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단 따돌림이 만든 비극 버지니아 공대 총격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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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단 따돌림이 만든 비극 버지니아 공대 총격사건


2017. 4. 18.

버지니아 공대 총격사건의 피의자 조승희
1993년에 어머니가 미국인 강도에게 살해당했고 아버지가 얼마 후 재혼을 했다는 오보가 있었는데 사실이 아니다.

조승희의 부모는 자녀 교육을 위해 이민을 간 전형적인 한국 서민들로 미국 현지에서도 동네 사람들로부터 평판이 좋고 세탁소를 경영하며 열심히 사는 조용하고 겸손한 소시민이었다. 손위의 누나는 명문 프린스턴 대학교를 나와 미국 국방부에서 일하며 사회 생활도 원만했다.



미국 이민 직전에는 서울 도봉구 창동에서 거주했다고 한다.

조승희의 유가족에 의하면 그는 어렸을 때부터 과묵하고 타인과의 대화를 꺼려했다고 한다. 그의 급우였던 김경원에 따르면 조승희는 수학과 영어에 특히 뛰어났으며, 교사는 그를 다른 학생들의 모범으로 삼았다. 교내에는 3명의 한국인 학생들이 있었으며, 아무도 조승희를 미워하지 않았다. 김경원은 당시 그에 대하여 좋았던 기억밖에 없다고 덧붙이면서 별다른 문제를 일으키지 않았던 성실한 학생, 똑똑하기로 유명한 뭐든 물어보면 바로 해결해주는 믿음직스런 친구라고 하였다. 하지만 김경원 외에 다른 인터뷰를 보면 초등학교 때부터 조승희한테 심각한 문제가 있었다는 투의 글들이 적잖이 있다. 매번 학교에서 돌아올 때마다 절대 학교에 안 돌아간다며 심하게 울어대고 떼를 썼다든지... 정신적인 문제가 있어서 특별 교육 시스템에 넣었다는 소리도 있다.


조승희는 중학생 때 인종차별적인 집단따돌림을 심하게 당하면서 중학생, 고등학생 때 선택적 함구증, 우울증 진단을 받고 치료를 받았다. 조승희의 부모는 그의 정서적 문제를 해결하고자 그를 교회에 보냈고, 조승희는 이곳의 기독교 소년 단체로부터 조롱거리가 되었다고 하는데, 특히 부유층 자녀들이 더욱 심하였다고 한다. 목사는 "철없는 아이들이 외톨이 조승희를 놀리고 모욕감을 주기도 했다"고 증언했다. 중학생 때 (그가 8학년 때. 미국에서 고등학교는 보통 9학년 때부터 시작.) 콜럼바인 고교 총기난사 사건이 났는데 그와 수업을 같이 들었던 학생 벤 볼드윈의 말에 따르면 그가 그 사건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가졌다고 한다. 그것을 소재로 살인과 자살에 대한 에세이를 써서 제출한 적이 있다고 한다.


고등학생 때 그는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으며 불러도 대답이 없었다고 한다. 수업에 참여하지 않으면 낙제 점수를 주겠다는 교사의 경고에 마지못해 책을 읽는 그의 목소리는 낮았으며, 마치 무언가 입에 물고 있는 것 같았다고 한다. 이런 모습에 모두가 비웃었고 "중국으로 돌아가"라고 조롱했다. 당시 반에 그를 괴롭히는 학생들이 몇 있어서 그에게 물건을 던졌고 넘어뜨리고 비웃었다. 학교에서 그가 심한 따돌림 당하는 걸 걱정하던 그의 가족들, 특히 어머니와 누나는 그에게 도움을 주려고 노력했지만 무슨 질문을 해도 그냥 "Okay"가 다였다고 한다. 그를 답답해하는 아버지는 그를 꾸짖었지만 오히려 아버지에 대해 심한 원망을 품었다고 한다.

대학생 때는 중학교, 고등학생 때와는 달리 그를 심하게 따돌림하던 학생이 딱히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고 한다. 그의 수업을 가르치던 니키 지오바니 교수는 수업 때 조승희의 작문이 상스럽고 위험한 것이었다고 증언했다. 버지니아 공대 사건을 접한 니키는 곧바로 범인이 누구인지 직감할 수 있었다고 하며, 만일 조승희가 범인이 아니었다고 하면 더 놀랐을 것이라고 하였다. 니키는 2005년 9월 시작한 학기가 6주 정도 지난 시점에 그를 수업에서 제명하였으며, 당시 조승희는 책상 아래로 핸드폰을 넣어 여학생들의 다리를 찍고 다니며 폭력적인 시를 썼다고 한다. 참다 못해 "조승희가 내 수업에서 나가든지 내가 학교 그만두든지 둘 중 하나다"라고 항의했다고 한다.

