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체닦이 알바에 대하여
본문 바로가기

시체닦이 알바에 대하여


2016. 12. 30.

말 그대로 시체를 닦는 행위. 장례 과정의 염습(殮襲) 중 염에 해당한다.

동아시아권에서는 주로 장례식 직전 가족들과 마지막 작별을 하고 염습을 거행한다.

이 일에 인생을 걸어보고 싶다면 전국의 많은 보건대에 개설된 장의학과나 장례지도과 진학을 추천한다. 최저시급에 불과한 월급과 시신을 다루니 더럽다는 사회적 인식, 장례식장에서 외박하며 수면시간이 없는 3D업종에 버금가는 근무환경을 버틸 수 있다면 말이다.




염습이란 말 자체가 시체를 씻기는 '염' 과 수의를 입히는 '습' 을 가리킨다. 한국 사회에서 매우 중시한 예식으로 아르바이트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지금도 서구에서는 교회 관계자들이 이 일을 하는 경우가 많다.

문화적으로 장례과정을 중시하는 중화민국에서는 염습과정을 비롯한 장례절차 전반을 관리하는 전문 장례사가 존재하며, 높은 연봉과 전문직으로 대우받는다고 한다. 물론 한국은 그런 거 없다. 상조회사같은 경우에는 1년간 무보수로 온갖 장례식장을 따라다니며 월급없이 견습생 시기를 거쳐야할만큼 극악하다. 







'아르바이트 중에는 시체닦기라는 것이 있는데 시간에 비해 엄청난 보수가 나온다' 는 도시전설이 존재한다. 한 구당 몇십만 원을 준다는 소문까지 도는 판. 힘들기도 하거니와 워낙 겁나는 일이라서 지원자를 받아 일을 시키는데 그 대신 보수는 매우 두둑하게 치러준다는 말이 있다.

물론 이런 아르바이트는 존재하지 않는다. 자격증없이 시신을 다루면 일단 위생법에 걸리며 상식적으로 사람의 시체는 사람을 죽게 만들 만큼 심각한 질병이나 충격 등에 노출되었다는 것인데, 이런 것을 전문지식이 없는 사람이 취급하는 것이 용납될 리가 없다. 당장 전염병에 걸린 시신을 다루다가 병이 옮기지 않는다는 장담을 누가 해준단 말인가? 또한 염습은 전문 장례지도사 및 장의사가 거행하는 일로 극도의 전문성이 필요한 직종이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볼 때 어떤 유족이 고인의 염습을 비전문가의 손길에 믿고 맡기겠는가. 단순히 시체를 닦는 것만이 아니라 충분한 전문가적 지식과 요령, 그리고 고인에 대한 예의 등을 갖추어야 하는 일이며 이런 걸 아르바이트 수준에서 처리하는 곳은 없다. 
연고자 없는 유해나 의과 실습용 시체는 아르바이트를 고용한다고 착각하는 사람도 있지만, 이런 경우에는 더더욱 전문가의 관리가 필요하다. 이러한 시체는 해부학과를 졸업한 '의사'가 관리한다! 검시관이나 시체 유기중인 범죄자가 아닌 이상 일반인이 시체를 닦을 일은 결코 없다. 사전 지식이 없는 일반인이 닦았다가 시체가 훼손될지도 모르는 리스크를 떠안고 일반인을 고용할 자는 없다. 

시체닦기 아르바이트를 해봤다며 경험담을 늘어놓는 사람도 있으며 하기 전에 술을 마시게 한다, 일단 시체 닦는 방으로 들어가면 다 닦을 때까지 밖에서 문을 잠그고 열어주지 않는다, 닦다가 어딜 잘못 건들였더니 시체가 벌떡 일어나서 심장 멎는 줄 알았다 등등. 물론 장례식장에 한 번이라도 가봤다면 위의 말은 전부 개구라라는 걸 알 수 있다.

염습은 특히 유교 사회에서는 매우 중시한 예식으로, 맨정신이 아닌 취중에 대충대충 해도 되는 일이 절대 아니며 당연하지만 불법이다.
염습 및 입관을 거행하는 입관실이 따로 있는 건 맞지만, 문을 밖에서 잠그는 일은 없다. 염습 과정은 유족이 지켜보는 가운데 거행되며, 마지막 작별을 위해 유족을 입관실에 들여주기도 하기 때문에.
시체가 다시 일어나는 건 더 이상 말할 필요가 없다. 죽은 시체는 절대로 저절로 움직이지 않으며, 사망진단서를 떼주는 의사는 수십번 임종 확인을 한다.

이 도시전설은 일본에서 훨씬 유명하다. 빨간 마스크처럼 일본에서 시작되어 한국으로 건너온 괴담으로 추정. 단순히 시체를 닦는 것을 넘어 아르바이트생이 어두침침한 지하실에 상주하며 포르말린에 담가둔 해부 실습용 시체를 떠오르는 족족 막대로 찔러 밀어넣는다는 등 보다 구체적인 이야기가 추가되어 있다.

