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시민의 뜻과 변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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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시민의 뜻과 변질


2017. 2. 16.

깨시민이란 깨어있는 시민의 줄임말이 였다. 선민의식을 갖고 진영논리에 빠져 (정치적으로) 상대방을 매도하되, 자기편에겐 따뜻한 이중잣대를 구사하는 민주당계 정당 내 친노 지지자를 가리키는 용어. 한마디로 친노만이 민주적 정통성이 있다는 선민의식을 가진 사람들을 의미한다.



만들어질 때는 노무현 지지자들의 자부심과 긍정의 의미에서 만들어졌으나 이후엔 일부 과격한 친노 지지자들을 조롱하는 매도하는 비하어로 유행하고 있다. 작가 고종석이 2012년 대선을 앞두고 트위터에서 최초로 유행시켰으며, 이 단어의 파급력은 점차 커져나가 친노지지자 뿐 아니라 호남-비노계 민주당 지지자와 진보정당을 지지하는 좌파까지 아우르는 말로 쓰인다.

이들은 극우 세력이 박정희 대통령을 숭배하고 반대파를 빨갱이로 몰거나 하는 걸 엄청나게 비판하지만, 반대로 노무현과 친노를 완전무결한 존재로 신격화하고 반대하는 사람을 악으로 몰아붙여 매장시켜 버린다. 이들은 노무현 개인을 신격화하면서 노무현에 대한 존경을 타인에게 강요하고, 노무현에 대한 어떠한 비판도 받아들이지 않으며 노무현 정권이 야기했던 여러 문제와 논란거리들을 미화하기 위해 이중잣대와 진영논리 등의 무리수를 남발한다. 즉, 이들에겐 노무현이 최고존엄이다.
정작 노무현 본인은 인권 변호사 출신답게 표현의 자유와 비판할 권리에 대해 옹호하는 입장이었던 것을 생각하면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는 일이다. 이 깨시민들은 민주주의, 민주화를 마르고 닳도록 자신들만의 레토릭으로 활용하면서도 실상 그들의 언행은 참된 민주주의와 대단히 떨어져 있다.

2016년 기준으로 대부분의 깨시민이 극단적인 친문 성향을 보이며 반문 성향 또는 국민의당 측에 대한 악성 루머, 비난 등을 남발하였는데, 그것이 발전하여 호남에 대한 비하로 까지 이어지자 문베충이라는 별명을 획득하였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로 인해 새누리당의 지지율이 떨어진 상황에서, 이들의 주적은 국민의당의 안철수, 정동영, 박지원, 더불어민주당 내의 김종인, 이종걸, 박영선, 김부겸, 김두관 등의 비노 및 친노비문 인사들, 그리고 손학규가 있다. 최근에는 이재명 성남시장과 박원순 서울시장, 반기문 전 UN 사무총장도 추가되었다. 넷상에서 민주당 지지자들은 크게 문재인 지지자와 이재명 지지자로 나뉘어 있었는데, 이재명의 인기가 크게 오르자 위기감을 느낀 문재인 지지자들이 이재명을 (새누리당이 쓰던 프레임까지 쓰면서)공격하기 시작한 것. 박원순도 문재인을 디스한 이후 깨시민-문베충들과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다.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친문계를 제외한 모든 정치인을 적대한다고 봐도 무방하다. 반면, 안희정의 경우는 친문은 아니지만 노무현의 직계라인이면서 문재인과는 한 식구라는 인식이 있어, 엄연히 문재인의 대선 경쟁자임에도 불구하고 차차기 프레임(차기 문재인 - 차차기 안희정)으로 철저히 보호받고 있다. 즉 노무현-문재인-안희정으로 이어지는 친노 3대 정권 창출이 그들의 궁극적인 목표라고 할 수 있다.

[기원]

노무현 전 대통령이 2008년 청와대 브리핑에서 깨어있는 시민이라는 말이 언급되는데 '깨어있는 시민의 단결된 힘이 바로 민주주의의 보루이자 우리의 미래입니다.' 라고 한 말에서 유래되었다. 


