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3. 25.
데스 메탈 (Death Metal)을 직역하면 죽음의 메탈이라는 뜻이 된다. 문자 그대로 죽음을 주제로 하고 있는 헤비메탈의 한
장르이다.
간단히 말하자면, 데스 메탈은 스래시 메탈 (Thrash Metal)의 특징이 더욱 극단화된 장르이다.
초기에는 '좀 더 과격한 스래시' 정도로 알려졌지만 지금은 독자적인 장르로 자리잡았다. 대부분이 죽음이나 파괴, 사탄 찬양 등을 주제로 삼는다.
소음에 가까운 엄청 과격한 사운드에 멜로디를 알아들을 수 없는 구토식 보컬이 특징이다.
데스 메탈 그룹들의 이름을
살펴보자면, OBITUARY(사망기사), DEICIDE(신성모독자), AUTOPSY(검시부검), DEATH(죽음),
POSSESSED(접신들린), SEPULTURA(무덤), ATHEIST(무신론자), MORBID ANGEL(공포의 천사),
CARCASS(시체), CANNIBAL CORPSE(식인하는 시체), MASSACRE(살육) 등 데스 메탈밴드 이름은 하나같이 끔찍하다. 그리고
Scream of Death(죽음의 괴성), Sacrificial Suicide(헌신적인 자살) ,Cause of Death(죽음의 원인),
Symphonies of Sickness(병적인 교향악) ,Necromancer(시체 애호가) 등 노래 제목들도 끔찍의 정도를 넘어 구토와
잔학을 느낄 정도이고, 자켓 디자인 또한 해골은 보통이고 피와 살점이 난무하는 도축장이나 의학 해부실을 연상시킬 정도여서 심약한 사람에게는
악몽과도 같다.
그리고 가사는 대부분의 선량한 사람들이 듣기에는 참으로 신성 모독적이거나, 무지한 사람은 전혀 알아들을 수 없는 암호와 같은 의학용어로 이루어져 있다. 물론 사운드 역시 평범한 사람들의 수준을 넘어서, 헤비 메탈 팬들조차도 절레절레 흔들만큼 과격하다.(물론 아주 가끔씩은 멜로디어스한 부분이 없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도 데스 메탈밴드들은 나날이 탄생하고 그 확장세를 넓히고 있으며, 이들을 지지하는 팬들은 늘어가고만 있다. 도대체 무엇 때문일까? 단순한 유행? 아니면 어두운 의식의 발로? 아니면 악마의 사주를 받은 가증스럽고 사악한 행위? 그러나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후기 산업사회의 특성인 탈이념적인 현상으로, 또 공포의 극복이라는 또 다른 의지의 발현으로 이해 하고픈 것이다. 세상은 나날이 복잡해지고 세분화되고 있다. 모든 가치의 척도는 경제력과 정보의 소유로 귀결되어지고, 인간적인 요소와 존귀함은 물신주의와 과학의 이름아래 함몰되고 있다. 이에 인간이 받는 억압과 스트레스는 나날이 가중되어 가고, 지향성을 잃은 세대는 더욱 자신들의 세계로 몰입되어 간다.
로큰롤이 태동한 것은 첫 우주선인 스푸트닉의 발사와 같은 시기인 50년대 중반이다. 그리고 하드 록이 융성한 것은 월남전과 워터게이트라는
기성 지배층의 도덕적 위선이 폭로되었을 때였다. 또한 펑크가 위력을 발휘했을 때는 바로 오일쇼크로 인한 전세계적인 불황의 시기였다. 즉 새로운
장르의 태동은 인간의 존재가치에 위협을 주는 결정적인 요인이 나타나는 시기이며, 로큰롤의 발전은 인간 고뇌의 중첩과도 궤를 같이 한다고도 볼 수
있는 것이다. 그것은 또한 인간이 받는 압력과 스트레스에 상응하여 로큰롤은 더욱 복잡해지고, 더욱 과격해진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흔히들 로큰롤을 젊은 세대의 욕망의 배출구라고 하는데, 상실과 억압으로 의지를 봉쇄당한 청년층은 그 응집된
힘을 다른 경로로- 독재/권위주의 국가에서는 민중항쟁으로 발전되고, 그렇지 못한 국가에서는 또 다른 폭력이나 몰가치적인 일탈 현상을 보이는
것처럼 -해소한다는 것이기도 하다. 물질적 풍요가 범람했던 80년대는 낙관적인-퇴폐적이기도 한 L.A.Metal의 전성기였다. 그러나 점차
80년대의 거품경제의 허상이 무너지고, 지역 블록화와 국수주의적 경향이 심화되는 90년대의 청년층은 더 이상 섹스와 약물로 대변되는
L.A.Metal의 연약함과 퇴폐주의에는 만족할 수 없었고, 점차 상업화되어 가는 기존의 HM에도 안정을 찾을 수는 없었다. 그래서 그 대안으로
나온 것이 스래시 메탈 (Thrash Metal)이고 그 전위가 데스 메탈이다. 무자비한 음악적 폭력이라 할 수 있는 데스 메탈은 바로 그
때문에 현시대 젊은층의 욕구불만을 대신하고 해소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왜 하필 죽음인가? 라고 묻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글쎄 글쓴이로선 인간의 한계를, 곧 죽음을 벗어나고자 하는 또 하나의 의식의 발로로써 느껴진다. 즉 '태어나는 순간 죽는 것이다' 라는
절대명제를 안고 살아가는 인간과 그 인간의 의식에 잠재하고 있는 불가사의한 면을 파헤치는 작업을 함으로써 죽음을 극복하는 것이 데스 메탈이
아닐까 하는 것이다.