한국에선 유족의 처지로 한번이라도 장례식을 치뤄본 사람은 유족이 시신의 염습과 입관과정을 참관한는 것을 알 수 있다. 절대로 알바를 못 쓴다. 심지어 옆에서 도와주는 사람들조차 알바로 못 쓴다. 염습이나 입관할 때 그 알바가 혹시라도 실수나 무례를 범할 경우에 말 그대로 끝장나기 때문이다. 하다못해 사회인으로서 장례식에 참석해본 경험이 있다면 장례 절차상 결코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것을 누구나 알 수 있다. 한마디로 관련 지식이나 경험이 전무한 학창시절에나 통할 법한 도시괴담.

간혹 장례식이 현대화한 요즘은 불가능하지만 옛날엔 또 모른다고 생각할 수도 있는데, 이 또한 그렇지 않다. 과거에는 집에서 장례를 치렀다. 당연히 장의사가 직접 집으로 방문해서 염습했다. 이게 1980년대, 농촌지역에서는 1990년대까지 벌어졌던 장례식 풍경이다. 임권택 감독의 영화 축제를 보면 이런 시대상이 잘 나타나 있다. 사람들이 장례를 집이 아닌 외부 전문 장례시설을 이용해 치루기 시작한 것은 1990년대 들어서 점진적으로 바뀌기 시작한 신풍속도였다.

다만 과거에는(정확히 80년대 민주화 이전에 젊은 시절을 보낸 부모님 세대들)무연고 시신의 경우 해당사항이 없기 때문에 음지에서는 있었을 수도 있다. 의외로 부모님 세대에서 비밀리에 이런 알바를 했다는 증언이 꽤 있다. 산부인과 의사가 사산아를 가지고 술을 담궈 먹느니 하는 도시 전설이 추적60분에서 사실로 판명되었던 것처럼 1990년도 까지는 비밀리에 쉬쉬하면서 이런것이 있었을수도. 다만 이런 무연고 시신의 경우 대학병원 실습용으로 종종 쓰였던 70~80년대의 현실로 봤을때 그때 의과대학생들의 경험담이 와전되었던 것으로 생각되어진다. 그러나 2000년대 이후부터 현재는 사후 사체기증을 승락하고 그 유가족이 받아들일 경우에만 가능하다. 무연고 시신을 실습용으로 사용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위에 글에서 나왔던것처럼 1990년대 들어서 전문 장례시설을 이용해 치루기 시작하기 전까지 노숙자등 무연고 시신이 경찰을 통해서 들어왔을경우 가끔 대학병원으로 들어왔는데 그 경우에 의대생들이나 인턴들이 꺼려해서 희망자가 없는 관계로 병원측에서 수고비를 조금 쥐어준것이 와전되었던 것으로 보여진다. 공식적인 돈이 아니기 때문에 쉬쉬하는 것일 수도 있다. 1990년대 이후로 장례식장이 활성화되면서 이런 무연고 시신의 경우 대학병원에 들어온 장례 업체에서 하게 되었다. 그후로는 당연히 도시 전설이다.

그리고 장례 지도사라는 자격증은 1990년도가 지나서 나왔다. 1990년도 전에는 자격증이 없으니 관련 법도 없었다. 무연고자의 경우는 충분히 아르바이트를 써서 대충 염했을 거라고 상상할 수 있는 상황이였다. 무연고자를 국가에서 정식 장의사 불러서 염할정도로 정부가 돈이 많지 않았던 관계로 충분히 있을 법한 이야기이다. 하지만 현재 의대생이나 인턴이 아닌 일반인이 아르바이트를 했다는 식으로 표현한 말들은 100프로 구라다.

결론을 내자면 시체닦기 아르바이트는 20세기 무렵 음지에서 있었을지도 모르지만 21세기 현재로서는 절대 없다.

단, 일부 응급실을 갖춘 병원에서 사고(자살 포함)를 당해 들어오는 시신의 안치를 담당하는 비정규직 직원이 있을 수 있다. 이들은 사고 시신의 뒤처리를 담당하는 인력으로 주로 노인들이 담당하는 경우를 직접 본 적이 있다. 다만 이와 같은 경우에도 시신에 수의를 입히는 것과 같은 정식 염습 절차를 진행하는 건 아니고 사고나 자살로 들어온 시신에서 겉옷과 속옷을 벗기고 피나 배설물을 닦아낸 다음에 시신을 하얀 천을 덮고 냉동칸에 집어넣는 것과 같은 간단한 절차를 하는 것이다. 이런 과정까지 유족이 참관하는 경우가 많지 않기 때문이다. 자살했거나 사고사 당한 사람의 속옷이 벗겨지는 장면까지 유족이 보진 않기 때문이다. 수의를 입히는 것과 같은 정식 염습절차는 정식 장의사 몫이다.

범죄현장, 특히 살해사건이 일어난 건물 내부를 청소하는 직업이나 길가에 치인 동물잔해를 치우는 일 또한 있는데 이런 일 역시 전문가가 처리하니 해봤다는 소리를 떠드는 일반인은 그냥 개구라에 지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