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구소은 장편소설 '검은모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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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구소은 장편소설 '검은모래'


2014. 2. 3.

[도서]구소은 장편소설 '검은모래'

간만에 한국 소설인 <검은 모래>를 읽었다. 이 작품은 제1회 제주 4.3평화문학상 수상작으로서 올해 출판된 책이다. 작가인 구소은씨도 이전에 시나리오 등을 집필하였으나, 본격적으로 소설을 쓰게 되면서 <검은모래>를 첫 작품으로 하여 제주 4.3평화문학상을 수상하게 되었다고 한다. 문학상의 이름에서 볼 수 있듯이 제주도를 소재로 한 작품들을 심사한 것으로 보이며 <검은모래>도 제주도 우도 출신의 한 해녀의 4대의 이야기를 담아내면서 1910년부터 약 100년간의 우리의 역사의 굴레에서 살아간 가족사를 보여주고 있다. 주로 우리가 접한 가족사의 이야기는 부계 중심의 이야기가 많이 있지만, 제주도 해녀라는 특수성으로 4대의 이야기는 주로 모계를 중심으로 전개가 되고 있다.


 제주도 우도 출신의 구월은 검은 모래 해안을 끼고 있는 조일리의 마을에서 태어난다. 어머니로부터 물질을 배워온터라 구월도 금새 상급 해녀로서 일을 열심히 하면서 가정에 도움을 주려고 노력한다. 이 와중에 이웃 마을의 제법 넉넉한 삶을 살고 있던 박상지와 결혼을 하면서 부부는 금슬좋게 살아가게 된다. 당시(대략 1910년대가 조금 지난)의 넉넉한 삶이라고 해봐야 작은 어선 두척을 운영하고 있던 터라 구월은 여전히 남편의 배를 타고 물질을 하면서 가정을 꾸려가게 된다. 그래도 실력있는 구월의 덕분에 그 어려운 시대적인 상황에서도 어느 정도 생활을 영위하고 있던 이들에게도 서서히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운다. 당시 제주도에서 일본으로 배를 타고 가서 물질을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는데, 일본의 여객선이 배삯을 너무 높게 청구하여 박상지는 자신의 모든 재산을 바쳐서 조합을 결성하여 직접 여객선을 운영하게 되는데, 이것이 결국 일본 운수 여객선과의 경쟁에서 뒤지게 되고, 일본의 탄압에 의하여 결국 파산하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구월은 딸 해금과 아들 기영과 함께 남편을 따라 일본으로 건너간다. 거기에서 남편인 박상지의 매형이 자리를 잡고 있던 미야케지마라는 섬에서 구월의 가족은 다시 새로운 삶을 꾸려나가기 위하여 안간힘을 쓰게 된다. 구월은 해녀로서 미야케지마 주변에서 물질을 하고, 박상지는 매형과 함께 본토쪽에 가서 일을 한다. 일본의 섬이었지만, 작은 섬이었고, 제주도에서 온 해녀들이 많은 편이라 큰 차별은 없었지만, 여전히 고달프고 어려운 삶은 이들 가족에게 계속 이어진다. 그러다가 남편은 일제의 강제 징용에 끌려가서 나가사키에서 일을 하게 된다. 구월은 남편을 찾기 위하여 수소문을 하지만, 정확한 소식을 알 방법이 없었다. 그러다가 1945년 8월 6일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이 투하되고, 그 현장을 찾아간 구월은 남편의 흔적을 전혀 찾을 수가 없게 된다. 그래도 남편이 살아있다고 믿으며 자식들을 교육시키면서 이를 악물고 삶을 이끌어가는 구월. 그리고, 그러한 어머니를 바라보면서 같이 물질도 하고, 본토에서 공부를 하고 있는 기영의 뒷바라지를 하는 해금. 이들의 기구한 삶은 유전이 되는 것처럼 계속 이어진다.


 한편 해금은 기영을 가르치던 한태주라는 청년을 만나 서로 사랑을 하게 되지만, 한국에서 6.25전쟁이 발발하자 자원을 하면서 하룻밤을 같이 보내고는 영영 기약할 수 없는 이별을 하게 된다. 해금은 다시 어머니가 있는 미야케지마로 돌아오고, 거기에서 아들인 건일을 출산하게 된다. 하지만, 한태주는 전쟁이 끝났어도 돌아오지 못하고, 아들인 건일을 위하여 평소 친분이 있던 마츠가와 선장의 아들인 후쿠오와 결혼을 하게 된다. 어머니인 구월이 아버지를 그리다가 결국 돌고래에 홀려서 바다에 익사한 채로 죽은 이후 기댈 곳이 없던 해금은 자식에게 마츠가와라는 성을 물려주기 위해서. 다행히 후쿠오는 청각장애를 가진 사람이었지만, 건일을 자신의 친아들인양 아껴주며, 해금과 함께 성실히 일을 하면서 가정을 꾸려간다. 하지만, 건일은 자신이 일본에서 한국인의 피를 가진 사람으로 살아가기에는 너무나 어렵다는 현실을 깨닫고, 철저히 일본인으로 위장하면서 살아가기로 결심한다. 켄(건일의 일본식 이름)은 학업에 정진하여 미국으로 유학까지 가고, 그러한 켄을 후쿠오와 해금은 말없이 뒷바라지를 해준다. 그러나, 켄의 입장에서는 어머니인 해금으로 인하여 자신이 한국인임이 밝혀질까봐 항상 노심초사하면서 해금을 멀리한다.


