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하늘 베이비복스 성적 모독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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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하늘 베이비복스 성적 모독 사건


2017. 2. 14.

당시 베이비복스를 폭언한 건 안티도 아닌, 연예부 기자도 아닌 가요계 선배였다.
사건 당시 베이비복스 평균 나이 고작 24세.

7집 타이틀곡인 'Xcstasy'가 힙합계에선 신적으로 추앙받던 2pac의 죽기 전 감옥에서 힘든 심경을 담은 미공개 곡을 돈 주고 사서 샘플링해서 한 멤버와 대화를 주고받는 식으로 이용했었다. 장르의 순수성을 추구하던 시절이고, 아이돌 초창기라 아직 미약하게나마 자본논리보다는 음악의 예술성이나 메시지를 존중하던 시절이었으며, 장르 문제와 함께 곡 자체의 수위도 있었고, 뭣보다 샘플링한 곡도 곡인데다가 힙합과는 관련도 없던 베이비복스가 갑자기 죽은 투팍과 대화를 한다는 고인드립으로 엄청 까였다. 이 정도면 요즘 아이돌이 힙합과 록에 접근하는 걸 싫어하기 이전에 요즘 나와도 욕 먹는 일이 될 수 있었다.



DJ DOC의 이하늘은 이 샘플링 문제를 두고 당시 자신이 출연하던 엠넷의 힙합 프로그램 '힙합 더 바이브'에서 '2PAC을 상업적으로 이용하는 일은 용납할 수 없다, 베이비복스는 빠따 좀 맞자.'라 언급했고 이 발언이 스포츠 신문을 통해 기사화되어 당시 7집 타이틀곡 엑스터시의 작업 및 랩 피처링을 맡았던 플로스 피(Floss P)의 귀에 들어가면서 사태가 커지게 된다. 플로스 피는 'DJ DOC도 미국 랩을 따라하는데 남의 것을 아니라 할 자격이 없다'고 반박했고, 이하늘이 이에 대한 반박글을 쓰면서 문제의 '미아리복스', 'SEX 가수', '썅년' 등의 폭언을 쓰게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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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까지는 단순히 이하늘의 잘못이겠지만, 이하늘이 문제의 발언 후 잠수를 타고 있는 동안 기레기들이 합세하여 '미아리복스'라는 단어를 계속 되새김질하는가 하면, 몇몇 연예 언론들은 진작 7집 활동 초반에 마무리된 표절 해프닝 확대 해석하여 베이비복스에게 표절 가수라는 오명을 씌우기도 했다. 심지어 소속사인 DR 뮤직마저 이하늘과 싸우는데 모든 신경을 기울인 나머지, 저런 문제에 대해서는 전혀 대처하지 않았고 저작권에 대한 문제는 심은진이 직접 해명해야 하기까지 했다. 이와 같이 분명 자신들을 둘러싼 싸움인데 아무도 자신들을 배려해주지 않는 상황 속에서 멤버들의 멘탈은 너덜너덜해지고 있었다.


이하늘은 일식집에서 공개 회견을 가져 베이비복스에게 사과를 했지만, '이건 나와 DR뮤직의 싸움이다'라는 뜻을 분명히 했고 기자회견 이후 돌연 입장을 바꿔 베이비복스에게 사과할 뜻이 없다며 '미아리복스'라는 표현 사실 니들한테 잘 어울린다며 끝까지 인간쓰레기의 행보를 밟는다. 결국 DR뮤직측은 이하늘을 고소하여 승소했지만 베이비복스 멤버들 스스로가 원하지 않아 기사화되지 않았다. 만약 기사화됐다면 '미아리복스 파문, 이하늘 패소' 같은 타이틀을 뽑아서 미아리복스라는 단어로 또 되새김질을 했을 것이 뻔하니.