다른 수업에서는 모두 자기 소개를 해야될 시간에 본인 차례가 오자 아무 말도 없이 넘겼고 출석 시트에 본인 이름이 아닌 그냥 물음표만 적어 냈다고 한다. 그가 썼던 극본들도 문제가 많았는데 한 학생은 그의 극본을 읽을 때 마치 악몽을 꾸는 것 같았다고 한다. 그의 글은 매우 화가 난 듯이 보였다고 한다. 그는 세 여학생을 스토킹 했던 적이 있다고 한다. 그와 같은 방을 썼던 학생들의 말에 따르면 "푸틴과 나는 함께 있다" 라고 한다던지 여러 가지 과대망상증이 심했는데 Jelly라는 상상 속의 여자친구를 마치 실재하는 양 언급했고 "Jelly하고 사랑을 나누고 있다"며 이따가 들어오라고 문을 아예 열어주지 않은 적도 있다고 한다. 그리고 집착이 매우 심했는데 결국 그런 병들은 스스로를 더욱 고립시켰다.

그가 문학 클래스에 제출했던 극본인 <Richard McBeef>가 널리 알려졌다. 심지어 유튜브에 <Richard McBeef>를 실제로 연기한 영화판이 나오고, <Richard McBeef>가 문학적으로 분석되고 평론된 기사와 풍자된 예도 있다.

그가 NBC에 보낸 비디오를 보면 그는 동양인 차별로 인한 자신의 행동을 예수 그리스도와 같다고 했으며 힘없는 동양인들에게 영감을 주기 위해서 한다고 밝혔다. 그의 과대망상증을 잘 알 수 있는 부분.

항간에 조승희가 아메리칸 아이돌에 예선 참가를 했다는 사실이 나도는데 이는 사실이 아니다. 미국의 유머 사이트에서 비꼬는 의미로 조승희가 참가했다고 한 것을 한국 언론에서 오보를 하면서 생긴 오해이다. 한 EBS 다큐에서도 이를 받아들여서 "조승희가 관심을 요구했다"고 분석했다.

조승희는 총격사건 이전에 이미 세 번이나 스토킹 범죄를 저지른 전력이 있다. 첫째는 온라인 채팅에서 만난 여학생의 주소를 찾아낸 뒤 무작정 방문한 것. 이 여학생은 경악하며 경찰에 신고를 하였고 조승희는 경찰로부터 경고처분을 받는다. 두번째 사건의 전모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고 세번째 스토킹은 역시 온라인상에서 만난 여학생의 집 문에 로미오와 줄리엣에 나오는 대사를 써놓은 쪽지를 붙여놓으며 시작되었다. 처음에 여학생은 별 위협을 느끼지 못했지만 알고 지내던 지인으로부터 조승희의 스토킹 전력과 정신분열증으로 의심되는 기이한 행동들에 대해 전해 듣고 경악하며 경찰에 신고한다. 그러자 조승희는 이 여학생에게 자살하겠다는 문자를 보내고 결국 여학생으로부터 전모를 전해들은 조승희의 아버지에 의해 버지니아의 정신병원에 수용된다. 

"너희들은 내 마음을 파괴했고, 영혼을 파괴했으며, 의식을 불태웠다. 너희들은 단지 한 불쌍한 소년의 삶을 짓밟아 없앤다고 생각했다. 고맙게도 덕분에 나는 예수처럼 죽는다. 약하고 힘없는 동포들에게 영감을 주기 위해서."

"너희들에게는 오늘을 피할 수 있는 천억 번의 기회와 방법이 있었다. 그러나 너희들은 내 피를 흘리게 했다.나를 궁지로 몰아넣었으며 한 가지 선택만을 남겨놨다. 결정은 너희들이 했다. 이제 너희들의 손에는 영원히 씻기지 않을 피가 묻었다."

"나는 모세처럼 바다를 가르고 내 동포들을 이끌 것이다."

"이렇게 하지 않아도 되었다. 떠날수도 있었다. 도망갈 수도 있었다. 그러나 더 이상 도망가지 않을것이다. 이건 나를 위한게 아니다, 나의 자식들, 나의 형제자매를 위해서이다."

"내 삶이 이렇게 끝나기를 기대해왔을꺼라고 생각하는가?"

"너희들이 나한테 해준 만큼 총알로 되갚아주마."

"내가 이런 짓을 할 때까지 네놈들이 나한테 한 짓을 생각해봐라."

<조승희 선언문 일부>

이 사건의 희생자 중 한 명인 에밀리 힐셔가 조승희의 여자친구라고 잘못 알려져 있는데, 실제로는 에밀리 힐셔는 여자친구는 커녕 조승희가 누군지도 몰랐다는 것이 경찰의 수사결과 밝혀졌다.

