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선비를 닮은 곧고 속이 빈 대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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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선비를 닮은 곧고 속이 빈 대나무


2017. 8. 12.

"옥은 부서져도 그 빛을 잃지 않고, 대나무는 불에 탈 지언정 그 마디가 휘어지지 않는다."
- 관우, 삼국지연의-

"좌상께서 전하랍니다. 대나무는 곧으나 기둥으로 쓸 수 없다고."
- 황철웅-



대나무
볏과의 풀(초본식물)의 일종인 식물. 나무(목본식물)와 달리 제대로 된 목질 없이 키를 키우며, 자라면서 굵어지지도 않고, 꽃을 잘 피우지 않는다. 흔히들 나무라고 하지만 이 녀석의 정체는 풀이다. 하긴 한자로도 '나무 목(木)'자 부수의 글자가 아닌 '대 죽(竹)'자 그 자체이기도 하고. 물론 확실한 건 아니고 대체로 풀이라고 본다. 하지만 사용 용례를 따지고 들어가면 나무이기도 하니.

동아시아에서 온대 기후와 냉대 기후를 가르는 식물이기도 하다. 보통 북방한계선은 섭씨 -3도로 알려져 있는데기준상 온대기후와 냉대기후의 기준점에 있는 식물이기 때문이다.

참고로 한국에서 이론상으로 대나무의 자생이 가능한 곳은 태안 반도-추풍령-대관령을 잇는 선의 아래라고 한다. 하지만 온난화와 도시화 등을 고려하면 대나무 자생 북방한계선은 도림천 에서 금강산까지라고 봐도 무방할 듯하다. 심지어 도림천에서 한참 멀리 떨어진 북한산 일대에서 대나무를 키운다는 이야기도 있다. 교과서보다 온난화가 그만큼 빠르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제주도에서만 자라던 귤을 이제는 본토에서까지 볼 수 있으니 이 녀석의 북상을 그냥 방관하기는 곤란하다. 실제로 환경주의자들은 서울에 대나무가 자란다는 사실을 온난화의 증거로도 내놓는다. 그런데 추위를 견디는 것은 대나무 종류 나름이고 서울에서 자라는 대나무가 있을지도.

참고로 2010년 지역별 산림기본통계에 따르면 대나무 숲이 전체 산림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0.11%에 불과하며, 전국 죽림 가운데서도 전남과 경남 지방이 84%를 차지한다. 반면 서울, 경기, 강원도, 인천 등 중부 지방에는 숲이 전혀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한민국에서 좀 대나무다운 대나무는 굵고 긴 왕대, 가늘고 짧은 솜대, 굵고 짧은 맹종죽(죽순대) 등이 있으며 이중 맹종죽은 거의 거제에만 일본에서 들여와 있다. 그 외에도 화살의 재료로 국가에서 아주 중요하게 여기던 이대와 해장죽(원산지 일본), 쌀과 돌을 나눌 때 쓸 조리를 만드는 조릿대, 그리고 한라산을 점차 잠식해가는 통에 문제인 제주조릿대 등이 있다.


동남아나 열대지방에서 온 사람들은 한국의 대나무를 보면 너무 아담하다고 하는 때가 있는데, 그런 열대지방에 나는 대나무 가운데는 전봇대 만한 것도 있어서다.




꽃을 거의 안 피우는 식물이기도 하다. 어쩌다가 한 번씩 대나무에서 대꽃이 피는데 일품이다. 한데 꽃이 피면 주변의 모든 대나무가 꽃을 동시에 피우며 피우고 얼마 되지 못해 집단으로 죽는다. 대나무를 기르는 농가에선 이 현상을 개화병이라는 병으로 부르기도 한다.
하지만 사실은 대나무는 주기적으로 꽃을 피우는 식물이 아니라 환경에 따라 엄청나게 꽃을 안피우는것 뿐이다. 꽃을 피운다고 해서 대나무가 죽는것이 아니라 단순히 꽃을 피우는 간격이 너무 길어서 그렇게 보이는것 뿐이다. 이건 대나무는 땅속줄기를 가진 식물이기 때문에 땅 밖에 드러난 걸로 보면 여러 그루로 보이지만, 수많은 대나무숲이 실제로는 단 몇 개의 개체인 때가 많아서다. 잡초를 뽑을 때 많은 것처럼 보이지만 한 뿌리로 연결된 몇 개만의 개체인 경우를 생각하면 편하다.

이렇게 꽃을 피우는 건 대나무 품종과 기후에 따라 다르지만 약 50년 주기를 두고 꽃을 피우며, 한번에 대나무 숲 전체가 꽃을 피워 씨앗을 엄청나게 떨어뜨린후 죽어 완전히 세대를 물갈이 한다. 죽은 대나무들은 썩어 다음 세대의 양분이 되고, 씨앗은 새로운 대나무로 자란다. 다만 실제로 다음 세대로 발아하는데 성공하는 씨앗은 매우 적고 대부분 야생 동물과 곤충의 소중한 먹이가 된다. 한 뿌리에서 수십 수백씩 자라는 대나무의 특성을 생각해보면 생존?률이 높았다가는 온세상이 대나무숲이 되는 참사가 벌어질 것이기도 하고.

