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바타를 이용해 인간이 영원히 죽지않는 아바타 프로젝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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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바타를 이용해 인간이 영원히 죽지않는 아바타 프로젝트


2017. 1. 16.

과학적으로 죽음은 의식의 소멸이라는 점에서 기절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죽음을 영면이라 하여 잠에 비유하기도 하지만 엄밀히 말하면 다른데, 잠은 자는동안 꿈이라도 꾸는 반면 기절은 꿈도 꾸지 않기 때문이다. 다만 기절과 다른 점은 영원히 깨어나지 못하는데 있다.



그런 죽음은 모든 삶의 종착점이며 불가피하게 여겨지므로 삶을 어둡게 바라보게 하며 극도의 허무주의에 빠지게 하는데 이것이 심화되면 '죽음 공포증'에 걸리기도 한다. 허나 죽음에 대한 공포는 자연스러운 본능이고 이는 삶을 소중히 여긴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이 공포에 괴로워하는 사람 또한 많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의식이 없는 죽음 뒤의 공포는 가짜라는 것. 내가 존재할 땐 죽음은 존재하지 않고 죽음이 존재할땐 내가 존재하지 않는다. 고로 둘은 서로 양립할 수 없으므로 공포 또한 있을 수 없다. 그러므로 살아있는 이 순간 죽음 그 자체를 생각하며 아무런 결과 없이 괴로워하는 것보단, 나 자신이 죽음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를 생각하는 편이 낫다. 죽음 공포증의 치료법은 그저 이것을 얼마나 빨리 깨닫느냐의 차이일 뿐인 것이다. 모든 존재는 유한하고, 이를 막을 방법은 없다. 설령 과학기술이 발달해 죽은 사람을 살릴 수 있게 되었더라도 우주의 엔트로피가 최고로 치닫는 순간 죽음은 피할 수 없게 된다.



그렇기에 대부분의 인간에게 있어 죽음은 기피 대상이 된다. 그것은 죽음에 이를 때까지 겪게 되는 극심한 고통, 그 이후에 무엇이 존재하는지, 존재하지 않는지 확실하게 모르는 무지에 대한 두려움같은 것들 때문일 것이다.


그렇기에 죽음에 대한 감정이 익숙치 못한 사람들은, 죽음에 대하여 혼란과 두려움등의 부정적인 감정을 느끼며 여러가지 과정을 겪는다. 그것은 죽음에대한 미성숙한 과정 이라고도 볼 수 있으며, 그 과정이 잘못 되면 위에서 말했듯 타나토포비아나 네크로포비아 등의 정신증에 걸리게 되는 것이다. 그러니 죽음을 어떻게 받아 들일 것인가를 생각하는 편이 낫다 한 것이고 이러한 생각을 한다면 죽음을 완전히 수용하는 단계에 이르게 된 것이다. 이러한 과정을 퀴블러로스는 5단계로 나누어, 부정, 분노, 협상, 우울, 수용순으로 설명한다.

간혹은 삶의 고통에서 벗어나고 싶어하는 이들이 있는데, 이들은 목숨보다도 명예나 자존심을 중하게 여기는 사람들로 오히려 죽음을 환영하며 적극적인 경우 자살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여전히 많은 사람들에게 두려움은 피하고 싶은 존재이다. 이는 예전에도 그러하였으며, 사후세계에 대한 존재가 더욱 불분명하였기에 죽음을 완전히 수용하기도 힘들었을 것이다. 그랬기에 고대인들은 영혼 불멸설을 믿기도 하였고 사후세계에 대한 환상을 가지기 시작하기 이래로 수많은 종교가 탄생하였다. 고대 이집트인들은 사람이 죽으면 오시리스와 아누비스의 심판을 받아 심장을 깃털과 함께 저울에 재는데 이때 심장이 깃털보다 무거우면 죄를 많이 지은 걸로 판정되어 암무트에게 심장을 먹혀 영원히 구천을 떠돌고 착한 사람은 오시리스의 왕국에 들어가 영원한 삶을 살게 된다고 믿었다.  그리고 인도인들은 모든 생명체들은 죽으면 다시 태어나는 윤회를 반복한다고 믿었다. 그리고 고대 페르시아인들은 사람이 죽으면 영혼이 3일 동안 몸에 그대로 남아서 한평생 행한 일을 돌이켜보다가, 제4일이 되면 심판대로 간다고 믿었는데 그곳에서 태양신 미트라가 죽은 자의 삶의 행위를 저울에 올려놓고 심판을 하여 저울이 악한 쪽으로 기울면 그 영혼은 지옥으로 가고 약간이라도 선한 쪽으로 기울면 그 영혼은 천국으로 간다고 믿었으며, 심판을 받은 영혼은 계곡을 가로질러 놓인 다리를 지나가게 되는데 선한 영혼은 넓고 편안한 다리를 건너서 계곡 너머의 천국으로 가고 악한 영혼은 칼날 같은 다리를 건너다가 결국 계곡 아래의 지옥으로 떨어진다고 믿었는데 이는 후에 유대교, 크리스트교, 이슬람교 등에 영향을 미쳤다.

그렇다면 죽음은 모든 생물들에게 절대적인 것일까. 예로부터 죽음은 모든 생명은 언젠가 죽음으로 어쩔 수 없다는 운명론적으로 받아들여졌다. 그러나 늙어서 죽는 것은 물리적인 현상이며 생물체에 따라서는 이를 극복하여 영원히 사는 것도 가능하다. 트랜스휴머니즘을 지지하는 과학자들은 사람들이 불로불사할 수 있는 길을 찾아서 열심히 연구하는 중이다. 애초에 생명이란 것은 죽어있는 유기물들로부터 비롯되었다. DNA를 보존하는 데에 유리하다면 미토콘드리아처럼 죽은 채로 번식을 할 지도 모를 일이다.

인간의 의식은 뇌에서 만들어지는 것이며 인간의 뇌를 수명이 유한한 생체에 의존하는 대신 무한한 것으로 대체한다면 죽음을 회피하고 영원히 사는 것이 가능하다.


과학이 발전함에 따라 죽지 않는 여러 방법이 논의되고 있다. 한 예로 러시아의 재벌 드미트리 이츠보프가 밝힌 '아바타 프로젝트' 의 계획은 다음과 같다.

2015년~2020년, 사람의 뇌파로 로봇을 조정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든다.
2020년~2025년, 사람의 뇌를 이식할 수 있는 아바타를 만든다.
2030년~2035년, 인공두뇌를 가진 아바타를 만들고 여기에 인간의 개성과 의식을 이식한다.
2040년~2045년, 홀로그램 아바타, 즉 불멸의 존재를 완성한다.

영어에서 '자유의 여신' 을 그냥 "Liberty" 라고 부르듯 사실 "Death" 라는 단어에도 저승사자 혹은 사신이라는 의미가 있다.

의외로 경험해 본 것일지도 모른다, 태어나기 전이랑 비슷할지도? 철학적인 요소가 없진 않지만 '삶→죽음' 이 아니라 '죽음→삶→죽음' 으로 태어나기 전을 죽음으로 해석하면 말이 된다. 이런 해석에서 죽음은 본래의 자리로 되돌아간다라는 이미지가 강하다.

나의 의식을 대신 이식받은 아바타를 만든 나의 영생은 전신마비 환자의 삶과 뭐가 다를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