이 당시 총기 마니아였던 어느 중국계 미국인이 용의자로 추측되기도 하였는데 미국의 언론에서 이 사람의 블로그를 공개하면서 논란이 가중되었다. 그 블로그에는 무려 수백여 정이나 되는 각종 총기를 사 모은 그 중국계 미국인의 사진이 한가득 게재 되어 있었기 때문인데 정작 당사자 본인은 이렇듯 높은 관심도로 접속자가 엄청나게 늘어나자 이에 관한 별다른 해명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런 이유로 "범인은 총기 덕후인 중국인 유학생"이라는 오보가 발생했으며, 조승희가 한국계라는 사실이 밝혀지기 전까지 국내 인터넷에서는 이걸 그대로 믿고는 중국, 중국인을 온갖 악플로 신나게 까던 사람들이 사실이 밝혀지자 완전 꿀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이 사건 이후 조승희의 이름이 알려지면서 나이대가 비슷하고 같은 이름을 가진 동명이인의 미니홈피가 네티즌들에게 털리는 일이 발생했다. 물론 네티즌들도 동명이인이란걸 알고 있었고 장난식으로 사격솜씨가 좋다며 방명록에 글을 남긴 것이다. 또한 동명이인 조승희는 대문짝에 "내가 안 죽였다," "나비처럼 날아 벌처럼 쏜다"라고 써놓기도 하였다.

서울신문에 연재된 백무현 만평에서는 부시가 이 사건으로 미국산 무기의 우수성이 증명되었다는 얘기를 하는 식의 내용을 올렸으나 발터 P22 권총은 독일제고 GLOCK-19는 오스트리아제 총기다. 고인드립인 데다가 사전지식 없이 본인의 무식만 인증한 병크라서 결국 다음 날 사과 만평을 올렸다.

개그맨 황현희가 이 사람을 닮았다는 이유로 출연금지를 받기도 했다는 루머가 있다. 그리고 황현희 본인과의 인터뷰로 말 그대로 루머로 끝났다.

조승희의 누나 조선경씨는 AP통신을 통해 사과문을 발표했다. 그는 동생이 온 미국을 슬픔에 빠뜨렸으며, 동생을 대신해 피해자의 가족과 미국시민들에게 사죄하고싶다고 말했다.

2009년 초 디시인사이드 코갤에서는 K4라고 해서 킬러조, 류시퍼, 혜느님, 버지니아 조 중에서 버지니아 조가 이 조승희였다. 그러나 그 이후 갱인, 스틸곽, 그랜드현우, 발치몽 등 수많은 범죄자들이 발굴돼서 혜느님과 함께 묻혔다. 4chan에선 한때 몇몇 잉여들이 필수요소로 쓰거나 총기난사 사고 중 가장 하이스코어를 기록했다고 영웅 취급하며 그의 날을 기린 적도 있다. 한 유저가 조승희의 기록을 깨겠다며 총기난사를 /b/에 예고했다가 다른 유저들이 FBI에게 이를 알려준 덕분에 FBI가 총기난사를 예고한 그 유저를 체포한 일도 있다. 다만 이게 장난이었는지 아니면 진짜 예고한 거였는지는 알 수 없다.

2011년 12월 8일. 버지니아 공대에서 또 다른 총기 사건이 일어나 이목을 끌었다. 동년 브라질에서도 조승희 추종자가 총기난사를 일으켰다. 이 사건은 2014년에 디시에서 "인종차별에 항거한 의사 제너럴 조" 드립이 흥하면서 "서양에서도 인정 받는 재림 예수 제너럴 조"라며 뒤늦게 재발견되었다. 그리고 2012년 4월 한국계 이민자가 벌인 오이코스 신학대학 총기난사 사건이 벌어졌다. 이 사건 범인 고수남은 자살은 하지 않았지만 살아서 체포됐는데, 조승희와 마찬가지로 역시 집단괴롭힘이 원인이었다. 다만 그는 정신병자라는 게 증명되어 재판을 받을 수 없다는 이유로 2013년 1월 무기한 재판 연기 및 정신 치료 명령이 내려져, 정신병원에 감금되어 있다. 2015년 WDBJ7 방송사 뉴스 생방송 총격 사건의 범인 역시 조승희를 인종차별에 항거한 투사로서 존경한다고 썼다.

