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창의 불곰 김동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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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창의 불곰 김동영


2017. 10. 13.

김동영
(1936∼1991)


1936년 12월 23일 경상남도 거창군에서 태어났다. 1960년 동국대학교 정치학과를 졸업한 뒤 부산동성고등학교에서 교편을 잡았으며, 그 해 일어난 4.19 혁명 때 학생운동에 참여하기도 하였다. 그 뒤 김영삼의 비서관으로 정계에 입문하였다.

1973년 제9대 국회의원 선거에 신민당의 공천으로 경상남도 거창군-산청군-함양군 선거구에서 출마하여 민주공화당 정우식 후보와 동반 당선되었다. 1978년 제10대 국회의원 선거에도 신민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여 민주공화당 노인환 후보와 동반 당선되었다.

그러나 1980년 전두환의 신군부가 집권하면서 그는 국회의원직을 상실하였을 뿐만 아니라 정보기관에 끌려가서 고문을 당하였다.

1981년 김영삼 계열 인사들을 중심으로 하여 민주산악회가 결성될 때 이민우 회장 밑에 최형우와 함께 그 부회장이 되었다. 1984년 김영삼 계열과 김대중 계열이 합동하여 민주화추진협의회를 결성할 때 상임운영위원회 위원으로 활약하였다. 그 해 정치규제에서 해제되었으며, 해금 인사들을 중심으로 신한민주당을 창당할 때 창당준비위원 및 정무위원으로 활약하였다. 


1985년 신한민주당의 공천으로 제1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여 민주정의당 권익현 후보와 동반 당선되었다. 1986년 신한민주당 원내총무로서 국회 국방위원회 회식 난투극 사건에 연루되었다. 1987년 김영삼과 김대중 등이 통일민주당을 창당할 때 그 부총재가 되었으며, 헌법개정을 위한 8인정치회담 통일민주당측 대표(나머지 3인은 박용만, 이중재, 이용희)로 참여하였다. 1988년에는 제1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경상남도 거창군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1989년 김정수의 뒤를 이어 통일민주당 사무총장에 임명되었다.

1990년 민주정의당, 통일민주당, 신민주공화당이 합당하여 통합여당인 민주자유당이 되자 노태우 대통령에 의해 정무제1장관이 되었다. 

세간에서 최형우와 함께 대표적인 상도동 가신그룹으로 꼽히며 "좌동영 우형우"로 불렸다. 불곰이라는 별명이 보여주듯, 행동으로 말하는 정치인이었으며, 행동력으로는 최형우 못지 않았다. 

그러나 김영삼의 대통령 당선을 지켜보지 못한 채 1991년 8월 19일, 지병인 암으로 별세했다. 그가 세상을 떠나자 김영삼은 빈소로 달려와 영정 앞에서 "이 문디 자슥아, 저승에 무신 맛있는 떡이 있다꼬 이렇게 빨리 가노!!" 라고 고인을 책망하며 통곡했다고 한다.또한 국회장으로 열린 영결식에서 추도사를 읽다가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김태호 새누리당 최고위원이 그의 비서관으로 정치에 입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