대한민국 군대에서 영관급 장교의 계급장은 위관급 장교의 다이아몬드 계급장에 9개의 대나무잎을 붙인거다. 하필 대나무잎인 이유는 대나무처럼 곧고 올바른 장교가 되라는 뜻이기 때문.

주로 땅속에서 뿌리로 죽순을 내어서 서식지를 늘려가는데, 이 죽순이 유명한 요리 재료다. 하지만 하루에 100cm이상 자라는 경우도 있을 정도로 워낙 쑥쑥 자라는지라 타이밍을 잘 잡아야 한다. 새벽에 순이 자라면 해질녘에는 이미 무럭무럭 자라서 못 먹는다.

이런 생육 때문에, 비온 뒤에 여기저기서 죽순이 금세 돋아나 자라나는 것에 비유하여 여기저기서 무언가가 마구 출현하는 걸 두고 '우후죽순'(雨後竹筍)이라 한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괴담 중에 연쇄 살인범이 대나무밭에 있던 공터에 사체를 묻어두고 한 달 뒤에 가 보니, 그곳의 죽순이 자라 키가 커서 사체가 대나무 중간 쯤에 대롱대롱 매달려 썩어가더라는 사건도 있다.

죽순이 땅 속을 파고들어가 생기는지라 남의 땅에서도 튀어나온다. 이 죽순의 소유권을 둘러싸고 소송이 있던 적도. 일단 민법 240조 3항에 따른다면, 갑의 집 마당 대나무에서 뻗어나온 죽순이 이웃한 을의 집 마당에 솟아나오면 그것을 처분할 권리는 을에게 있다. 

대나무는 이산화탄소 흡수능력이 매우 뛰어난 식물로, 대나무숲 1헥타르당 연간 약 30톤 가량의 이산화탄소를 흡수할 수 있다고. 이는 일반 나무의 4배에 달하는 양이라고 한다.

지금은 그 수가 줄었지만 식기, 무기 등의 재료로 많이 쓰던 재료의 하나이다. 실제로 대나무 숲이 우리나라에서 가장 풍부한 담양에서는 대나무 통 속에 밥과 기타 곡물 등을 넣어 찐 대통밥이 향토음식이고 죽도, 죽창 등의 무기로도 만든다. 가공하여 한약재로 쓰고, 술통에 빠트려서 죽통주(竹筒酒)도 만들며 대나무잎으로 죽엽청이라는 술도 만들고 대나무 진을 짜서 죽력고라는 술도 담근다. 대나무 통에 소금을 넣고 9번 구워서 죽염도 만든다.

사군자의 하나로, 꿋꿋한 지조와 절개를 상징하지만, 위처럼 대쪽같은 충신들을 비꼬는데도 쓰인다.


멧돼지는 죽순에 환장해 있다. 또한 판다와 아시아코끼리의 주식으로도 알려져 있다.

대나무 숲에는 지네가 많이 서식하니 주의.

오래전부터 담양에서 딸기랑 함께 민다. 죽녹원이나 대나무박물관 같은 시설도 있다.


고대 아시아에서는 종이가 발견되기 전에 기록에 쓰기도 했다. 대나무를 일정 크기로 자르고 쪼갠 다음, 엮어 대나무 위에 글을 적는 것. 죽간이라고 하며, 삼국지 등 고대 중국의 이야기에서 많이 나온다.

인도의 북동부 지방에서는 대나무가 재앙의 상징인데, 대나무 숲에서 한꺼번에 꽃이 핀다 → 열매가 열린다 → 그 사이에 쥐들이 열매를 먹는다 → 열매의 급증에 따라 쥐의 번식율도 급증한다 → 대나무가 말라죽는다 → 먹을 게 없어진 쥐떼가 곡식을 먹어치운다.

이 지역의 대나무의 개화 주기는 약 48년. 즉 48년마다 거대한 대나무 숲이 한꺼번에 꽃을 피우는 것인데 이때 쥐의 개체수는 상상을 초월한다. 가장 최근에 이 개화 시즌을 담은 다큐멘터리에서 나온 숲은 어디든 땅을 파면 쥐굴이 있을 정도. 게다가 발견한 암컷 쥐들은 모두 임신 상태에다가 첫 임신이 아니었다.

인도 정부에서는 쥐를 잡아 그 꼬리를 모아 바치면 상금을 준다지만 그렇게 잡아도 이미 키우던 작물들은 쥐들이 휩쓸고 간 상태다. 사실상 대나무 개화가 시작하면 이 지역을 재난지역으로 선포한다. 폭증한 쥐들이 먹이 부족으로 서로 다 잡아먹어 개체수가 안정화할 때까지.

이러한 이유로 대나무숲을 제거해보려는 시도가 있었으나 뿌리가 더럽게 튼튼하고 숲 전체가 하나의 덩어리인 대나무 숲을 철거하는 것이 엄청난 비용이 들기에 결국 때려 치웠다고한다. 차라리 대나무를 이용해먹는게 더 이득이라고 한다.

여담으로 이런 쥐들의 폭풍증가가 대나무 열매가 가진 효험으로 보고 이 지역 사람들은 이걸 강장제로 쓴다 카더라. 문제는 채집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