미국의 모 변호사는 "이게 다 게임 때문입니다. 게임을 탓하세요."라는 말로 수많은 게이머들의 어그로를 끌었다. 실제로 한국의 모 신문에는 그가 카운터 스트라이크에 빠져서 그랬다는 기사를 내놓기도 했다. 혹자는 초등학교 시절 게임중독 예방교육을 할 때 강사가 조승희가 서든어택을 너무 많이해서 사람을 죽였다는 망언을 했다고 한다. 그 밖에 조승희가 생전에 썼던 텍사스 인스트루먼트 계산기가 경매로 올라와서 논란이 되었다. 99달러짜리가 4300달러까지 값이 올랐다고 한다. 사실 범죄자가 사용한 물건이나 의복 등이 은근히 인기를 끄는 경우가 있긴 하다. 신창원이 입었던 쫄티나 유병언의 구두, 신정아의 가방 등이 그 예다.



야갤에서 여러사람이 동양인이 열등하다고 주장하다가 누군가 조승희로 반격하면서 조승희를 숭배하는 분위기가 주로 야갤, 주갤, 고갤을 중심으로 퍼지고 있다. "제너럴 조, 조 장군님은 동양인의 인권을 위해 모세처럼 희생하셨다"라는 처음에는 장난 삼아 떠오르던 떡밥이 점점 생명력을 유지하면서 퍼지는 중이다. 일단 동양인이 서양인보다 열등하다는 자괴감을 떨치려는 목적에 조승희가 저지른 범죄의 가장 큰 원인은 미국 사회의 인종차별이 가미된 집단괴롭힘이 원인이었고, 여기에 그가 마지막으로 한 연설에서도 비장미가 느껴지기 때문으로 보인다. 

실제로 그의 유언이 된 연설을 보면 꽤 구체적으로 자신의 범행 동기를 설명하고 자신의 죽음을 통해 어떤 메시지를 전하고 싶은 것인지 풍부한 수사와 표현을 통해 전달하고 있는데, 이러한 무차별 살인의 범죄자 대다수가 정상적인 사고를 할 수 없을 정도로 몰린 사람들이기 때문에 이런 경우는 드물다. 최소한 조승희 본인은 자신의 테러가 동양인에 대한 인종차별을 개선시키고 사회를 좀 더 나은 방향으로 바꿀 것이라고 굳게 믿은 듯하다. 이런 특이성 때문에 "인종차별에 펜 대신 총을 들고 항거한 의사," 혹은 "동양의 예수" 같은 고인드립 댓글이 주로 똥송 드립에 쓰인다.

외국에서는 실제로 조승희가 범행 뒤 방송국에 보낸 비디오가 공개되고 나서부터 소수의 추종자들에 의해 조승희에 대한 찬양 움직임이 일부에서 일기 시작했다. 미국내 동양인 사이트 등지에선 조승희와 비슷한 경험을 한 사람들이 조승희의 행동에 경의를 표하는 것과 조승희를 영웅시하는 사이트가 나타나기 시작한 것을 경계하는 칼럼이 나오기도 하였다. 네이버 댓글의 일부 악성유저들은 조승희를 효순이 미선이의 복수를 한 열사이자 한국을 잘 모르는 나라들에 한국을 소개한 애국자로 추앙하였으며, 심지어 제너럴 셔먼 호 사건 이후 움츠러든 한민족의 기상을 세웠다며 대장군으로 명명하기까지 하였다. 호주의 한 네티즌은 조승희가 인간적이고 연약한 사람이라면서, 자신도 왕따를 당해본 경험이 있어 조승희를 이해한다며 그의 범행을 미화하는 게임을 제작하여 배포하기도 하였다.

그가 가장 좋아하는 곡은 미스터 빅의 Shine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는 잘못된 사실이다. 그의 룸메이트들은 "조승희는 컬렉티브 솔의 Shine을 즐겨 들었다. 그는 그 곡을 거듭해서 여러 번 듣곤 했다"라고 증언했으나, 야갤러들이 "뭐야, 이 노래가 더 좋잖아" 하며 미스터 빅의 Shine을 밀어주는 바람에 왜곡되어 버렸다. 덕분에 미스터 빅의 곡이 업로드된 유튜브 댓글란에는 온갖 커뮤니티 이용자들의 "조 장군 그립습니다" 식의 댓글들이 달리게 되었다.

디시인사이드 등을 통해 퍼진 그의 별명 제너럴 조(General Cho)는 그의 범행을 버지니아 대첩으로 왜곡하는 것이 유행했기 때문에 생겼다. 사망 사살 비율이 1:30이라며 그동안 서양 군대에 처참한 교환비를 찍은 역사 속의 전투랑 비교하며 명장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인디 밴드 주로파 옐로우의 노래 "구름 위를 걷다(2008)"와 이장혁의 "조(2008)"는 조승희를 소재로 한 곡들이다. 물론 사건이 일어난 미국에서도 조승희를 다루는 인디곡들이 있다.