‘깨어있는 시민’이라는 이슈는 노무현 대통령이 그 전부터 참여하는 시민, 시민 민주주의 등을 강조했던 연장선상에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민주주의 최후의 보루는 깨어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미래입니다”라는, ‘최종본’이 정리된 것은 2007년 6월 제8회 노사모 총회 축하 메시지를 통해서였다. 이후 노무현 대통령은 이 말을 청와대 브리핑, 언론 인터뷰 등 여러 공식석상에서 반복했다. 

사망 이후 발간된 자서전 '운명이다' 에서도 유독 이와 같은 취지의 단어가 많이 등장하며, 봉하마을에 있는 그의 비석에조차 '민주주의의 최후의 보루는 깨어 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이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다.

사실 이 단어가 처음 노무현 대통령이 언급했을 때만해도 일부 지지자를 제외하고는 크게 관심을 가지지 않고 특별히 비하적 의미를 가지지도 않았다. 당시 노무현 대통령의 인기가 지리멸렬한 상황이기도 했거니와, 그 지지자들 역시 ‘깨어있는 시민’을 자청하지도 않았기 때문. 이 단어가 본격적인 파급력을 가지게 된 것은 2009년 노무현 대통령의 사망 이후이다.

[변질]

2009년 노무현 대통령 사망 이후 이 단어는 그를 추모하는 사람들에게 사명감을 나타내는 단어로 널리 사용되기 시작한다. 이 단어가 본격적인 비하어로 사용되기 시작한 것은 2012년 대선정국에서 작가 고종석씨 트위터에서 비롯된다. 고종석 작가는 당시 범야권 대통령 후보로 안철수를 지지하였는데, 이 과정에서 문재인 등 친노 세력에 비판적인 트윗을 올릴 때마다 트위터 자기소개란에 '깨어있는 시민'이라 적은 사람들이 고종석에게 반말과 욕설 등 무례한 멘션을 날리기 일쑤였다. 고종석이 이들을 블락 하면서 '깨어있는 시민은 깨어있지 말고 잠들좀 자라!'라고 하며 그 이후로 ‘깨어있는 시민’들을 ‘깨시민’으로 부르곤 하였는데, 이 깨시민을 조롱하는 트윗들이 친노에 반감을 가지고 있던 구민주당계열 지지자 및 진보신당 지지자들에게 크게 유행하기 시작한다.

진보신당 대표까지 역임했던 대표적인 좌파 지식인인 홍세화 씨가 트윗을 통해 친노 지지자들을 깨시민으로 비난한 사건 역시 좌파 측이 친노 세력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 지에 대한 대표적인 사례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트위터에서는 ‘깨시민’을 줄인 ‘깨시’라는 표현으로도 자주 사용되고 있으며, 워낙 많이 사용되다 보니 비하적인 의미도 많이 퇴색되어 ‘친노 리버럴’을 통칭하는 용어로 쓰이기도 한다.

[악용]

깨시민들이 일베, 국정원, 알바 등의 단어를 자기와 의견이 다른 사람들을 비하하는 용어로 사용하는 것처럼 인터넷 상에서 깨시민은 자신과 다른 정치적 의견을 갖고 있는 사람을 낙인 찍는 수단으로 악용되기도 한다. 예를 들면, 꺠시민의 예전 판본인 305버전까지만 해도 이재명은 깨시민들의 대표주자처럼 묘사 되었다. 그런데 최근 판본에서는 갑자기 깨시민에게 공격을 받는 인물로서 이재명이 묘사 되고 있다. 이재명은 그때나 지금이나 성향상 크게 바뀐 부분이 없는데 문재인과 각을 세웠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깨시민을 대표하는 사람이 아니게 된 것이다.

