fire, 계은숙, 김현철, 김건모, 휘트니 휴스턴 등 상당히 넓은 범위를 자랑했다. 당시로서는 흔치 않게 타이틀 곡을 세 곡을 밀었는데 <립싱크(Lipps Inc.)>의 동명의 곡을 리메이크한 디스코풍의 곡 <Funky Town>과 다시금 유로댄스로 돌아간 <아파요>, <번뇌>로 활동했으며 7집의 부진을 어느 정도 만회하는데 성공했다. 트리플 타이틀이기는 했지만 곡 인기에는 격차가 있어 전체적으로 Funky Town>아파요>번뇌 순이었다.

하지만 타이틀 곡들의 인기와는 별개로 앨범 전체에 대한 평은 그리 좋지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7집씩이나 낸 베테랑 가수가 이제 와서 고속도로 휴게소에서나 팔 법한 댄스 리메이크 메들리를 만들었으니... 음악평론가 이대화는 앨범의 지나치게 상업적인 기획을 비판하며 '선곡은 다양하지만 하나 같이 자극제만 듬뿍 발라놓았다', '음악성을 포기하고 만든 앨범이다' 라고 혹평했다. 차라리 타이틀 곡 세 곡으로만 미니 앨범을 냈으면 평가가 그렇게까지 나쁘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대화도 <Funky Town>만큼은 '힘에 넘치고 역동적이다' 라고 호평했다.

2006년에는 자신의 히트곡을 다시 부른 <Dance With Hyun Jung>을 발표했지만 이해 5월에 피로 누적으로 쓰러진 이후부터는 건강상의 문제 탓인지 이전과 같은 방송 활동은 뜸해지게 됐다.


2007년 청바지 사업을 통해 대박을 터뜨렸고 애견 사업도 시작했다. 또한 성대결절을 한차례 겪었는데 의사가 가수 생활이 어려울거라고 수술을 권했지만 수술을 거부했다. 이 후 판소리를 통하여 발성에 무리가 가지 않는 창법을 연마하고 꾸준한 목관리를 통하여 지금은 과거 전성기때와 변함없는 가창력을 유지하고 있다. 


2008년 8집을 발매하였다. <In and Out>이라는 콘셉트로 발라드와 모던 록을 시도, 타이틀곡 <살짝 쿵>과 록발라드인 <사랑해 그리고 미안해>를 선보였다. 김현정은 이 앨범을 통해 더 날씬해지고 더 어려진 모습으로 나와 많은 주목을 받았는데 예능프로와 음악프로에 많이 출연하면서 활발한 활동을 펼쳤다.


이후 후배가수인 신건과 함께 <사랑에 지치다>라는 싱글 음반을 발표했다.

2009년에는 SBS 골드미스가 간다의 삽입곡인 <불러> 디지털 싱글을 발매했고 스타화보도 찍었다.

2010년에는 셀카와 새로운 프로필 사진을 공개했는데 예전과 확 달라져서 과도한 성형수술의 의혹이 있었으나 공개한 사진은 뽀샵질과 분장의 결과였는지 실제 모습은 막상 크게 달라진 것은 없었다.

2011년에는 3년만에 신곡인 <1분 1초>를 발표했다. 각종 음악 방송 순위와 음원 순위가 10위권을 기록. 오래된 데뷔년차에 비해 나쁘지 않았던 성적이였다. 하지만 음악성은 2000년대 초반의 나이트 댄스에 안주하였다는 비판도 있다. 이 시기에는 뮤지컬에 주연으로 캐스팅되어 뮤지컬까지 활동 영역을 넓혔다.

2012년에는 본격적으로 연기자로 변신했다. 대왕의 꿈에서 길달의 호위무사인 묘랑의 배역을 받아 비록 조연이지만 열연했는데 포스가 엄청났다. 본인 스스로도 매우 험상궂게 보인다라고 평가할 정도. 

후배 가수 노블레스 노래에 피처링으로 참여했다.

2013년 청춘나이트 전국 투어 콘서트에 참여해 공연을 펼쳤고

나이 40을 앞두고 2014년 11월에는 무한도전 특별기획전/토요일 토요일은 가수다에 등장해서 오랜만에 가창력을 공중파에서 선보였다. 또한 최근의 방송 트렌드에 쉽게 따라가지 못하며 여자 냉동인간 컨셉을 얻기도 하는 등 의도치 않게 예능감도 보여줬다. 본 무대에서 명불허전 가창력을 보이자 어린 팬이 김현정을 몰라보고 립싱크 잘 한다고 말하다가 올드 팬들에게 까이기도 했다고 한다. 


이후 2015년 2월 23일에 싱글 곡을 발표했으며, 6월엔 데뷔 18주년 기념음반과 tvN 아침드라마 울지 않는 새의 OST를 발표했다. 김현정은 데뷔 이후 최초로 자신의 자작곡 Attention(너만 있으면 돼)을 18주년 기념음반에 타이틀곡으로 내세웠다. 김현정의 자작곡은 과거 2집과 3집에도 수록되어 있지만 활동은 한 적이 없다.


2016년 건강악화로 인해 컴백을 미룬 상태며 국내외 공연활동을 펼쳤는데 8월에는 필리핀에서 열린 "코리안 레전드 콘서트",10월에는 잠실 학생 체육관에서 열린 "오카패밀리콘서트"에도 출연하여 공연을 펼쳤다. 

2016년 11월 13일~20일에 방송된 복면가왕에 사랑은 관람차를 타고라는 이름으로 출연해 1라운드에서 위 아래 위위 아래 바이킹을 꺾고 2라운드에 진출했으나, 오즈의 마법사 도로시에게 패해 떨어졌다. 최근에 담석 수술을 받았다고 언급했다.

이후 복면가왕에 판정단으로 나왔는데, 동명이인이자 스페이스 에이 출신의 김현정이 본인의 노래를 2라운드에서 부르는 묘한 광경을 보았다.

2017년 김순옥 작가의 SBS 주말드라마 언니는 살아있다 OST에 참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