1세대 아이돌의 황혼기였던 이 시기 더블 타이틀곡이었던 Xcstasy와 Play Remix 부진에 이런 사태까지 겹쳐지자 베이비복스는 결국 7집 활동을 일찍 접어야 했고, 소속사와의 계약기간 만료 후 재계약 논의도 없이 그냥 각자 갈 길을 갔다. 솔직히 저런 상황에서 누가 재계약을 하겠는가. 대놓고 공식 해체는 아니었지만, 활동 내내 시달렸던 안티 공격부터 시작해 뜬금포 간미연이 문희준과 열애설이 나는 바람에 무개념한 문희준의 팬들로부터 살해협박 및 각종 테러를 당하는 등 많은 고초를 겪은 데다가 2016년 기준으로는 그저 그렇겠지만 섹시 컨셉 푸쉬와 이하늘 사건, 소속사 문제 등을 겪으면서 멘탈이 거의 다 박살나버린 멤버들이 심은진의 탈퇴를 시작으로 뒤를 이어 계약 기간이 끝난 사람부터 나간 것이었다고 한다. 그나마 해체 후 윤은혜가 잘 나갔고 나머지 멤버들도 미약하게 나마 연예 활동을 계속하니까 망정이지, 베이비복스 자체만 놓고 보면 이하늘의 폭언 한마디가 다섯명 인생을 말아먹은 셈이다.


물론 시간이 지나고 이하늘은 미아리복스 발언은 지나쳤다고 사과했지만 ' 투팍의 노래를 상업적으로 이용해 그를 두 번 죽였다' 라는 발언은 사과할 의향이 없음을 밝혔다.[5] 사건 몇개월 후 발매된 본인들의 새앨범에 '베이비복스 디스곡'을 넣으려고 했다고 홍보하거나 본인들 콘서트에 '미복 데려와서 빨간 조명이라도 틀걸 그랬다'며 찌질한 행보를 계속 보였다. 

확실히, 투팍도 상업가수이고 클래식 작곡가들도 샘플링되고 있는 시점에서 이하늘 본인의 주장은 설득력이 거의 없다. 다만 투팍은 상업 대중음악에 속하지만 많은 힙합스타가 그러하듯 인생 자체가 빈민가 흑인의 막장스런 인생을 보내다 흑인의 현실을 대변하는 목소리를 내며 전설적 랩퍼로 자리매김하다 97년에 총 맞아 죽은 사람이다. 일단 2000년대 중반이면 사실상 동시대의 사람으로 소위 말하는 무덤가 흙이 아직 따뜻한 상황이다. 당연히 조심스러워져야 하는데, 만약 2016년인 지금으로 예를 들어 보자면 고인이 된 신해철과 아무 상관도 없는 아이돌이 신해철의 미발표곡을 샘플링해서 신해철과 대화하는 곡을 냈다고 하면 인터넷 반응은 안 봐도 뻔할 뻔자다. 다시 얘기하지만 심지어 투팍은 총 맞아 죽은 사람이다. 베이비복스측이 경솔했던 점은 다소 있다. 왜 투팍이었어야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힙합에 대한 뭔가를 하고 싶었다면 그냥 닥터 드레나 스눕 독 같은 살아있는 사람 곡을 샘플링했어도 상관없었다. 물론 이 설명들이 절대 이하늘의 발언을 정당화할 수는 없다.

다시 말해, 미아리복스 발언은 아무리 힙합계의 전설인 투팍의 음원을 샘플링했어도 하면 안 될 쓰레기 같은 발언이었다. 앨범 제작은 소속사 사장이 추진한건데 왜 베이비복스가 욕받이 무녀가 되서 창녀소리까지 들었어야 했는지. 또한 당시 DR뮤직의 대처와, 스포츠 신문으로 대표되는 막장 기레기들의 행각도 베이비복스의 해체에 큰 지분을 가져갔다고 볼 수 있다. 이하늘은 베이비복스 멤버들에게 가수로서의 명예훼손 이전에 여자로서 씻을 수 없는 모욕과 상처를 줬다. 그마저도 제대로 된 사과를 한 적이 없으니 그냥 영원한 이하늘의 흑역사이자 죽을때까지 까여도 부족한 최악의 구설수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