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올의 똥 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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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올의 똥 철학


2016. 4. 13.


아침에 일어나서 제일 먼저 해야할 일은 똥을 눗는 일이다. 하루에 한번 새벽에 장을 비우는 작업은 삶의 대원칙이 되어야 한다.
그것은 밥세끼를 원칙으로 삼는 것과 똑같은 것이다. 잘 먹기만하고 잘 쌀줄을 모르는 자는 잘 먹는 것이 아니다. 먹는 것은 싸는 것에 의하여 결정되는 것이므로 잘 싸지 못하면 잘 먹을 수 없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우리 일상 삶에 가장 중요한 것은 맛있는 밥이라기 보다는 맛있는 똥이 되어야 할 것이다. 입에는 혀라는 미담의 감지체계가 있어 맛을 알지만 똥구멍은 어떻게 맛을 아는가? 세인들은 하나만 아고 둘은 모른다. 입구멍에만 세밀한 미각이 있는 줄 알지만 똥구멍에서도 세밀한 미각이 있는 것이다. 



똥구멍처럼 민감하고 영민하며 강인한 것이 없다. 항문괄약근이나 직장, S결장은 단지 근육의 체계가 아니다. 몸이라는 소우주에서 대우주로 나가는 출구를 의미하며 그 출구는 인간의 모든 희로애락과 느낌을 담고 있는 것이다.



상식적으로 똥에는 다섯가지 조건이 잇다. 그 첫째는 냄새(Smell)다. 똥을 눌 때 제일
먼저 感知되는 것은 냄새라 할 것인데, 좋은 똥, 맛있는 똥일수록 냄새가 나지 않는다. 악취가 강할 수록 일단 좋지 않은 똥으로 간주해야 한다. 좋은 똥은 냄새가 은은하며 그 은은한 냄새는 나의 체질에 맞게 조율되어 있는 것이므로 전혀 불쾌감이 없고 그
특성은 자기가 비교론적으로 알고 있어야 하는 것이다. 악취는 악취의 형태에 따라 내가 지난날 무엇을 했으며 무엇을 먹었는가 잘 생각해보면 그 특성이 분류가 될 것이다. 하여튼 냄새가 나지 않는 똥이 좋은 똥이다.



두 두째는 색깔(Color)이다. 색깔 역시 그사람의 체질과 개인적 특성에 따라 차이가 있으나 샛노랗거나 시꺼멓지 않은 그 누리끼리한 中庸의 색이 좋은 똥이다. 똥이 암흑색이 되어 나올 때는 출혈을 의심해야 하다. 張景岳은 변혈에 近血과 遠血이 있다했는데 近血이란 항문근처나 직장에서 나오는 피로 피색이 유지되는 것이나 遠血이란 항문에서 먼 곳, 위나 십이지장, 소장등에서 나오는 출혈로서 그 피가 장을 통과하는 동안 소화된 것이다. 


그래서 시꺼멓게 된다. 변혈을 시험해보는 손쉬운 방법은 새까만 똥위에 옥시풀(과산화수소)을 떨어뜨려보아 상처에 바른 것처럼 부글부글 끓으면 그것은 出血이 있다는 증표가 되는 것이다.
왜 빨간 홍당무를 먹으면 빨간 똥이 안나올까? 왜 노란 호박을 먹으면 노란 똥이 안나올까? 


사실 모든 음식의 색색대로 똥도 색색으로 나온다면 똥눗기도 조금 재미있을 것인데 왜 모두 먹은 것과 관계없이 같은 누런 색이 되어 나오는가? 그 이유는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가장 결정적인 것이 담즙(bile juice)이다. 십이지장에 개구하는 담즙이 모든 음식을 누런 색깔로 만들어 버리는 장본인인 것이다.



그 세째는 농도(Density)다. 똥이 묽은 것을 우리는 설사라 하고 똥이 아주 된 것을 우리는 변비라 한다. 체내의 수액대사와 대장의 수분흡수와 관련있는 복잡한 매카니즘의 결과일 것이다. 농도 역시 중용을 원칙으로 하는 것이나 체질에 따라 좀 묽은 것이 정상인 사람, 좀 된 것이 정상인 사람의 차이는 있을 것이다. 


허나 체질을 불문하고 아주 묽거나 아주 된 것은 다 좋지 않은 것이다. 자기 몸에 맞는 똥의 농도를 잘 측정해 두어야 한다. 허나 건강하고 액티브한 삶일수록 똥은 마른 편에 가깝다. 묽은 것은 좋지않은 것이다.



그 네째는 형태(Shape)다. 똥은 어떠한 경우에도 잘게 째질째질 빠져나오는 똥은 좋지 못한 것이다. 똥의 가장 아름다운 형태는 흰떡방아에서 굵은 떡가래가 일정하게 길게 쭈욱쭉 빠져나오듯이 끊어지지 않고 두꺼우며 그 농도가 적당하고 누리끼리하며 냄새가 나지 않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그 다섯째 조건은 공복의 느낌(Feeling of Emptiness)이다. 똥은 반드시 눗고 난 다음에 직장이 깨끗이 비워졌다는 느낌을 가질 수 있어야 한다. 그렇게 똥을 눗고 나면 허리가 우선 가쁜해지도 열이 있을 때는 열이 가시며, 골치아플 때는 머리가 개운해지고, 삭씬이 쑤실때는 삭씬쑤시는 것이 사라진다. 


관절염의 증후에도 똥이 깨끗이 빠지면 무릎아픈 것이 한결 가벼워진다. 그리고 이 공복의 느낌은 밑닦는 현상과 관련이 있는데, 똥이 아름다운 형태로 깨끗하게 빠지고 끊어지지 않으면서 배에 공복감을 줄 때는 대체적으로 밑닦을 필요가 없다. 항문에 똥이 지질지질 묻는다는 사실은 그 똥이 아름답지 못하고 맛있지 못하다는 증거인 것이다. 개나 고양이를 보아 알 수 있듯이 그들은 똥을 눗고 밑을 닦지 않는다. 


밑을 닦는다는 행위는 문명의 소산인 것이다. 똥은 똥으로서 완결되는 것이며 항문의 오돌도돌한 최후근육은 똥이 묻지 않고 빠질 수 있도록 원래 설계된 것이다. 그런데 대부분의 인간은 밑을 닦아야 한다. 그것은 의상에 똥이 묻기 때문인데 결국 의상이 생기고 난후 인간은 밑닦는 동물로 변모한 것이며 아마도 이것은 화식과 관련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밑닦을 필요없이 완벽하게 빠지면서 공복감을 주는 똥, 이런 똥이야말로 존재하는 기쁨의 극상일 것이다. 완벽한 섹스도 인간에게는 중요한 기쁨이지만 나는 완벽한 배변이야말로 완벽한 섹스보다 더 어려운 몸의 예술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섹스는 배변에 비해 문명의 장난이 더 개재되는 것이다.



라오쯔(老子)는 "虛基心, 實基腹'이라 했는데 나 도올은 말한다.:"虛基腹, 實基心"하라고! 대나무가 힘이 있는 것은 그 속이 비어있기 때문이다. 인간의 中.下焦가 힘이 있을려면 直腸이 비어야 한다. 직장이 비어있을 수록 인간의 허리는 강해지는 것이다.



아름다운 여인들이여! 얼굴을 치장하려 하지마라! 그대의 항문을 치장하라! 그대의 뱃속과 항문을 아름답게 가꿀 것이다. 그리하면 화장품이 무용지물이 될 것이다. 똥의 최종결론은 中庸(hemeostasis)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