 미국 유학중에 만난 메구미와 결혼하여 미유라는 딸을 얻게 된 켄은 일본에서도 운이 좋아서 대학 강단에 서게 되지만, 그가 꿈에 그리던 교수 자리에는 결국 오르지 못한다. 더구나 미유는 외할머니인 해금과 자주 만나기 시작하면서 켄은 이로 인하여 미유가 한국인의 핏줄을 이어받은 사람(쿼터가 아닌 하프)이라는 사실을 알게 될까봐 더욱 신경이 곤두서게 된다. 결국 켄은 해금과 심하게 말다툼을 벌이고, 그것을 몰래 엿보게 된 미유는 자신이 하프(half라는 뜻을 떠올리면 된다.)였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혼란스러워한다. 또한 이러한 미유의 내력으로 인하여 극우 세력을 집안의 내력으로 가지고 있던 남자친구와도 헤어지게 된다. 이러한 혼란을 겪지만, 오히려 미유는 아버지인 켄과는 달리 자신이 한국인의 피를 이어받은 사실을 극복하고자 노력을 한다. 비록 프랑스로 유학을 떠나면서 이러한 현실을 외면하려고 하였지만, 결국 이 현실을 받아들이고 스스로 극복하기 위하여 귀국하여 외할머니인 해금과 더욱 가깝게 지내게 된다.


 해금은 자신을 외면하려하는 아들 켄과 자신으로 인하여 남자 친구와 헤어진 손녀인 미유를 보면서 착잡한 심정을 감출 수 없었으나, 그러한 모든 고통을 혼자 짊어지고 살아가겠다는 식으로 미야케지마에서 꿋꿋이 살아간다. 그러나, 미야케지마의 화산 활동으로 인하여 결국 아들의 집에서 기거하면서 아들과의 갈등은 점점 커지게 되지만, 해금이 암에 걸렸다는 사실을 알고 나서 뒤늦게 켄은 후회를 하기 시작한다. 자신이 그토록 과거의 가족사를 숨기면서까지 얻고자 했던 모든 것들이 부질없음을 느꼈던 것이다. 켄은 눈물을 흘리며 해금에게 사죄를 하지만, 해금은 그저 그런 아들의 모습을 보듬어 주면서 그저 서로 먼길을 돌아서 다시 만난 것 뿐이라고 말하고, 모든 갈등을 해소하게 된다. 결국 암으로 사망한 해금의 뒤를 이어 미유는 할머니가 운영하던 미야케지마의 '아리수'라는 카페에서 할머니의 체취를 느끼면서 새로운 인연을 예고하는 모습으로 책의 마지막을 장식한다.


 이 책을 읽는 내내 두가지의 굵은 선이 진행되는 느낌이었다. 비록 책 한권이라고 하지만, 4대의 이야기라는 하나의 선과 동시에 이어지는 우리 대한민국의 근현대사라는 선이 동시에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어떻게 보면 역사라는 거대한 시간의 속에서 바라본다면 희미하게 느껴질 수 있는 한 가족의 이야기. 일방적으로 역사의 소용돌이에 의하여 그 운명이 좌우되는 가족의 모습을 보면서 당시의 우리의 모습을 담아내려고 했던 것은 아니었나 싶다. 제주도 해녀의 이야기 이전에 우리 민족의 4대에 대한 이야기라고 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라고 생각된다. 그리고, 구월과 해금에서 느낄 수 있는 어머니로서 억척스러우면서도 자애스러운 모습으로 자식들을 보듬어주는 모습은 오랜만에 가슴속에서 아련함이 느껴질 정도였다. 그리고, 현재 일본에서 살고 있는 재일 동포의 아픔까지 낱낱이 밝히고 있는 이 소설은 한 가족의 애닯은 이야기이자 우리 민족의 현재의 모습까지 잘 보여주는 작품이라고 생각된다.


 최근에 근현대사 역사책을 읽고 나서 바로 <검은모래>라는 소설을 읽었는데, 비슷한 해방 전부터 현재까지의 역사를 접할 수 있어서 묘한 느낌이 들었다. 소설이지만, 그 소설의 이야기의 배경이 되는 대한민국의 근현대사와 애증의 일본과의 관계를 느낄 수 있었던 것 같다. 애틋한 어머니의 모습과 거기에 반하여 마음을 닫아버리려는 아들의 모습, 또 그 아들과 달리 현실을 극복하려고 애쓰는 손녀의 모습은 시종일관 눈을 책에서 뗄 수 없게 해주었다. 그리고, 책이 소재로 초반에 등장한 검은 모래는 어머니들(구월과 해금)의 고향의 모습(제주도와 제2의 고향인 미야케지마)을 상징하면서 고향에 대한 향수와 그리움을 표현하고 있는 데 반하여, 미유가 할머니 해금의 카페에서 커피를 내리면서 남은 검은 모래처럼 보이던 커피 가루를 통하여 인생의 모습을 반추하는 장면도 인상적으로 느껴졌다. 개인적으로 가슴에 찡함을 느끼게 해주었던 책이라고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