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결혼 하는 베트남 여성들의 속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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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결혼 하는 베트남 여성들의 속마음


2024. 4. 17.

 

1980년대까지만 해도 한국 사회에서는 국제결혼에 대해 생소했으나 1990년대 초반 농촌 총각들의 자살 문제, 2000년대의 저출산 문제, 2010년대에서는 대한민국의 인지도 상승 및 해외여행 증가로 인한 국제결혼의 확산 등으로 국제결혼에 대한 비율이 이전보다 정가했다. 2020년대부터는 업체에 돈을 주는 것을 통한 중매결혼인 매매혼이 감소하고, 유학 및 출장 등으로 인종간 연애를 통한 연애결혼이 증가하고 있다.

2022년 기준, 한국 남자들은 베트남, 중국, 태국 순으로 결혼을 많이 하고 한국 여성은 미국, 중국, 캐나다 순으로 결혼을 많이 한다. 통계상으로는 한국 여성이 베트남 남성과 결혼을 캐나다 남성보다 많이 하지만 이는 베트남 여성이 한국 남성과 결혼 후 국적을 취득, 이혼한 다음 다시 베트남 남성과 재혼하는 경우이기에 제외한다. 또한 법무부에서 공식으로 해명하기도 했다. 법무부 또한 국제결혼 통계의 오류나 위의 사례와 같이 통계상 맹점이 많으므로 남녀 모두 위에 해당되는 지표나 순위를 그대로 믿으면 곤란하다. 참고 정도로 보는 편이 타당하다.



국제결혼 역사를 살펴보면 통상적으로 수로왕과 허황옥의 결혼이 한국 최초의 국제 결혼으로 여겨진다. 이는 한국에서는 통상적으로 한반도 내의 단일 민족간 결혼을 국제 결혼으로 부각하지 않아서이다.
이후 중국인 혹은 일본인과의 국제 결혼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지만 한국 내에 기록되는 경우가 거의 없어 사례를 찾기 힘들고 지도자층의 국제 결혼도 특수한 경우에서 이루어진게 대다수이다.

본격적으로 국제 결혼이라는 말이 한국에 자리잡기 시작한 것은 19세기 말 서양에 개항을 거치며 이후 외국과의 직접적인 교류가 많아지면서고 그전까지는 한국 내에서 크게 주목받지 못했다. 어린 시절부터 결혼 상대를 정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개항을 하며 자유혼이 늘어나면서 국제 결혼 또한 생기기 시작했다.

일제강점기에는 내선일체 사상에 따라 일본인과 조선인의 결혼을 내선결혼이라는 용어로 불렀다. 이는 조선과 일본은 한 나라이니 국제 결혼이 아니라는 것. 일본 제국은 상황에 따라 조선인과 일본인(내지인)의 결혼을 장려하기도 하고 비판하기도 했다. 일본인 남성과 조선인 여성 간 결혼의 경우 일본에서 조선으로 건너온 상인이나 관료와 조선인 여성 간에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았고 조선인 남성과 일본인 여성 간의 결혼은 조선인 유학생과 일본 현지 여성 간에 이루어지는 경우가 대다수였는데, 특이한 점은 후자에 해당하는 경우가 전자보다 훨씬 많았다는 것이다.

독립 후에도 국제 결혼은 계속 되었으나 이는 대다수 자유혼을 통해서 소수만 진행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국제 결혼이 대대적으로 대두되기 시작한 것은 농촌 인구 유지를 위해 농촌 남성과 동남아 여성 사이의 매매혼이 급증하면서부터다.

정확한 사유는 다음과 같은데, 조선의 근대화 이후 이촌향도 현상으로 농촌의 인구는 점진적으로 감소하였고, 이렇게 줄어든 인구 속에서 결혼하지 않은 남성의 배우자가 부족해진 것.

1980년대, 인구가 줄어가는 농촌을 살리기 위해 국가에서 결혼 주선 사업을 통해 도시에서 일하는 여성과 농촌 총각 사이의 결혼을 주선했다. 그러나 사회 인식의 변화에 따라 결혼의 필수성이 감소하고, 도시 여성들은 도시와 농촌의 인식 및 인프라 차이, 소득 수준의 차이, 직장 문제 등으로 농촌 총각들과 결혼을 기피하여서 농촌 총각의 혼인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었다.

결혼 적령기인 20대 중반~20대 후반에 결혼하지 못하고 나이 30대 초반, 심하면 35세를 넘기는 일이 많이 발생하였다. 이들 농촌 총각들은 시골의 폐쇄적인 특성상 결혼을 강요당했다.

이런 저출산 고령화 및 농촌지역의 인구감소와 농촌 고령화에 대해 농촌 지자체 및 시민사회단체에서 문제 해결책을 모색한다. 그러던 중 문제 해결책으로 국제결혼이 떠올랐고, 1999~2000년에 농촌 총각과 동남아 여성들의 매매혼을 알선하는 국제결혼 업체들이 등장한다. 2000년대에 업체를 통한 국제결혼 건수는 정점을 찍었가 점차 감소한다.

