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세자 죽음의 미스테리
본문 바로가기

사도세자 죽음의 미스테리


2016. 1. 9.



임오화변의 원인을 노론과 소론의 갈등, 이른바 당쟁의 관점에서 바라봐 노론에 맞선 사도세자가 희생되었다고 한 이덕일 씨(사실 이런 주장을 이덕일 씨가 제일 먼저 한 것은 아닙니다)의 주장은 요즘은 그리 설득력 있게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혜경궁 홍씨의 '한중록'뿐만 아니라 사도세자의 광증을 언급한 기록은 여럿입니다. 그리고 홍봉한은 세자를 가능한 한 보호할 수 있는 데까지 보호하다가 안 되니 세손만은 지켜야 한다는 심정으로 사도세자의 죽음을 방관한 것으로 보입니다. 나경언의 고변이 있기 전까지 세자의 비행을 조정 대신뿐만 아니라 저잣거리의 백성들도 다 아는 상황이었는데, 정작 아버지인 영조만 몰랐다는 것은 노론과 소론을 가리지 않고 세자의 비행 소문이 영조의 귀에 들어가지 않게 막았다고밖에 볼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세자가 왕위 계승권 1순위인 상황에서 굳이 세자를 공격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죠. 그리고 영조의 말도 가려서 들어야 합니다. 그는 세자를 미워해서 죽였으되 역모를 저지른 죄인으로 만들 생각까지 없었고, 세손에게 최대한 부담을 주지 않으려고 했습니다(물론 정조 입장에서는 그게 아니었겠지만 말이죠).


영화 '사도'가 사료에 상당히 충실하게 사건을 재구성했기에 관심 있으신 분들은 영화를 보시기 바랍니다. 다만 영화에서는 세자의 살인 행각을 단 한 번만 묘사했기에 세자를 어느 정도 옹호하는 느낌은 있습니다. 실제로 세자는 꽤 많은 살인을 저질렀습니다. 그리고 영화는 국문학자 정병설 교수의 '권력과 인간'과 박시백 화백의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을 상당히 많이 참고했으므로 이 두 책을 보시는 것도 추천합니다. 정병설 교수는 이덕일 씨를 비판하는 글을 쓴 일이 있는데, 그 글에서 이덕일 씨가 '태묘'라는 단어가 종묘를 뜻하는 줄도 몰라서 태조의 무덤으로 해석하는 등 사료 해석에 심각한 문제를 지녔음을 폭로하기도 했습니다. 애초에 근대사 전공인 이덕일 씨가 고대사, 중세사 가리지 않고 전문가 행세를 한다는 게 당혹스러운 일이고, 그런 이덕일 씨의 음모론적 사관이 대중매체와 대중에게 큰 영향을 발휘하는 게 개탄스러울 정도입니다.


독살설에 휘말린 조선시대 왕들

조선시대 최악이거나 안타까운 왕족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