물론 이전에도 서구인들에겐 그러한 경향이 있었다. 그들은 화려한 대성당의 옆에 우울한 회색의 납골당을 세웠고, 웅장한 궁전의 벽화에 서슴없이 죽음의 무도(Danse Macabre)를 그렸다. 그리고 그런 것은 비단 서양인들만이 아닌 동양인들에게도 있었으니, 삶과 죽음의 경계는 황천이라는 강 하나의 사이만 있을 뿐이었고, 저승의 귀신은 인간세계에 출몰하고, 죽음은 망자와 어깨동무를 하고 데려간다. 곧 죽음은 친숙한 존재였던 것이다. 이런 전통은 중세까지 계속되었으나, 그러나 근세이후 계몽주의의 출현은 죽음을 인간과 동떨어진, 기피해야 할 존재로 떨어트렸다.
또한 과학은 죽음을 단순한 기계의 멈춤으로 비하시켰다. 그러나 계몽주의와 과학은 스스로의 모순에 빠져, 오늘날 볼 수 있는 인간존재의
무의미함을 더욱 확산시켰으니, 이른바 존재의 부조리에 다름아닐 것이다. 따라서 누구는 감히 이렇게 추론한다. 데스 메탈은 바로 우리가 잃어버린
전통에의 회귀이며, 진실한 존재를 찾고자 하는 노력이다라는 것을.
태초부터 인간은 무지와 공포,억압에
대항해 왔고 이것을 극복해 가는과정이 바로 역사이다. 데스 메탈은 바로 죽음에 대한 무지와 공포,억압을 새로운 각도로 파헤치는 작업이자, 또
다른 해탈의 방식일 것이다. 그것은 바로 타의에 의해 묶여져 있던 존재의 또 다른 해방인 것이다. 데스 메탈은 매우 폭이 좁은 음악이다. 어찌
보면 헤비 메탈보다도 더욱 완고한 음악인 것이다.
그들은 외골수적이나 순수성과 전문성을 그리고 야수적인 숭고함과 잔인함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양면의 칼과 같이, 혼돈 속의 질서와 같은 것, 폭력 속의 자비와도 같은 것이다. 물론 아직도 데스 메탈은 거칠고 조악한 음악이지만, 신선하다. 그 때문에 소외된 청년층의 불만을 삭이는 또 하나의 수단으로 존재하고 사랑 받는 것이다. 현재 데스 메탈계는 춘추전국의 시기이며, 기존의 밴드들과 계속해서 나올 신진들이 경합을 벌일 것이고, 다른 장르와 같이 자연도태의 시기를 맞을 것이다.
그 중에서 살아남는 밴드도 있을 것이고, 무의미하게 사라지는 밴드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좋은 밴드는 언제 어디서나 있다. 그들은 탁월한
연주력과 작곡 능력을 갖추고 있으며, 폭력적인 미학을 동반한 사운드를 만들어 내고 있다. 또한 범인의 상상력을 넘어선 비현실적인 광기의 세계를
묘사하여 또다른 해탈과 자아몰입의 세계로 인도할 것이다. 그리고 그 데스 메탈을 제대로 가꾸는 것은 밴드와 팬들의 몫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