이렇게 상황이나 사용자에 따라서 깨시민의 정의는 그때마다 바뀐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하고, 자신의 주장을 비판했다는 이유 하나 만으로 "'나의 정당한 주장을 깍아내리는 깨시민"' 으로 상대방을 인식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하지만 이 주장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전술 되어있듯 깨시민이란 단어 자체가, 어떤 '정치적 가치에 대해 깨어있는 사람들'이라는 원래의 출발과 유리 되어 있다는 방증으로 해석하는 것이 더 보편타당한 해석이기 때문이다. '깨어있는 사람들의 조직 된 힘'이라는 말 자체는 좋은 말인데 현실 속 깨시민의 이미지는 '깨어있는 사람들의 조직 된 힘'으로 읽힌다고 보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어떤 사람들이 친노혈통의 적자를 정하고, 힘으로 그 곁에 서있는 사람들을 오히려 적대하는 양상이라는 것. 이재명은 사이다, 전투형 노무현 소리까지 들었을 정도로 깨시민들과 같은 방향성을 갖고 움직이고 있었던 사람이다. 하지만 특정후보를 이길 생각이 있다는 것 때문에 보수언론들보다 오히려 자칭 깨시민들이 나서서 더 헐뜯고 있는 상황. 방향성에서 깨시민들의 논리와 다르지만 진영의 외연확장에 도움이 되는 안희정에 대해서도 이중적인 태도를 보인다. 처음에는 같은 친노니까 욕은 못하겠다고 나오더니 지지율이 오르자 새누리나 같은 사람이라며 공격하는 상황. 이는 깨시민들의 방향성보다는 혈통을 중시하는 행태와, 당의 승리나 진영의 지지율 상승, 세력확산 등에는 별 관심 없음을 보여줬다고 밖에는 여길 수 없다.

문재인 본인이 딱히 패권주의자가 아님에도 친문패권이라는 비판을 사방에서 받는 것은 깨시민들 본인 스스로 반성 할 부분이 분명 있다. 조직 된 힘이라는 것을 갖기 위해서는 최소한 뜻이나, 방향이 일치하는 사람들과의 연대가 필수이고, 이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 정당인데, 같은 정당 내부에서도 끊임없이 내부총질을 일삼고 있다. 재밌는 점은 내부총질에 대해 극혐하는 정서가 깨시민 내부에도 팽배하다는 것. 당 내에 의견이 다른 사람이 존재하면 끊임없이 설득하는 것이 민주주의의 기본이다. 이게 안 되면 타협을 이끌어내는 것이 정치인의 정치력, 정치적 수완이다. 노무현 정신의 기본이 끊이지 않는 대화와 토론임에도 불구하고, 그 유지를 이었다고 자부하는 깨시민들은 이를 극도로 혐오하고, 오히려 토론을 합의를 찾는 과정의 일환이 아니라, 이기기 위한 싸움의 일종으로만 보고 있는 것은 아이러니한 일이다.

마음에 안 드는 정치인이 있을 때 이를 비판하는 행위는 민주시민이라면 할 수 있는 행위다. 그런데 그 행위가 상식선에서 이뤄질 때 박수 받는 것이지, 우리가 하면 착한 행동, 너희가 하면 나쁜 행동이라는 식으로 나오는 것은 문제가 될 소지가 있다. 그나마 반대진영과 그렇게 격렬히 싸우면 모르겠는데, 가까이 있는 같은 당 동지끼리 늘 분열하는 것이 문제다. 물론 그 반대의 경우도 성립하는데, 대표적 예시로 들 수 있는 것이 당 내 일부의 무조건적인 반문정서다. 이 역시 똑같이 민주적인 절차를 건너 뛴 납득가지 않는 행위라는 점에서 같다. 하지만 이 문서에서 문제시 삼는 것은 무조건적인 친문재인이 아닐 경우 적으로 간주하고, 그들이 극혐하는 반문주의자들과 똑같이 내부총질에 열 올리는 깨시민들의 이중적 태도 부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