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반들이 탈놀이를 금지시키지 못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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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반들이 탈놀이를 금지시키지 못한 이유


2016. 11. 2.

탈놀이가 성행한 곳은 서울을 위시한 한양지역이 아니라 여러 지역이었다는 점을 주목하셔야 합니다. 이러한 곳에 있는 양반들은 서울에 있는 양반보다 세력이 적고, 몰락한 양반들도 여럿 있었습니다.

이곳에서는 그래도 예전의 영화를 생각하며 소리치고 다니던 양반들이 한둘 이상은 있었습니다. 그런 이들의 행동이 아니꼽기도, 그리고 반항심도 들고 해서 이를 제대로 이용해 먹은 것이 바로 남사당패였죠.

남사당패 등이 주축이 되어 탈놀이 등을 하는데, 이는 초기에는 종교적인 색채가 강하게 나타납니다. 이러한 것이 차차 해학의 미와 함께 현실 비판 등을 내포하게 되죠.

이들을 양반들이 막지 못한 이유는 간단합니다.

바로 이를 막을만한 양반들이 그다지 많지 않았던 것, 그리고 있었다고 해도 상민들의 놀거리마저 방해하면 백성들이 뭐라고 할까는 뻔하였지요. 게다가 가장 중요한 것은 그게 아니라 다른 것이었습니다.

바로 남사당패가 활동하던 곳은 마을의 시장이었습니다. 사람들이 많이 모이고 그러면서 벌이가 쏠쏠했으니 말이죠. 그리고 그렇게 함으로서 그쪽 시장의 번영도 이루어 졌으니 양반들이 이를 막지 못한 것입니다. 실제적으로 당시 경제적 상황을 생각해 보면 막는 것은 되려 손해였으니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