당시 업체를 통한 국제결혼이 동남아를 중심으로 형성되어 있는 이유는 초창기 시스템이 만들어지던 때는 비행기값이 지금보다 훨씬 비쌌고, 결혼에는 종교적인 문제도 있었고, 한국이 아직 중진국이었다. IMF 사태 직후였기 때문에 경제적으로도 나빴다. 그렇기에 거리도 멀고 취항지도 적은 곳보다는 종교적인 문제도 없고 소득 수준도 낮은 동남아를 선택했다. 그리고 한 번 시스템이 완성되면 실패 위험 때문에 다른 길을 개척하지 않는다. 그래서 현재까지도 국제결혼 업체 대부분은 동남아 중심이다. 애초에 남아시아(인도)는 남초고, 서아시아는 이슬람이라 결혼이 성사되기 쉽지 않다. 2010년대 ~ 2020년대 들어 중앙아시아, 동유럽 국제결혼도 늘어나고 있지만 동남아만큼 활성화되지 못했다.

2020년대 들어서는 코로나19의 영향으로 2021년 1만 3천여건까지 줄었다가 코로나19가 진정되고 해외여행 규제가 다시 풀리면서 2022년에는 국내 전체 결혼 건수가 감소하는 와중에도 국제결혼은 1만 6천여건으로 다시 증가했다. 그러나 증가한 국제결혼 건수도 정점에 달했던 2007년의 3만 7천여건, 코로나19 직전였던 2019년 2만 3만여건에 못 미쳐서 실질적으로 다시 상승세라고 보기에는 어렵다. 결정적으로 지자체에서 농촌 총각 장가보내기라는 명목으로 진행하던 국제결혼 지원사업은 여러가지 문제점 때문에 사라지는 추세이다.



대개 전문적인 국제결혼 업체를 통해 주선된다. 한국인 남성이 업체에 지불하는 비용은 생각보다 높다. 업체에 따라 다르지만 2013년 기준 국가별로 베트남은 1,000(±200)만원, 필리핀은 1,300(±200)만원, 우즈베키스탄은 거의 2,000만원이다. 만만찮은 가격이지만 대개는 신랑 출국, 입국 항공권 비용 + 현지 체류비 + 현지 결혼식 비용 + 신부 국내입국 항공권 비용 + 신부 한국어 교육비용 + 현지업체 신부 소개비용을 포함하므로 국내결혼보다 낮다. 신부값에는 처가에만 아니라 현지 업체에 주는 돈도 포함한다. 당연하지만 한국 업체들이 현지에 사무실을 열고 여성의 정보를 취득하지 않는다. 보통은 현지 업체들한테 정보를 제공받은 후 한국 남성한테 소개한다.

이미 국제결혼을 한 여성들 커뮤니티에서 중매를 서기도 하는데 아무래도 남편의 상황 상 주변에도 결혼 못 한 총각들이 많아 이런 일이 흔하다.

대개는 현지에 3종류의 마담이 있다. 현지에서 직접 여자를 픽업하는 새끼마담, 이들을 관리하는 중간 마담, 그리고 한국 에이전시와 직접 컨택하며 이들 마담들을 총괄하는 왕마담. 현실적으로 이들 마담을 통해야 국제결혼을 한다.

보통은 인터넷 사이트에 나오는 예쁜 여성을 보고 국제결혼을 결심하는데 이 여성들과 결혼하는 것은 굉장히 어렵다. 이유는 다음과 같다.

1. 업체는 보통 현지에서 최대한 많은 여성들을 보도록 유도한다. 이걸 나쁘게 보지만 미팅을 기다리는 여자들은 심한 경우 7~8시간씩 걸려서 미팅을 한다.(베트남 같은 경우) 그런데 그렇게 와서 남자 얼굴도 못보고 갈 수 없다. 그렇게 되면 현지 새끼 마담들이 영업할 수 없다. 고로 맘에 정해둔 여성이 있다고 해도 최대한 많은 여성을 보게 한다.

2. 업체에 걸린 여성들은 업체가 관리하는 여성이 아니라 마담이 관리하는 여성이다. 내 눈에 예쁘면 다른 사람한테도 예쁘다. 현지 마담이 당신과 계약한 국제결혼 정보업체하고만 거래하지 않아서 이 여성들은 다른 업체, 다른 남성들과도 선을 본다.

3. 좋지 않은 경운데 여성들이 현지 마담한테 돈을 빌린 경우다. 이 경우 마담한테 돈을 갚아줘야 한다.

4. 베트남은 큰 맞선 장소가 있고 거기에 여러 업체들이 와서 돌아가면서 본다. 거기서 예쁜 여성이 있으면 업체에서 사진 찍어 올린다.

그러니까 업체에서 소개하는 여성 회원들은 절대 결혼할 의사를 가지고 업체와 회원 계약을 하지 않는다. 단지 이 얼굴을 한 여성이 국제 결혼을 할 생각이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정도다. 따라서 100%여성 회원을 본다는 보장은 없고 실제로 가 보면 마담과 업체간 알력 다툼도 있어 결혼 추진이 쉽지 않다.

여성들도 멀리서 와 한 번 맞선 시장에 오면 최대한 많은 남성을 보려고 한다. 한국에서 지인들을 통해 보는 소개팅, 맞선과 달리 극도로 상업화해 있다. 자본이 개입하고 구조화한 사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